▲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 포스터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에 비해 유쾌하고, 마크 웹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 비해 상쾌하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토니 스타크에게 캐스팅된 피터 파커를 단독 주인공으로 내세워 친정인 마블의 시네마틱 유니버스 안으로 끌어들인 ‘스파이더맨: 홈커밍’(존 왓츠 감독)은 매끄럽고 군더더기가 별로 없으며 뒷맛이 개운하다.

8년 전 뉴욕. 어벤져스가 외계 치타우리 종족의 침입을 막는 데 성공하지만 도시는 많이 파괴됐고, 적들의 잔해들이 산재해있다. 애드리언 툼즈(벌처, 마이클 키튼)는 그 수습공사 권리를 따내 진행하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정부 요원들에 의해 현장에서 쫓겨난다. 정부가 스타크 인더스트리에 일을 맡긴 것.

이 일로 토니 스타크(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 원한을 품게 된 툼즈는 현장에서 취득한 치타우리의 광물질을 이용해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무기를 생산해 범죄단체에 밀매하거나 직접 벌처라는 빌런이 돼 큰돈을 벌어들인다. 그러나 워낙 은밀하게 움직이기에 어벤져스는 이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다.

▲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 스틸 이미지

현재. ‘시빌 워’ 이후 중학교로 복귀한 피터 파커(스파이더맨, 톰 홀랜드)는 금세 어벤져스가 될 듯한 희망에 부풀어 스타크 및 그의 비서 해피(존 파브로)의 연락을 기다리지만 감감무소식이라 답답한 터. 스타크는 자신이 하는 일을 해서도 안 되고, 자신이 안 하는 일은 더욱 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는 등 피터를 물가에 내놓은 애 취급한다. 몸이 근질근질한 파커는 스파이더맨 복장을 하고 거리로 나서 길 잃은 노파를 돕는 등 동네영웅에 머문다.

따분한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전학 온 여학생 리즈(로라 헤이어)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런데 그녀는 노골적으로 스파이더맨에 반했다고 말한다. 여느 때처럼 가면을 쓰고 봉사활동을 한 뒤 집으로 돌아온 파커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방 안에 친구 네드(제이콥 배덜런)가 있었던 것. 정체를 들킨 파커는 절대 발설하지 말 것을 신신당부한다.

다시 가면을 쓰고 거리로 나선 파커는 처음 보는 강력한 무기로 현금지급기를 터는 악당들을 발견하곤 그들과 힘든 승부를 펼친 뒤 뒤를 쫓던 중 벌처를 만나 호되게 당한다. 그리고 벌처가 큰 작전을 펼치려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섬으로 향하는 배에 승선한다.

▲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 스틸 이미지

그런데 벌처의 무기는 의외로 강력했다. 벌처가 거대한 유람선을 두 동강으로 가르고, 수백 명의 승객들이 수장될 위기에 처하지만 아직 파커의 능력은 정점에 이르지 못한 상황이다. 과연 파커는 수백 명의 무고한 생명을 구할 수 있을까? 그는 스파이더맨이 될 자격이나 있는 걸까?

영화의 강점은 시종일관 경쾌하고 유쾌하다는 것. 대사와 설정은 마치 ‘데드풀’처럼 기발한 유머가 넘친다. ‘아이언맨’에서 꽤 진보적인 듯했던 스타크는 15살의 파커 앞에선 영락없는 꼰대가 돼 잔소리만 늘어놓거나 ‘하지 마’로 일관한다. 그렇다. 영화는 12살용 ‘데드풀’이거나 비극을 뺀 ‘사도’다.

영조-사도-정조로 이어지는 이준익 감독의 헤겔의 ‘정-반-합’ 변증법 도입을 스타크-파커-벌처가 그대로 받아들인 구조다. 벌처는 악당이지만 그가 악당이 된 이유는 가족과 자신을 믿고 따르는 직원들을 위해서다. 정당하게 따낸 계약을 스타크 인더스트리라는 대기업이 빼앗은 사실을 이 서민은 이해하지 못한다. 정부와 파커는 외계물질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기에 영세업체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지만 벌처 입장에선 생계수단을 빼앗긴 셈이다.

▲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 스틸 이미지

스타크와 파커는 정과 반이고, 작용과 반작용이다. 스타크는 ‘시빌 워’ 때 자신이 발탁한 인턴 어벤져스인 파커를 믿거나 최소한 트레이닝을 시켜야하지만 방목해놓고 희망고문만 한다. 들뜬 파커는 스타크에게 “내가 어벤져스가 된 거냐”고 묻지만 외면당하고, 일을 달라치면 “나대지 말라”는 핀잔만 듣는다.

그런 그를 한 뼘 성장시키는 사람은 아이언맨도 캡틴 아메리카도 아닌 벌처다. 불완전한 상대성이 완전한 합리성을 구축해준 셈이다. 자신이 어벤져스 자격이 충분하다고 착각해 망아지처럼 날뛰던 파커의 사변적 자기객관화를 어벤져스라는 상호주관성으로 이끌어주는 아이러니! 후설의 현상학이 살짝 읽힌다.

영화의 또 다른 강점은 백호주의의 지양이다. 리즈는 아프리카 흑인이 아닌, 전형적인 미국식 흑인 미녀의 외양을 지녔다. 네드는 아메리카 대륙의 원래 주인인 원주민의 피를 이어받았다. 그들의 학우 중에 인도인이 있는가 하면, 교장은 극동양인이다.

▲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 스틸 이미지

마블이 DC보다 한 수 위라는 증거는 곳곳에 포진돼있다. 이미 영화 시리즈로 두 차례나 세상에 공개된 ‘스파이더맨’의 탄생의 근거 따위를 설명하는 군더더기가 없다. 왜 숙모와 단 둘이 사는지 굳이 관객에게 알리려하지 않는다. 이미 이전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관람한 관객은 다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게 이번 영화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손목에서 거미줄이 나온다는 비과학적 설정을 배제하고 인공거미줄 용액과 발사기를 부착시키는 현실성도 돋보인다.

파커의 심리에 집중함으로써 관객들이 영화에 쉽게 빠져들게 만든다. 리즈는 스파이더맨을, 파커는 그런 그녀를 짝사랑한다. 파커는 리즈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 사랑을 쉽게 이룰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아이언맨’ 1편부터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싶어 안달이 났던 스타크와 많이 다르다. 변장을 위해 백팩을 메고 다니는가 하면 그걸 도둑맞은 뒤 숙모에게 사달라고 조르다 거절당하는 장면은 참신하다.

▲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 스틸 이미지

그렇다고 파커가 브루스 웨인처럼 가면을 쓰고 밤에만 다니는 것도 아니다. 벌건 대낮에 거리를 질주하며 대중과 소통을 한다. 아직 어려서 철이 없기 때문일 수 있지만 사실 그는 배트맨처럼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나이 때 웨인은 조실부모한 갑부로서 집사 알프레드의 보살핌을 받으며 칩거했고, 스타크는 공부와 연애를 병행했지만, 파커는 학업과 정의감에 집중하고 의무와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중이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의 깜짝 등장, 새 어벤져스 본부의 위용 등 짭짤한 재미가 산재한, 영악한 팝콘무비다. 마이클 키튼은 팀 버튼의 ‘배트맨’에서 배트맨으로 활약했다. 마블의 재기발랄함은 이제 대놓고 DC를 조롱하는 잔인한 수준까지 올랐다. 133분. 12살 이상. 7월 7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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