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대한 경외서 시작한 드론풍수 [정동근 칼럼]

정동근 승원역학연구원 원장l승인2017.07.21l수정2017.07.2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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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정동근의 명리학 산책] 드론풍수는 자연에 대한 겸손함부터 시작됐다. 필자는 항상 비행기 탑승 시 마다 창 쪽을 선호한다. 구름 밑에 넓은 자연과 도시를 볼 수 있어서이다. 그리고 구름 위로는 광대무변한 자연 현상을 볼 수 있어 좋아서다. 말 그대로 걸그룹 EXID 의 노래 ‘위아래’ 가사 ‘위 아래 위위 아래~’처럼 위(이륙) 아래(랜딩) 위위(이륙,이륙) 아래(랜딩)인 것이다.

드론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풍광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비행기의 매력은 구름 사이로 보이는 둥그런 무지개다. 드론은 국내에선 아직 고도제한이 있기 때문에 무지개를 볼 수 없는 단점은 있다.

요즘 드론을 레이저나 다른 장비로 제압하는 것이 많이 나오는데 국내서는 그러한 것이 불필요할 듯하다. 이유는 풍수를 수호하는 까마귀가 드론을 툭툭 쳐서 떨어트리기 때문이다. 드론으로 풍수를 보는 필자도 몇 번 경험했던 내용이다.

사람의 시각에선 눈높이 수직(하늘), 하강(땅) 좌, 우, 정면만 볼 수 있다. 그러나 자기 뒷모습은 못 본다. 그래서 뒤통수 조심하란 은어도 있는 듯 하다. 풍수도 그러하다. 사람의 시각에서 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필자는 풍수를 과학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드론풍수를 도입한 것이다.

내 자리 주변엔 물도 산도 건물도 있다. 여기까진 눈으로 알 수 있으나 어떤 모양인지 아는 데 까진 한계가 있다. 기술의 발달로 드론이 출시되면서 드론풍수 시대를 열 수 있다는 기쁨으로 계획을 세우기 시작됐다. 아름다운 비경을 가진 제주에서 말이다.

제주도 숨은 명당 보목동

서귀포시에 보목동(甫木洞) 이란 마을이다. 좌측으로는 지새오름, 우측 남서방면으론 섶섬 뒤로는 한라산의 꼭지점, 그리고 멀지않은 곳에 쇠소깍이 있다. 마을 옆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바다로 빠져나간다. 단순한 동네로 보기에는 어려운 이유다.

오랜 역사 기록을 보면 임금의 왕릉에서 밤에 하늘을 보면 북두칠성 별자리가 보인다고 했다. 그런데 이 마을에서 그러한 별자리가 계속 보이는 게 심상치 않아 유심히 지켜봤다. 마을 유래를 살펴보자.

동쪽에는 절산(寺岳)이 우뚝 솟았고 서남쪽 바다에는 섶섬, 서쪽으로는 서귀동이 있으며 멀찍이 북쪽에 한라산이 물러앉아 있다. 이 마을에는 지금으로부터 300여년 전인 1685년 경에 속칭 고막곶(古幕串)이라고 불리우는 곳에 백(白)씨와 조(趙)씨가 설촌했다고 구전돼 온다.

그 유적으로는 고막곶 일원에는 담줄에 대나무들이 남아있고 올래의 흔적도 보인다. 또한 백밭, 백개돌래, 조개우영, 조개돌래 등의 지명이 남아 이들 성씨가 산 것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살았던 것은 지명과 구전으로만 전해올 뿐 그 후예들은 지금 이 마을에 없다. 그 당시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은 근처에 있는 속칭 물통동산과 무남통에 고인 봉청수를 식수로 사용했는데 여러날 비가 오지 않으면 벌레가 생기는 등 물이 좋지 않아서 상피병으로 추정되는 질병이 주민들에게 생겨 고통을 받았다.

그래서 풍수지관을 찾아 원인을 상담한 결과 비가 온 후 날이 개인 날 절오름 표면에 햇빛이 쨍쨍하게 비칠 때 암반에서 내리는 물이 햇빛을 되받아 고막곶으로 반사되는 것이 흉조라고 나왔다.

그 후 주민들은 살던 오막살이를 남겨둔채 모두 어디로 인지 이주하여 버린후 부터는 그곳에 남아있는 사람이 없어 폐촌됐다고 구전되고 있다. 시간이 한참 흘러 1715년께 절오름 서쪽과 정수내 동쪽 사이에 청주(淸州) 한(韓)씨가 호근리로부터 이주해와 살기 시작하면서 부락이 형성되고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인구가 점차 증가하자 정수내 하류 서편에도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는데 지금까지도 섯가름이라고 불리는 곳이 그곳이다. 그 후 한씨, 양씨, 강씨, 이씨 등이 차례로 입향해 정착하기 시작했으며 정수내를 중심으로 동쪽마을을 볼래낭개(甫涯木浦), 서쪽을 남보리(南甫里)라 불렀다.

이 무렵 연주(延州) 현(玄)씨와 제주(濟州) 고(高)씨 등이 인근에 살았는데 지금도 물통동산 옆에 속칭 ‘현(玄)동장우영’이 있다. 그 후 이곳은 해적들의 침입이 잦은데다 여건이 좋지 않았으므로 현재 마을이 있는 곳의 숲을 쳐내어 집을 짓고 옮겨 살았다.

일설에는 당초 벌목(伐木)리라는 이름이 숲을 쳐냈다는데서 유래했다고 하며 볼래낭개란 말은 바닷가 벼랑에 보리장 나무들이 많았던 데서 연유했다고 전한다. 그 후 1589년 경에 현재 이름인 보목리로 개칭됐고 그 후인 1600년대에는 애월읍 소길리로부터 제주(濟州) 양(梁)씨, 1680년 경에는 이(李)씨, 1700년 경에는 김(金)씨와 강(康)씨 등이 입주해 마을이 커졌다.

섶섬이 마주 보이는 이 마을 바닷가에는 해적과의 싸움을 벌인데서 이름이 연유했을 것으로 보이는 쌈싼이코지가 있으며 현재 서귀포 쪽 마을 입구에서 보목초등학교 앞까지 사이에 무더기 무덤들이 들어서 있던 한무덤골이 있었으나 과수원을 조성해 모두 파헤쳐졌다.

이런 쌈싼이코지와 한무덤골 등 일련의 지명들은 이 곳이 과거 격전지였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마을 앞 바닷가에는 ‘연태개(浦)’도 있어 외적의 침입에 맞서 싸웠던 이 고장 사람들의 의지를 엿보게 했다.

마을 주민에게 직접 물어보니 보목동에는 보물이 있다고 한다. 영험한 비구니 스님만 들어갈 수 있는 동굴이 근처에 있다고 했다. 필자는 한라산에서 혈자리 기운이 보목동으로 강하게 내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좋은 자리에 위치한 마을의 집터 방향들이 전부 제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신서귀포 공항이 개발 확정됨으로써 서귀포시에 관광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보목동은 재조명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 말하지 못한 것이 있기에 제주도 풍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 정동근 승원역학연구원 원장
정동근 승원역학연구원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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