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청년경찰>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청년경찰’(김주환 감독, 롯데엔터테인먼트 배급)은 할리우드 ‘러시아워’ ‘나쁜 녀석들’이나 한국의 ‘투 캅스’ 같은 상업적 형사 버디무비가 추구하는 흥행공식에 충실한 영리한 작품이다. ‘덩케르크’ ‘군함도’ ‘택시운전사’ 등 꽤 묵직한 대작들이 즐비한 ‘몸비시즌’에 뛰어드는 시기선택조차 절묘했거나 운이 좋았다.

경찰대학 입학식에 참가한 신입생 기준(박서준)과 희열(강하늘)은 첫눈에 갈등하거나 아니면 아주 친해질 것을 직감한다. 비교적 넉넉한 집안에서 자란 특수고 출신의 희열은 카이스트 대신 이곳을 선택한 괴짜다. 미혼모 슬하에서 자란 기준은 오직 가정형편 때문에 학비가 무료인 이곳에 악착같을 수밖에 없었다. 사정은 각자 다르지만 두 사람은 어떻게든 낙오하지 않고 졸업해 경찰이 되고자 노력한다.

바늘 하나 안 들어갈 것 같은 훈련단장 주희(박하선)가 산악구보를 명령한다. 낙오자는 퇴학에 가까워진다는 추상같은 명령. 하산 중에 발목을 접질린 희열이 도와달라고 애원하지만 동기들은 외면한다. 그러던 중 지나가던 기준은 “한우 사주겠다”는 희열의 유혹에 넘어가 그를 업고 내려오는 바람에 꼴찌를 한다. 그러나 전후 사정을 파악한 주희는 두 사람을 뺀 모두에게 벌을 주고 이를 계기로 둘은 단짝이 된다.

▲ 영화 <청년경찰> 스틸 이미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지만 여자친구가 없어 고민하던 둘은 자신들보다 못생긴 재호에게 ‘퀸카’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 비결을 묻곤 지도교수 양 교수(성동일)에게 부탁해 외박을 나간다. 그들이 찾은 강남의 클럽은 별천지였다. 촌스러운 복장에 돈도 없는 그들을 ‘섹시녀’들이 거들떠볼 리 만무. 실망한 그들이 허름한 주점에서 소주를 마시고 길거리를 배회하다 한 여학생이 납치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자격도 힘도 경험도 없는 그들은 단지 정의감 하나만으로 수사를 시작한다. 학교에서 배운 이론과 본능에 의해 현장에서 발견한 떡볶이 봉지 하나로 우여곡절 끝에 피해자가 가출한 여고생 윤정이고, 비슷한 처지의 청소년들과 함께 산다는 것을 알아내 숙소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잡은 불량청년이 대림동에 있는 조선족 폭력조직에게 윤정을 팔아넘긴 것을 알아낸다.

오로지 혈기 하나만 믿고 덤볐던 게 잘못이었다. 그곳의 범죄조직은 단순한 동네 양아치가 아닌 조폭 이상의 단체였다. 둘은 그곳에서 믿지 못할 참혹한 광경을 목도하고 무모하게 덤볐다가 맥없이 붙잡혀 오히려 장기가 적출될 위기에 처하는데.

▲ 영화 <청년경찰> 스틸 이미지

감독이 영악한 건지 운이 좋았던 건지 박서준과 강하늘의 조합은 흠잡을 데가 없다. 어디까지가 시나리오고, 어디서부터가 애드리브인지 헷갈릴 정도로 그들의 언행은 싱싱한 유산균이다. 여자에게 어필하기 위해 억지로 만드는 작은 미소, 결투 중 얻어맞은 코의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얼굴을 찡그리는 설정, 그리고 기절한 기준을 깨우기 위해 희열이 침도 모자라 가래침까지 끌어올리는 장면 등은 정말 기발하다.

행동만큼 언어 역시 통통 튄다. 대사 자체의 신선도가 뛰어나기보다는 매우 현실적인 언어를 두 사람이 천연덕스럽게, 또 자연스럽게 소화해내며 상황을 그럴듯하게 몰고 간다는 게 강점이다. ‘피식’ ‘풋’ 하는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잔잔한 재미와 더불어 “내가 저 나이 땐 그랬지” 혹은 “어, 저거 우리 모습인데”라고 기시감을 주는 마력이 매력이다.

영화의 구성과 전개도 썩 훌륭하다. 처음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하이틴의 사회적응을 위한 인턴과정 혹은 있는 그대로의 대학 입학생의 캠퍼스 일기다. 이후 윤정의 납치의 동기와 그 진실을 가리는 미스터리 스릴러로 변주되더니 날것의 액션이 웬만한 정통액션 못지않게 긴장감을 조성하며 전개된다.

▲ 영화 <청년경찰> 스틸 이미지

물론 기승전결의 구성은 전형적인 컨벤션이고,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설파하고자하는 메시지 역시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클리셰다. 하지만 감독은 영악했다. 어느 시대건 대중이 원하는 기준은 똑같다는 점, 대중이 아파하는 것, 좋아하는 것, 추구하는 것, 불만스러운 것 등의 개념은 비슷하다는 점 등에 주목했다.

클럽에서 만난 ‘섹시녀’는 기준과 희열에게 “군인이니? 휴가 나왔니?”라고 묻는다. 경찰대학생이라고 답하자 “돈도 못 버는 거 뭐하러 해요?”라고 깔본다. 두 친구가 윤정이 납치된 승합차를 쫓다 놓친 뒤 강남경찰서로 와 신고를 하자 경찰대 선배라는 형사는 “서장님 지시가 먼저”라며 한 소녀가 죽거나 최소한 엄청난 비극을 맞게 된 사건을 외면한다.

양 교수는 과거 강력반 형사로 혁혁한 공을 세운 유경험자고, 나름대로 소신도 갖고 있는 진짜 경찰이다. 그는 두 친구의 열정과 인도주의 등을 충분히 인정하고 자신이 가진 능력 안에서 최대한 돕지만 절차란 현실의 벽은 깨부술 수 없는 ‘꼰대’에 머문다. 조직과 그걸 존속하고 강화하는 체계라는 형식은 무기가 아니라 올가미라는 걸 알면서도 깰 수 없다.

▲ 영화 <청년경찰> 스틸 이미지

감독은 경찰의 사명감이나 사람으로서의 할 도리는 결코 다르지 않다는 걸 강조하면서도 경찰조직 내부의 경직된 사고와 비현실적인 탁상행정 등을 비꼬는 데 주저함이 없다. 희열은 ‘수사’를 위해 불법 유사성행위업소인 ‘귀파방’에 손님을 가장하고 잠입하는데 갑자기 경찰이 이곳을 조사하려 하자 밖에서 망을 보던 기준이 경찰을 향해 “야 이 짭새들아”라고 도발하며 그들의 시선을 분산시킨다.

경찰이 되기 위해 경찰대학에 입학한 젊은이가 존경하거나 최소한 우대해야할 선배를 희롱하는 건 긴박한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나 이 시퀀스에 숨은 의미는 기존의 안일하고 상투적이며 때론 경찰 본연의 소신 따윈 잊고 타성에 젖어 샐러리맨 생활을 하는 경찰에 대한 강력한 알레고리다.

▲ 영화 <청년경찰> 스틸 이미지

양 교수는 ‘수사의 3가지 방법은 피해자중심 물품중심 현장중심’이라고 가르치지만 기준은 시험지 답안에 ‘열정 집념 진심’이라고 적는다. 기준이 경찰대학에 입학한 이유는 사회에서 정의의 몽둥이나 봉사의 지팡이가 되고자 했던 게 아니라 오로지 생계형이었다. 하지만 진실한 열정이 살아 숨 쉬는 그는 발정 난 수캐처럼 여자들의 꽁무니를 좇다가도 위기에 처한 사람을 보면 용광로 같은 정의감을 불태울 줄 아는 건강한 예비경찰이었다.

모든 경찰과 지망생들에게 보내는 의무와 책임의 지침서치고는 참으로 쉽고 재미있으며 의미심장하다. 쿠키영상까지 눈에서 하트가 솟아나게 만드는 귀여운 영화다. 109분 15살 이상. 8월 9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