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영어책 읽기를 언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미디어파인=원영빈의 리딩이야기] ABCD도 잘못 읽는 옆집 성호도 시작했으니 일 년 넘게 파닉스를 공부한 우리 아이는 당연히 시작해도 되겠죠?"라는 질문에 대답 대신 이런 질문을 한다.

"어머님 아이가 지금까지 한글 책을 충분히 읽었나요? 영어책 읽기는 한글 책을 충분히 읽은 아이들이 시작해야 훨씬 이해도 빠르고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가 있어요."

모국어로 인지하고 이해하는 어휘수가 적은 아이들은 영어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단어와 행간의 뜻을 유추하는데(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영어책의 재미를 알기까지 오래 걸려요. 한글 책을 좀 더 읽은 후에 영어책 읽기를 시작해도 늦지 않아요.

실망하며 돌아서는 어머님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영어책 읽기 활동이 아이들에게 흥미롭고 재미있는 시간이 되어야 오랜 기간 책을 읽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한글 책을 좀 더 읽기를 권유한다.

내가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ABCD밖에 읽을 줄 모르는 1학년 성호는 영어 동화책에 나오는 글자가 아직은 하나의 기호로 보일 텐데도 한 시간 동안 집중해서 책을 읽는다. 아니 '읽는다'라는 표현보다는 책을 '본다'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성호는 책에 나오는 글자 대신 그림과 CD에서 흘러 나오는 읽어주는 사람의 음성, 그리고 책장을 넘기라는 시그널 소리에 맞춰 책장을 넘긴다. 그런데 신기한 사실은 한 일주일이면 음성에 맞춰 단어를 손으로 가리키는 것이 가능해지며 더 이상 시그널 소리가 필요 없다는 듯이 알아서 척척 책장을 넘긴다.

그리고 집에 가면서 하는 말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하면서 미소가 한가득이다.
한 시간 동안 CD를 들으면서 책장만 넘겼을 뿐인데 말이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아이들의 공통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충분한 한글 책 읽기이다. 이미 충분한 양의 한글 책 읽기로 책 읽기의 재미를 깨우쳤고, 짧은 책에 나오는 영어 단어들은 이미 한글로도 알고 있는 단어들이기 때문에 굳이 단어의 뜻을 알려주지 않아도 그림과 소리로 유추가 가능하기 때문에 '재미있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특징은 한글 책 수준의 영어책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가는 속도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훨씬 빠르고 재미있게 진행할 수 있다. 글쓰기와 말하기의 수준도 같이 시작한 한글 책을 충분히 읽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현저히 높다.

“영어책 읽기는 한글 책을 충분히 읽은 다음부터 시작하세요”

이런 아이들을 보고 엄마들은 또 이렇게 묻는다. "우리 아이가 저 정도의 챕터북을 읽으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이 질문은 마치 "우리 아이의 키가 나중에 얼마나 클까요?"처럼 정말 알기 어렵다. 키가 개인의 생활 환경이나 체질, 먹는 양, 유전자에 따라 성장이 달라지는 것처럼 우리 아이가 원하는 수준의 영어책을 읽을 수 있는 실력이 되기까지 집에서의 책 읽는 환경이나 언어적인 감각과 수준, 꾸준한 습관, 책을 읽은 양과 질에 따라 같은 시기에 시작한 아이라도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래의 4개의 예시는 한글 책 읽기에 대한 태도로 3~4년 후 영어책 읽기 실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물론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처음 시작할 때를 기준으로 한다.)

1. 우리 아이는 초등 전의 한글 책을 충분히 읽었다.
2. 시키지 않아도 한글 책을 찾아 읽을 정도로 책 읽기를 좋아한다.
3. 책 읽으라고 하면 학습 만화책을 즐겨 읽는다.
4.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전혀 읽지 않는다.

1번과 2번의 경우는 ABCD를 몰라도 영어책 읽기가 쉽고 재미있으며, 내용을 이해하면서 몰입까지 할 수 있는 단계가 확실히 빨리 온다.(평균 3년~4년을 잡는다. 한글 책을 읽으려면 태어나서 10살 정도에 읽을 수 있는 책 수준이라고 친다면 그 정도 수준의 영어책을 읽기까지 3년~4년은 길지 않은 시간이다.)

3번과 4번의 경우는 책을 읽는 습관부터 잡는 것을 기준으로 책의 단어와 문장을 유추하여 읽기까지 시간과 노력이 많이 걸린다. 만약 같은 3년~4년을 잡았을 때 리딩 레벨은 1번과 2번의 아이들 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

결국 위의 두 가지의 질문에 대한 답은 '초등 전의 한글 책을 충분히 읽게 하자'로 귀결된다. 그것이 바로 외국어 교육의 첫걸음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원영빈 키즈엔리딩 대표 - (저서) '공부방의 여왕'

[원영빈 키즈엔리딩 대표] 
숙대학원졸 해외스쿨캠프 제작&기획 
영어리딩 전문가 활동
영어 리딩 전문가 양성 프로젝트
현) 키즈엔리딩 대표

저서 : '공부방의 여왕'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