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엑소가 4집음반 ‘THE WAR’를 발표하자마자 수준이 다른 파괴력과 파급력을 보이고 있다. 엑소는 2012년 1월 데뷔하자마자 스타덤에 오른 후 아이돌그룹의 명가 SM엔터테인먼트의 ‘간판’이 돼 현존하는 아이돌그룹 중 명실상부한 최정상임을 자랑하고 있다.

타이틀곡 ‘코코밥(Ko Ko Bob)’의 외피는 레게다. 각 매체들은 앞다퉈 ‘레게와 EDM이 결합된’이라는 곡 해석과, ‘엑소의 세계관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이라는 컨셉트를 보도자료 그대로 베끼고 있다. 과연 엑소의 진가는 뭘까?

먼저 ‘코코밥’에 대한 해석이다. 각 매체는 ‘재미있는 발음(Ko Ko)과 음악에 맞춰 추는 춤(Bob)’이라고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쓰고 있지만 사실 그 속에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 Koko는 스와힐리(아랍 부계+아프리카 모계 문화의 언어)로 ‘견과, 열매, 씨’ 등을 의미한다. Bob은 '머리와 몸을 까닥이다, 위아래로 흔들다’라는 영어다.

▲ 사진 : EXO_Ko Ko Bop_Music Video 화면 캡처

엑소가 진정한 뮤지션으로서의 재탄생을 알리는 시작이자, 그동안 쌓아올린 실적의 훌륭한 결과물이며, 앞으로 더 단단해질 미래를 예고하는 힘찬 용틀임이란 의미다.

19세기 말 블루스의 영향을 받아 독자적으로 발달된 재즈는 스윙재즈로 절정을 이루다 1940년대 접어들어 답보상태에 빠지게 됐다. 그때 재즈를 되살려 모던재즈 시대를 열고, 오늘날의 모든 재즈의 하위 장르를 만든 주법 혹은 하위 장르가 바로 밥(혹은 비밥)이다. 비밥은 기존의 질서를 모두 무너뜨리는 자유로운 화성과 리듬으로 재즈의 3대 요소 중 가장 중요한 임프로비제이션(즉흥성)을 강조한 잼세션에서 비롯된다. 그만큼 영혼을 자유롭게 몸을 뜨겁게 만드는 음악이다.

더불어 밥은 사람의 이름이기도 하다. ‘코코밥’의 장르가 레게다. 그렇다면 레게의 아버지라 불리는 밥 말리(자메이카)의 오마주다. 밥 말리는 1963년 3인조 웨일링 웨일러즈로 데뷔해 후에 밥 말리와 웨일러즈로 이름을 바꾸고 저 유명한 ‘No woman, no cry’를 히트시킨다. 그의 히트곡 ‘I shot tht sheriff’를 에릭 클랩튼이 리바이벌해 1974년 빌보드 차트에 랭크시키면서 레게와 말리를 전 세계에 알린다.

카리브해 북부 서인도 제도에 있는 섬나라 자메이카는 1655년 크롬웰의 파병 이후 영국의 식민지가 됐지만 1959년 완전한 자치정부를 구성한 뒤 1962년 영국 연방 내의 독립국이 됐다. 1830년대 서인도제도에서의 노예제도가 폐지되기 전까지 노예무역의 중심지로서 40만 명의 아프리카(주로 에티오피아) 흑인노예가 매매된 아픈 역사의 현장으로 인구의 90% 이상이 흑인이다.

레게는 자메이카 영어로 ‘최신유행’이란 의미다. 1960년대 초 4분의2박자 혹은 4분의4박자로 기타를 쥐어뜯듯 연주하는 스카를 기반으로 해 아프리카와 자메이카 토속음악, 흑인의 소울과 블루스, 백인의 록, 재즈 등 상위 개념의 대중음악이 뒤섞여 창조된 장르다.

다분히 억압받고 학대받은 에티오피아와 자메이카 원주민의 한의 정서가 담겨있고, 카리브해 특유의 여유와 낭만 그리고 에로틱한 분위기가 공존한다. 나른하면서 우울하고, 흥겨우면서 분노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며, 급진적이면서 몽환적이기도 하다.

1945년 자메이카의 모든 흑인이 그렇듯 말리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0살에 아버지를 잃음으로써 더욱 황폐한 삶을 살아야 했다. 14살에 학교를 중퇴하고 용접공으로 일하면서 그가 느꼈을 절망과 낭패와 불안 등은 오히려 억압받는 동병상련의 국민들에게 희망의 실마리를 풀어줄 뭔가의 길을 선택해야한다는 의지를 줬고, 그게 음악으로 승화됐다.

그는 단지 자메이카 국민의 오늘을 위로하고 내일을 격려하는 노래만 부른 게 아니었다. 매우 진보적인 성향의 ‘Revolution’ 같은 곡을 통해 정치적으로 불안했던 조국의 미완의 시스템에 저항하는 혁명을 부르짖기도 했다. 그 근간은 자메이카 국민들의 절대적 신념이자 레게의 이념이기도 한 라스타파리아니즘이다.

라스타파리아니즘은 에티오피아의 황제였던 하일레 셀라시에 1세(집권 1930~74)의 본명 라스 타파리 마콘넨에서 유래한 민족의식이자 종교다. 성경을 흑인의 시각으로 해석함으로써 예수가 흑인이라고 주장한다. 정신적 자유는 물론 신체적 소중함을 강조하는데 신체의 어떤 부위도 자르면 안 된다는 교리를 가짐으로써 소위 레게머리라는 드레드락 문화를 낳았다.

또한 에티오피아 국기의 빨강 노랑 초록과 연계된다. 피의 빨강은 충성심, 황금의 노랑은 번영과 종교의 자유, 초원의 초록은 자원을 의미한다. 자메이카를 상징하는 모자 역시 이 3색으로 구성된다.

말리는 생전에 “음악으로 혁명을 일으킬 순 없지만 사람들을 깨우칠 순 있다. 그래서 레게는 단순히 신나는 음악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 바탕은 그가 데뷔하던 당시 미국에 포크와 록을 매개로 반전 및 평화를 통한 인권운동을 주도한 히피 문화에 있다. 당시 포크계의 대표적인 반전 여성 싱어송라이터 조안 바에즈는 말리의 음악을 리바이벌했다. 당연히 우드스탁 페스티벌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EXO는 태양계 외행성을 뜻하는 Exoplanet에서 모티브를 얻어 ‘미지의 세계에서 온 새로운 스타’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자메이카는 레게가 알려지기 전까지만 해도 ‘미지의 세계’라 불릴 만했다. 미국에 수많은 노예를 공급함으로써 발전과 부흥에 이바지했지만 영국의 식민통치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신산한 삶을 살았다. 멕시코나 남미 등 대륙에 소속된 것도 아닌 비주류다.

▲ 사진 : EXO_Ko Ko Bop_Music Video 화면 캡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리와 레게는 전 세계의 음악의 지도부터 유행과 문화 등을 바꿔놓았다. 엑소의 ‘코코밥’은 그런 SM의 전략적 차원의 도약적 의미를 함축한 듯하다. 엑소가 그런 원대한 세계관을 가졌다고 보기엔 아직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적어도 SM 혹은 이번 음반의 프로듀서들이 레게를 선택한 저변엔 그런 말리의 급진적 성향과 음악성에 대한 의식이 깔린 듯하다.

EDM은 사실 장르라기보다는 트렌드를 반영한 일종의 테크닉, 즉 아날로그 시절로 따지면 주법이나 편곡기법이다. 엑소의 주요 타깃이 10~20대이다보니 당연한 선택이지만 굳이 레게와 결합한 이유는 ‘음악 등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건 창의력인데, 그럼에도 오리지널리티를 무시하면 테크네(모방기술, 쾌락을 위한 기술)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는 진리에 근거한 것이다.

엑소는 ‘정상’적인 정규활동을 펼치는 아이돌그룹 중 가장 탄탄한 지지기반과 수익을 담보한다. 소속사 원조인 HOT에 비해 매우 탄탄한 결속력과 카리스마 그리고 스타성을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이합집산이 잦아 유통기한이 짧은 다른 아이돌그룹에 비해 생명력이 꽤 길 듯하다. 더불어 일부 멤버들의 배우로서의 연착륙 역시 팀워크를 방해하지 않고 각자의 커리어를 풍부하게 해줄 듯하다. 이제 남은 숙제는 예술의 상상력과 창의력이다. 더불어 밥 말리 같은 레전드 아티스트의 세계관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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