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택시운전사’, 라이벌 아닌 공동체 [유진모 칼럼]

유진모 칼럼니스트l승인2017.07.24l수정2017.08.0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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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군함도> 스틸 이미지                        ▲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스파이더맨: 홈 커밍’에 이어 ‘덩케르크’가 극장가를 휩쓸고 있는 가운데 오는 26일과 내달 2일 한국영화계의 기대작 ‘군함도’(류승완 감독, CJ엔터테인먼트 배급)와 ‘택시운전사’(장훈 감독, 쇼박스 배급)가 일주일 간격을 두고 개봉됨으로써 관객들의 기대치를 끌어올리고 있다.

벌써 ‘쌍천만’이니 하는 설레발이 나올 정도다. 일각에선 두 작품의 흥행대결 구도로 몰아가기도 한다. 치열하게 경쟁을 하더라도 그건 두 작품이 나란히 흥행에 성공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적지 않은 누리꾼이 ‘두 작품 모두 필독서’라며 역사에 푹 빠질 태세인 이유다.

‘군함도’와 ‘택시운전사’의 총제작비는 각각 260억 원과 150억 원.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을 소재로 픽션을 가미함으로써 보편적인 상업영화와 정체성을 달리하는 의미 깊은 작품이기에 이런 제작비가 아낌없이 투입된 듯하다. 각각의 손익분기점은 700만 명과 450만 명. 하지만 그건 배급사의 사정이고 관객들은 국정교과서로 역사를 왜곡하려 했던 박근혜 정권이 무너지고 그 추종세력이 실권한 현시점에서 나란히 개봉되는 두 영화의 값어치에 주목하는 분위기.

▲ 영화 <군함도> 촬영 현장

‘군함도’는 ‘베를린’ ‘베테랑’ 등으로 꽤 탄탄한 상업영화 만듦새를 인정받은 류 감독의 이름이 먼저 신뢰도를 높인다.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란 멀티캐스팅은 멀티플렉스에서 선택의 주도권을 쥔 여성들을 움직이기 좋은 조건이다.

일제강점 말기 석탄채굴인부로 강제 징용돼 노동력을 착취당함은 물론 생명까지 희생당하는 조선인들이 인공섬 하시마를 탈출하는 얘기가 기둥줄거리. 패전이 임박했음을 깨달은 일본 지도층에서 하시마의 일본군에게 퇴각 명령을 내리자 책임자가 전범재판에 회부될 것을 우려해 증거인멸을 위해 섬의 조선인들을 몰살하려 한다는 내용이 당시의 일제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잘 보여준다. 더불어 역사의 위기 속에서 빛나는 영웅도 있었지만 반대로 나라와 민족을 배신한 매국노도 공존했음을 강조한다.

영화는 상업적 재미와 역사적 메시지 중 어느 것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류 감독은 우선 역사를 왜곡하려는 일제의 후안무치함을 고발하는 데 무게를 싣는다. 조선 강제합병을 궤변으로 합리화하고, 내선일체라는 자가당착으로 혹세무민하려 한 일본의 제국주의의 망상과 폭력을 군함도라는 작은 공간 안에 농축된 형태로 재현한다.

▲ 영화 <군함도> 스틸 이미지

좁은 갱도 안에서의 채굴작업을 아직 엄마 품이 그리울 어린 소년한테 시키는가 하면 그 섬에서마저 일본군의 성노리개로 조선의 여성을 끌고 오는 것도 모자라 고위층은 아동성애까지 즐기려 한다는 참담한 설정은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을 믿지 못하는 요즘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 우리의 아픈 역사를 가르치는 새삼스런 교과서다.

주인공 캐릭터와 장르(설정)도 다양하다. 오직 돈과 딸밖에 모르는 강옥(황정민)은 경성에서도 일본경찰을 매수하더니 군함도에서도 일본군을 매수해 제 편리를 도모한다. 종로깡패 칠성(소지섭)은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는 게 목적이고, 위안부와 매춘부로 산전수전 다 겪은 말년(이정현)은 의외로 인간미를 지녔다.

하도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다보니 좀 산만하다. 뜬금없는 로맨스 역시 설득력이 부족하다. 뭣보다 말미의 하이라이트인 전투 신은 영화의 진중한 의의를 윤색시키는, 감독의 과욕이 부른 패착이 될 수도 있다. 조선인과 일본군의 치열한 전투는 각자의 잘잘못을 떠나 공통된 생존의 본능임은 확실하다는 점에서 타당성을 갖지만 그 속에 재미와 감동을 한꺼번에 담으려다 보니 ‘라이언 일병 구하기' 혹은 '쉰들러 리스트'가 돼버렸다.

곳곳에 포진된 류 감독 특유의 유머는 장점이다. 특히 강옥의 딸 역을 맡은 김수안은 제대로 존재감을 뽐낸다. 관객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전의 서스펜스 역시 쫀득하다.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 이미지

‘군함도’가 상업적 구조에 충실했다면 ‘택시운전사’는 주인공들의 감정선에 집중한다. 그 중심에 한국 ‘기사’와 독일 ‘기자’가 있다. 서울의 택시운전기사 만섭은 밀린 집세를 내기 위해 광주의 진실을 취재하러 온 피터(토마스 크레취만)를 태우고 어렵사리 광주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택시가 손님을 거부하면 안 된다’는 현지 택시 기사(유해진), ‘기자는 진실을 보도해야 한다’는 현지 신문기자(박혁권), ‘공부가 아니라 대학가요제 나가려고 대학에 갔다’는 현지 대학생(류준열)을 한꺼번에 만난다. 그리고 그는 진실을 보는 시선을 갖추게 되고,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가 뭔가 깨닫게 된다.

만섭은 사우디아라비아 건설현장에서 고생하며 벌어온 전 재산을 털어 개인택시를 샀다. 아마 개인택시기사 자격을 얻는 데도 돈이 들었을 것이다. 지금도 부정부패가 횡행하는데 그때는 오죽했을까?

▲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 이미지

전형적인 ‘꼰대’인 그는 시위하는 대학생들이 이해가 안 된다. 그런 사람들은 사우디에 한 번 보내야 정신을 차린다고 굳게 믿는다. 그래서 그는 서울에 있을 때 방송과 신문이 떠드는 데마고기를 그대로 믿었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에서부터 시작돼 박정희를 거쳐 전두환에게까지 전승된 프랙털 장기독재구조가 낳은 ‘빨갱이’란 스케이프 고트에 대한 혐오감과 포비아는 그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핍진성만 두드러진 방송과 신문의 보도를 그대로 믿고 군사독재정권의 포크배럴을 위한 크레덴다를 숙명적인 체제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가 직접 눈으로 본 광주의 콩켸팥계는 한마디로 아비규환의 지옥도와 다름없었다. 군인들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무차별 폭행을 가하는 것은 물론 비무장의 시민들을 향해 거침없이 총을 난사했다.

만섭은 오로지 홀로 있을 어린 딸의 안위가 걱정됐고, 피터에게서 요금 10만 원을 받아 밀린 월세를 갚는 게 운행의 목적이었지만 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급속도로 변해간다. 인권은 물론 생명의 소중함마저 유린된, 희망이 가뭇없는 현실 속에서도 연약하고 다친 사람들을 구하려 제 목숨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광주시민들에게서 깨달음을 얻은 그는 시대의 진정한 ‘가장’으로 거듭난다.

피터는 처음엔 만섭을 돈벌이에 혈안이 돼 이기심만 가득 찬 중년으로 봤다. 하지만 스스로 변해가는 그를 통해 한국의 양심을 보고, 한국의 희망을 확신한다. 그래서 그는 오로지 기자정신에 근거해 한국인의 휴머니즘을 응원하는 데 주저함 없이 사지를 누비며 뛴다.

▲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 이미지

‘군함도’의 주인공이 산개해있다면 ‘택시운전사’는 확실하게 송강호를 믿고 거의 모든 걸 맡긴다. 유해진의 코미디가 설 자리가 없으며, 류준열은 그냥 임팩트 강한 존재감을 던지곤 금세 바통을 송강호에게 넘긴다. 투톱이어야 마땅할 크레취만마저도 절제의 미덕을 준수한다. ‘사도’와 ‘밀정’에서 그랬듯 송강호는 얼굴 잔주름의 미세한 떨림마저도 감정의 변화에 적용시킨다. 참으로 몇 안 되는 온몸으로 연기하는 배우 중 단연 선두다.

물론 옥에 티도 있다. 후반부의 카 체이싱 시퀀스다. 하지만 뭐 어떠랴? 크리스토퍼 놀란 같은 완벽한 감독은 수백 년 만에 한 번 날까 말까한 대중예술 작가인 걸.

제국주의를 그리워하는 망령은 아직도 열도 곳곳에 살아있고, 정권과 밀착해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빨갱이’들의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매국적 반민족적 정서 역시 악령으로 잔존해있다. ‘군함도’와 ‘택시운전사’는 재미와 완성도를 떠나 역사 바로 세우기의 복습이자 신호등이라는 점에서, 또 이런 영화에 대기업이 투자했다는 점에서 의미와 평가를 따로 받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유진모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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