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김광훈 칼럼]

바이올리니스트 김광훈 교수l승인2017.07.21l수정2017.07.2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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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바이올리니스트 김광훈의 클래식 세상만사] 바흐의 걸작 중 하나인 총 6곡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에 대한 경탄과 찬미는 아무리 길게 늘어놓는다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일찍이 슈피타는 파르티타 2번의 종 악장인 샤콘느를 일컬어 “이 곡은 물질에 대한 정신의 승리이며 인류음악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조형미와 아름다움을 가진 곡”이라 극찬한 바 있다. 이 걸작에 대한 수많은 연주자들의 도전 또한 이 작품의 위대함에 대한 방증이기도 하다.

음반을 본격적으로 살피기에 앞서 연주 스타일의 변천에 대해 살펴보자. 유럽에서는 이미 60-70년대부터 정격연주, 혹은 원전연주라 불리는 연주법에 대한 관심과 고찰, 복원, 그리고 실제적인 연주와 녹음작업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본격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아 하나의 ‘세’를 형성한 것은 80~90년대를 넘어오면서부터일 것이다. 확실히 1900년대 중반에서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의 연주경향은 바로크 마스터인 바흐의 모습을 오롯이 드러내는 것이라기보다는 좀 더 풍부한 표정과 ‘포장’에 주력한 연주들이 주류를 이룬다. 여러분들도 익히 짐작하실 수 있는 것처럼 거의 예외 없이 모든 음들에 비브라토를 아로새기는가 하면 낭만적이고 극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혹은 첫 번째 포지션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하이 포지션으로 곧잘 올라가서 연주한다. 또 오른손 주법은 어떠한가? 피아노로 노래해서 포르테까지 크레셴도 한 다음 서서히 피아노로 되돌아오는 전형적인 바로크 연주법인 ‘메사 디 보체(messa di voce)’ 스타일은 적어도 80년대 이전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은 독주 바이올린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나아가 솔리스트 적 화려함을 과시하기 위해 풍부하고 압착된 주법으로 바흐를 연주하고 있다. 각 음들을 마지막의 순간에 자연스럽게 스윙하면서 잦아들도록 하는 바로크적 연주법보다는 마지막 순간까지 음가의 볼륨을 유지하는(심지어는 키우기도 한다) 주법이 성행했다. 하지만 80년대를 넘어오면서 비단 일부 ‘진지한’ 연주자들 뿐만 아니라 대중들 역시 원전 연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는 좀 더 녹음 뿐 아니라 실연으로도 정격 연주를 접할 기회가 잦아졌다.

정격 연주자들도 여러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크게 이야기하자면 ‘적극적이고 엄격한’ 타입과 ‘선택적이고 유연한’ 타입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는 악기의 세팅, 예컨대 짧은 지판과 당대의 낮은 피치로 조율된, 그리고 양의 창자를 꼬아서 만든 진짜의 ‘거트현(피라스트로 사의 올리브 줄과는 다르다)’을 장착한 바로크 악기와, 길이와 모양새부터 다른 바로크 활로 무장하고 바로크 시대의 곡들을 연주하는 이들이다. 후자는 엄밀히 말해 원전 연주자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바로크 시대의 음악을 연주할 때만은 적극적으로 그 당시의 방법을 따르는 이들이다. 비록 현대 활이지만 현대적인 압착된 사운드를 지양하기 위해 활을 짧게 쥐고서 연주하며, 설혹 알루미늄 줄을 이용하더라도 최대한 바로크적 사운드와 효과를 지향하기 위해 non vibrato 방식과 적극적인 제 1 포지션의 사용을 고심하는 이들이다. 어쨌거나 유럽에서 촉발된 이러한 시대연주에 대한 관심은 80-90년대를 넘어가면서 많은 정격 단체들과 솔리스트들을 양산해 냈다.

‘새로움’ 혹은 ‘전통에의 복귀’를 위한 새로운 시도는 기실 많은 우려를 낳기도 했는데, 그 중 가장 큰 문제점은 이 모든 노력들이 어디까지나 당대의 연주를 악보 혹은 문헌을 통해 유추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과연 당대의 연주가 그러했느냐 하는 ‘정통성’에 관한 질문에 대해 어느 누구도 속 시원히 대답해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기술적인 문제를 들 수가 있는데, 당시의 연주장소나 청중은 지금 같은 대규모 콘서트홀이나 작금의 수백, 수천 명에 이르는 청중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연주 자체의 볼륨에 대한 고려가 그다지 큰 변수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대의 공연장에서는 이에 대한 고려가 필수불가결한 것이 되어 버렸고 때문에 필자 역시 내로라하는 시대 악기 앙상블 단체들의 실연을 종종 접했지만, 그때마다 거의 대부분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이들의 빈약한 사운드로 인해 음반에서 접했던 바로크 특유의 강렬한 대비가 아쉬웠던 기억이 많다.

▲ 사진=요한나 마르치(유튜브 화면 캡처)

음반을 남긴 연주자들의 면모를 보자면 크게 두 부류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 곡에 대한 경외심이 큰 나머지 연주 경력의 마지막, 혹은 충분한 연륜이 쌓인 후에야 녹음을 남긴 부류가 있는가 하면 그러한 중압감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상태로 녹음을 남긴 연주자들도 있다.

감정 표현의 따스함과 인간미를 느끼기에는 요한나 마르치의 바흐 녹음이 제격이다.

지나치게 거창하고 위압적이다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헨릭 쉐링의 두 차례의 바흐 녹음은 한 사람의 연주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풍부한 다성적 효과의 구현과 한음 한음을 어루만지는 정성스러움만으로도 그 가치가 남다르다.

나탄 밀슈타인 역시 두 차례의 녹음을 남기고 있는데 선이 가늘고 기민하며 빠르고 예민한 느낌의 그의 연주는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고증이라기보다는 그의 스타일 탓에 부분적으로 원전 스타일의 느낌도 묻어난다.

▲ 사진=아르튀오 그루미오(유튜브 화면 캡처)

아르투르 그뤼미오의 녹음은 울림이 심하다는 단점을 제외하면 현대적 주법으로 녹음된 훌륭한 바흐 연주 중 하나다.

기돈 크레머 역시 여러 차례의 바흐 녹음을 남기고 있는데 과연 ‘사고하는 지성’이라는 그의 별칭답게 크레머는 바흐에서조차 바흐에의 온전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의 족적을 아로새기고 있다.

시게티, 볼프강 슈나이더 한, 메뉴인, 하이페츠, 이착 펄만 등이 현대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다채로운 녹음을 남기고 있지만 필자는 반드시 들어보아야 할 바흐 녹음으로 오스카 셤스키의 것을 꼽고 싶다. 음색 자체가 묵직하고 거장적 통찰력을 가진 셤스키의 연주는 바흐의 우주적 스케일과 구조를 통찰력 있는 시각으로 들려준다. 앞서 언급한, 그리고 미처 언급하지 못한 바흐 녹음들까지 포함한다면 현대 바이올린과 현대적 주법으로 녹음된 바흐의 음반 숫자는 원전의 그것을 훨씬 상회한다.

원전 녹음에 관해서라면 81년 녹음인 지기스발트 쿠이켄의 녹음을 반드시 언급해야 할 것이다. 쿠이켄 가문은 원전 연주로 널리 알려진 집안이며 적어도 음반 상으로는 쿠이켄의 녹음이 전곡 녹음으로서는 최초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음들을 풍부하게 하나의 코드로서 다루지 않고 분산 화음으로 연주하는 기법, 각 음들의 세밀한 분절, 활 아래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비브라토를 절제하며 발음과 뉘앙스 조절에 보다 많은 디테일을 기울이는 등 이 녹음은 바로크 스타일의 기본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지나칠 정도로 감정의 절제에서 오는 활기의 부족과 곡에 대한 소극적인 해석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 사진=레이첼 포저(유튜브 화면 캡처)

필자는 바로크 무반주 연주에 관해서라면 레이첼 포저의 녹음을 적극 권하고 싶다. 쿠이켄의 녹음처럼 지나치게 차갑지 않으면서도 바흐 특유의 감성을 따스한 표정과 설득력 있는 해석으로 그려 냄으로써 원전 연주에 대해 부정적 선입견을 가진 사람에게도 어필할 긍정적 요소를 많이 내포한 녹음이다.

존 홀로웨이나 얍 슈뢰더, 루시 반 델 그리고 모니카 허젯 등도 당대 악기의 녹음을 남기고 있지만 엘리자베스 월피쉬의 녹음은 따로 언급할 만 하다. 월피쉬는 바로크 특유의 시대정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부드러움을 내포한 적절한 아티큘레이션으로 매우 설득력 있는 연주를 들려준다.

마지막으로 현대 악기를 연주하면서도 모든 바로크적 스타일과 가능성을 보여주고 들려주는 최근 녹음들을 짧게 언급하고자 한다. 비록 전곡 녹음은 아니지만 일리야 그린골츠는 그의 파르티타 녹음에서 바흐 무반주 파르티타가 가지는 근원적 가치 -춤곡-에 대한 흥미로운 이해를 들려준다. 바로크에 대한 무한한 자유, 예컨대 꾸밈 음에 대한 색다른 고찰이라던 지 원전과 현대적 연주의 모든 이점을 취합하여 원전에 근간을 두되 바흐의 인간미와 낭만성을 설득력 있게 들려주는 연주를 찾는다면, 내한하여 전곡을 들려준 바 있는 크리스티앙 테츨라프의 전곡 녹음을 권하고 싶다. 최근에 또 한 차례 전곡 녹음을 선보이며 이 곡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기도 했다. 전 곡의 정점이라 할 만한 샤콘느의 해석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적어도 현대 악기를 연주하면서 바로크적 자유를 설파하는 녹음으로는 최근의 연주 중에서도 돋보이는 수연이다.

▲ 바이올리니스트 김광훈 교수

[김광훈 교수]
독일 뮌헨 국립 음대 디플롬(Diplom) 졸업
독일 마인츠 국립 음대 연주학 박사 졸업
현) 코리안 챔버 오케스트라 정단원
가천대학교 음악대학 겸임 교수
전주 시립 교향악단 객원 악장
월간 스트링 & 보우 및 스트라드 음악 평론가

바이올리니스트 김광훈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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