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jtbc '효리네 민박' 캡처 화면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이효리가 4년 만에 발표한 새 음반의 활동을 단 일주일만 펼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솔로 데뷔 후 가요계의 독보적인 섹시 아이콘이 돼 수많은 남성팬들을 열광케 하고, 적지 않은 후배 들의 이미지 설정에 영향을 끼친 그녀이기에 그 여운은 꽤 오래갈 듯하다. 이런 그녀의 파급력을 가능케 하는 배경은 뭐고, 그럼에도 그녀가 ‘못 갖춘 것’은 뭘까?

그녀가 대중을 깜짝 놀라게 만든 ‘사건’을 꼽으라면 이상순과의 결혼이 거의 선두에 설 것이다. 빼어난 미모의 여자 스타라면 비슷한 인기의 연예인 혹은 부자와 결혼하는 게 관행처럼 굳어져있는 게 방송연예계. 하지만 이효리는 의외로 평범한(?) 남자를 택했다. 서울 청담동에 사는 게 어울릴 듯한 그녀는 제주도에 안착했다. 다수의 천박한 선입견을 깨는 파격이 어디까지일지 숙연해지게 만드는 그녀다.

단순히 사랑에 눈먼 장님은 절대 아니었다. 방송에서 이상순을 닮은 아이가 거론되자 “아들은 괜찮겠지만 딸이 그렇다면 조금 걱정”이라고 정색했다. 이상순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으니 자신의 눈에 콩깍지가 씌운 게 아니라는 증거를 대는 것이며, 남자의 인물을 보고 선택하는 여자가 아니라는 복합적인 의미가 담겨있었다.

핑클로 활동할 때 그녀는 그 나이 때의 청년들이 그렇듯 갑자기 찾아온 부와 명예를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면서 구름 위에 뜬 천상천하유아독존인 양 착각한 채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돈을 그렇게 많이 벌고서도, 나를 위해 쓸 줄 몰랐다’고 고백한 바 있다. 무대와 TV에선 화려했지만 집안은 엉망이었던 상황을 ‘금은 많이 쌓았지만, 쌀은 없었다’고 비유했다.

▲ 사진=kbs 해피투게더 캡처 화면

그렇게 바쁘게 내달려온 자신을 돌아볼 줄 알게 됐을 때 틀을 깨고 나온 첫 시도는 고급승용차를 처분한 것이었고, 그렇게 대중과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본 세상에서 주시한 곳은 혼자 사는 가난한 노인과 거리에 내버려진 유기견이었다.

동물보호운동과 독거노인봉사에 앞장서고, 채식주의를 선언하는 등 사회적인 이슈와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그녀의 생각과 행동은 탄탄한 인문학적 논리와 진보적 이념에 의해 완성된 것일까? 그렇게 보이진 않는다.

그녀는 톱스타 이효리가 아닌 인간 이효리로서의 변화를 ‘과거에는 사는 대로 행동했었다면, 지금은 생각하는 대로 산다는 것’이라며 마치 디오게네스처럼 말한 바 있다. 그녀에게선 확실한 정치적 색깔이 보이지 않는다. 명징한 이론에 의해 완성된 인생의 지표가 두드러지는 것도 아니다.

동물보호를 주창하면서 가죽옷을 입고 나온다거나 채식주의를 선언하고서 만두와 순대를 못 먹을 줄 몰랐다고 고백하는 허술함에서 그녀의 의식을 읽을 수 있다. 만약 그녀가 사는 대로 행동했다면 동물보호 운동에 나서기 전에 가죽옷부터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주의자로 여겨지는 그녀는 기왕 사놓은 걸 버릴 순 없었을 것이다.

또한 채식주의라면 고기만 안 먹으면 된다는 아주 단순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김치만두지만 돼지고기가 들어가고, 당면만 보이는 순대의 외피가 돼지 창자고, 당면 속에 돼지 피가 스며들었다는 것까지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 사진=kbs 해피투게더 캡처 화면

‘생각하는 대로 산다’는 주장은 자신의 노선이 언제라도 바뀔 수 있다는 매우 영리한 배수진일 수도, 단순하고 명쾌한 사상일 수도 있다. 그래서 전술한 그녀의 자가당착 혹은 짧은 생각마저도 용납이 되고 설득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영악하다기보다는 진짜 그녀가 생각하는 대로 살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정밀한 이론이 밑받침된 높은 학식은 엿보이지 않지만 철학만큼은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녀는 자신이 여신도 아니고, 타고난 귀족도 아니며, 남달리 예쁜 스타라는 것만 제외하면 모든 인격과 동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걸 공공연하게 밝히는 스타일이다.

이발소 아빠의 딸로 태어난 걸 부끄러워하지도, 그걸 이미지용 프로파간다로 활용하지도 않고 그냥 있는 사실 그대로 밝힐 따름이다. 그건 과거에 사귀었던 애인들을 한자리에 모아 파티를 열고 싶다거나, 결혼 전에 동거부터 해보고 싶다는 다소 위험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연예인이라면 으레 대중 앞에서 좋은 것만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연기를 해야 하는 게 체질적으로 안 맞는다는 에두른 표현이다. 그래서 그녀는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음에도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 영화 <긴급조치 19호> 스틸 이미지

출연한 드라마는 SBS 16부작 ‘세 잎 클로버’(2005)와 2부작 ‘사랑한다면 이들처럼’(2007)으로 둘 다 주연이었다. 영화는 ‘긴급조치 19호’(2002) 단역과 ‘댄싱 퀸’(2012) 특별출연이 다였다. 한창 주가가 높을 때 그녀를 파격적인 개런티로 캐스팅한 영화가 있다는 소문과 일부 보도가 있었지만 결국 무산됐다.

예능 프로그램은 그래서 그녀와 체질적으로 맞다. 우아한 척 포장할 이유도, 고고한 척 단장할 필요도 없다. 예능의 목적이 무조건 시청자를 웃기는 것이니 가수로서 무대에 오를 때 애써 감췄던 인간적인 면모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효과는 더 올라간다.

지금까지의 행적에서 보듯 그녀는 가식이 없다. 꾸밀 줄 모른다. 어쩌면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된 후 가면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깨닫게 됐다고 볼 수도 있다. 완벽해지려고, 혹은 그렇게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게 아니라 능력과 범주 안에서 나이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수립되는 소신대로 살자는 게 그녀의 인생관인 듯하다.

그렇게 솔직한 성격은 2010년 4집 음반의 6곡이 표절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을 때 확실하게 세상에 알려졌다. 처음 공개할 당시만 해도 자신이 직접 프로듀싱했다는 점을 앞세웠는데 6곡이 거의 카피한 수준이라는 논란이 불거지자 그녀는 재빨리 표절을 인정하면서 사과한 뒤 판매와 활동을 중단했다.

그리고 4개월간 집에 틀어박혀 폭음하며 지냈고, 보다 못한 김제동에 의해 정신과 상담을 받고서야 칩거를 끝내고 재기의 의지를 다질 수 있었다. 그 원인과 배경은 남들보다 많은 걸 가진 그녀에게 보기 드물게 부족한 ‘음악성’이었다.

▲ 사진=jtbc '효리네 민박' 캡처 화면

그녀는 타고난 뮤지션인 김윤아나 박정현이 아니었다. 핑클 때의 그녀는 아이돌 스타였을지언정 뮤지션이 아니었다. 솔로 데뷔 후 그게 콤플렉스였고, 선결해야할 의무였으며, 천근만근의 무게로 어깨를 짓누른 짐이었을 것이다.

이번 음반에선 작사와 작곡에 손을 댔다. 그러나 대중의 반응은 이효리와 신곡에 대해 사뭇 다르게 갈라졌다. 여전히 가창력 논란도 뒤를 따른다. 에이미 와인하우스처럼 유니크한 가창력 소화력 개성부터 빼어난 작곡능력까지 갖춘 여성 싱어송라이터는 흔치 않다.

연기는 배우고 익히는 시간을 거듭할수록 계속 늘지만 음악성과 가창력은 적정 수준에서 답보상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효리에게선 '너 자신을 알라’던 소크라테스부터 그의 제자 플라톤, 또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를 관통하는 관념론이 읽힌다. 사전적 의미는 ‘관념 혹은 관념적인 것을 실재적인 것보다 우선으로 보는 논리’.

아리스토텔레스의 평생의 연구는 형이상학, 실천학, 그리고 제작술이었다. 제작술은 바로 예술 활동을 말한다. 이효리에게선 모든 존재의 이유와 기원과 구성에 대한 고민(형이상학)은 그다지 부각되진 않지만 사람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고, 사람으로서 어떤 생각을 해야 하며,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어우러져야 하는가에 대한 탐구는 충분히 읽힌다. 다만, 그 인생철학과 예술철학의 2인3각 행보가 다소 엄발나는 게 아쉽다. 그럼에도 소셜테이너로서의 그녀의 값어치는 현대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다름없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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