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덩케르크>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할리우드에서 스튜디오의 손익계산서와 관객의 재미 및 지적 허영심을 동시에 만족시켜주는 신뢰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덩케르크’(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배급)는 내용은 매우 단순하지만 의외로 감상이 난해하다. 보는 사람에 따라선 놀란의 영화치곤 비교적 짧은 106분의 러닝타임이 의외로 지루할 수 있거나, 아니면 공포와 감동에 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5월. 프랑스-벨기에 국경지대에 투입된 영국군 40여만 명은 독일군의 공세에 밀려 덩케르크 해안에 일부 프랑스군과 함께 고립돼 자신들을 본국으로 소환해줄 구축함을 기다린다. 독일군 전투기는 무시로 기뢰제거선과 해안을 향해 폭탄을 떨어뜨리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긴박한 상황.

▲ 영화 <덩케르크> 스틸 이미지

어린 병사 토미는 고립된 전우 몇 명과 퇴각하다 독일군의 습격에 혼자 살아남아 해안으로 간신히 피신한다. 깁슨이 전사자를 묻어주는 것을 보고 도와주며 물을 얻어 마신 뒤 그는 구축함 승선을 기다리는 행렬 뒤에 서지만 군중은 자신의 소속 병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배척한다.

이때 사경을 헤매는 전우 한 명을 발견하곤 깁슨과 함께 들것에 실은 뒤 대열에 파고들어 구축함에 승선하는 데 성공하지만 이내 순서가 한참 뒤인 사실을 들켜 쫓겨난다. 그들은 보다 빠른 귀국을 간구하는 다른 몇 명의 병사와 함께 빈 배를 발견하고 승선한 뒤 밀물 때를 기다리지만 독일군의 총격을 받는다.

전투기 조종사였던 첫아들을 전투에서 잃은 노인 도슨은 덩케르크 구출작전에 민간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군 당국의 호소에 고교생인 둘째 아들과 그 친구 조지를 데리고 개인 요트를 몰아 덩케르크를 향한다. 중간에 피폭된 난파선 위에 유령처럼 앉아있던 해군(킬리언 머피)을 구한다. 그러나 해군은 뱃머리를 돌려 영국으로 가자고 난동을 부리고 그 과정에서 조지가 크게 다쳐 사경을 헤맨다.

▲ 영화 <덩케르크> 스틸 이미지

전투기 조종사 파리어(톰 하디)는 동료 조종사가 모는 전투기 2대와 함께 덩케르크를 공격하는 적의 전투기와 선전 중이다. 리더에 이어 콜린스(잭 로던)마저 적기에 당해 바다에 추락하자 그는 혼자서 하늘을 책임지는 맹활약을 펼친다. 해안엔 적기의 공격이 더욱 거세지고 사망자와 바다에 표류되는 자들이 급증해 아비규환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볼튼(케네스 브래너) 해군 사령관의 노련한 진두지휘 하에 탈출작전은 계속 진행된다.

영화는 이렇게 세 곳을 중심으로 교차편집돼 긴박하게 전개된다. 대사는 많지 않고 스토리 구조는 빨려 들어갈 만큼 몰입도가 크다고 보기 힘들다. 마치 당시의 잘 찍은 다큐멘터리를 첨단 디지털 기술로 복원하고 강렬한 치찰음의 사운드 효과를 첨가한 뒤 탁월한 편집으로 재탄생시킨 기록영화 같은 느낌을 줄 정도다. 배우도 놀란 감독의 페르소나인 하디와 머피, 그리고 브래너 정도만 낯이 익을 뿐 모두 전쟁 속 실존인물 같은 사실감이 넘친다.

▲ 영화 <덩케르크> 스틸 이미지

영화는 굳이 독일군의 만행을 부각하려는 애국심의 정형화의 패착을 영리하게 피해간다. 독일군이 얼굴을 드러내는 건 마지막에 딱 한 번이다. 대신 집중하는 곳은 전쟁의 참혹함과 모든 사람은 살 권리,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휴머니즘이다.

전쟁의 냉혹함과 거기서 비롯된 참상에 대한 표현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수준이다. 거의 대부분의 전쟁영화가 통쾌하거나 긴장되는 액션과 그에서 파생된 잔인함에 천착했다면 놀란은 디테일을 파고든다. 독일군의 총탄에 의해 뚫린 구멍 탓에 탈출할 배에 물이 차오르자 리더가 무게를 줄여야한다며 계속 말이 없던 한 명을 독일군 스파이로 몰아넣는 마녀사냥은 인간의 잔인한 이기심을 폭로한다.

독일군 U보트에 당한 트라우마에 시달려 전우애고 애국심이고 염치고 다 내팽개친 해군의 두려움은 이기적이지 않고 오히려 강렬한 생존본능의 몸부림으로 구현돼 애처로움을 느끼게 한다. 간신히 구축함에 승선한 깁슨이 피폭됐을 경우를 대비해 출구를 확인하고, 그 뒤에도 선실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방황하는 게 언제 적기가 출현할지 모르는 두려움 때문이란 시퀀스는 군인들이 전쟁 때 실제 느꼈을 공포심을 관객의 피부에 각인시켜준다.

▲ 영화 <덩케르크> 스틸 이미지

간신히 퇴각에 성공했음에도 군인들이 마냥 기뻐하는 건 아니다. 국민과 국가를 위해 목숨 바쳐 싸웠어야 할 군인들이 도망쳤다고 쏟아질 국민들의 비난과 거기서 파생될 자괴감 때문이다. ‘역사는 승자의 몫’이니까. 하지만 영화는 모든 시퀀스를 인도주의적인 측면에서 훑어간다. 중상자를 운반하는 ‘즉흥연기’로 남들보다 구축함에 먼저 승선하려는 토미와 깁슨의 행동은 꼼수가 아니라 당연한 본능으로 묘사된다.

그게 다라면 영화는 밋밋하게 끝났을 것이다. 영화 말미에 드러날 숭고한 희생정신과 책임감이 플롯의 반전은 아니지만 감정으로선 반전이다. 어느 재난이나 전쟁에도 비겁하고 야비한 사람과 함께 영웅은 존재하기 마련. 적지 않은 민간인은 군인보다 용감했다. 소속을 가리지 않고 활약한 사병이 있었고, 사병을 먼저 배려한 장교도 있었다.

결국 5월 28일부터 6월 4일까지 계속된 다이나모 작전은 성공리에 33만 8000여 명의 군인을 영국으로 철수시켰다. 그중엔 12만 명의 프랑스군도 포함됐다. 그 후 영국엔 ‘덩케르크 정신’이라는 기류가 발생해 전 국민에게 용기와 희생정신을 앞세운 인본주의의 책임감이 자리 잡는다.

▲ 영화 <덩케르크> 스틸 이미지

일반인들이 요트를, 어부가 어선을 이끌고 영국해협을 건너가 적기의 폭격의 위협을 아랑곳하지 않고 군인들을 탈출시킨, 위기에서의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는 협동정신이다. 나보다 너를, 우리보다 저들을 배려하자는 이 숭고한 희생정신은 불행한 전쟁이 인류에 가르친 교훈이란 아이러니라니!

뉴튼의 만유인력,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 그리고 양자역학까지 동원한 물리학의 향연으로 관객들을 이해의 혼란과 과학의 탐구에 광란하게 만들었던 ‘인터스텔라’에 비하면 매우 쉽다. 그러나 ‘다크 나이트’나 ‘인터스텔라’에 비해 상업성은 다소 떨어진다. 대신 전쟁영화의 패러다임의 변곡점 혹은 기념비는 될 수 있다. ‘쉰들러 리스트’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 식의 ‘무조건 감동을 줘 흥행에 성공하고, 더불어 영화제에서 상도 받겠다’는 속 보이는 노림수가 배제된 논픽션적 시선으로 찍었기 때문이다. 12살 이상. 20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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