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류승완, 왜 ‘뜨거운 감자’ 됐나 [유진모 칼럼]

유진모 칼럼니스트l승인2017.07.29l수정2017.08.03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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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군함도>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군함도’(류승완 감독, CJ엔터테인먼트 배급)가 개봉되자마자 첫날 95만여 명이라는 기록적인 스코어를 기록하고 중국 언론에서 극찬을 받는 동시에 국내 관객 사이에서 역사왜곡 혹은 류 감독의 역사의식 결여, 그리고 스크린 독과점 논란 등으로 냉탕과 온탕을 오가고 있다.

배급에 관해서만큼은 류 감독은 죄가 없다. CJ의 형제인 CGV나 유사한 재벌 멀티플렉스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는 유기적인 협력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고, 무려 220억 원을 쏟아부은 CJ 입장에선 손익분기점인 800만 관객 동원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미 기본 개런티를 챙긴 류 감독 입장에선 잘되면 아내가 운영하는 제작사가 큰돈을 버니 홍보에 최대한 협력하면서 스크린 독점을 내심 즐거워하면 될 따름이다.

역사왜곡은 확실하다. 어린 소년조차 구부려야 하는 지하 1000m의 좁은 갱도, 물이 흥건히 고인 돼지우리보다 못한 숙소, 조선 여성들로 꾸민 유곽, 강옥(황정민)의 어린 딸 소희(김수안)조차 짙은 화장을 시키고 기모노를 입혀 술자리에 노리개로 동원한 설정 등은 천인공노할 일제의 만행을 비교적 가깝게 그려내긴 했다. 남녀를 발가벗겨 각종 병과 성병을 검사하는 비인간적인 장면 역시 비통하지만 사실적이다.

▲ 영화 <군함도> 스틸 이미지

하지만 강옥이 일본군을 매수해 갖가지 음식은 물론 술과 담배를 즐기고, 그런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이 꽤 눈에 띈다는 점 등은 기록과 완전히 다르다. 그들이 몰래 모여 전체회의를 하고 능동적인 토론까지 벌인다는 내용 역시 역사에 없던 일이다. 전투를 통한 집단탈출은 완전한 왜곡이다.

아무래도 대중의 류 감독에 대한 기대가 지나치게 컸던 듯하다. 그는 ‘부당거래’ ‘베를린’ ‘베테랑’ 등으로 기억된다. 그 외의 작품에서도 왜곡된 역사에 대한 분노나 장엄한 소명의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초기의 별명처럼 ‘액션 키드’라고 보는 게 비교적 근접한 시선일 것이다.

자비를 털어 찍은 장편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블랙코미디나 니힐리즘 등이 엿보이긴 했지만 B급액션의 성향이 앞섰다. 충무로 자본과 손을 잡고 제도권에 들어와 찍은 ‘피도 눈물도 없이’ ‘아라한 장풍 대작전’ 등은 정형화된 상업감독 대열에 본격적으로 진입한 모양새였다.

▲ 영화 <짝패> 스틸 이미지

게다가 그는 ‘장마다 꼴뚜기’가 아니었다. 대표적인 흥행실패작이 바로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였다. 평단의 악평까지 극에 달했었다. 류승완이란 이름 석 자를 가장 잘 나타내는 영화는 ‘짝패’라고 볼 수 있다. 맞으면 맞을수록 더 강해지고, 어려운 관문을 넘어설수록 더 큰 고난을 맞이하지만 그걸 즐기면서 죽음마저도 불사하는 정의감에 불타는 주인공의 액션. 각 시퀀스 안에서 생활 속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썩 훌륭한 유머로 재생시키는 능력. 리샤오룽(이소룡)과 쿠엔틴 타란티노에 대한 끊임없는 존경심.

그는 분명히 ‘군함도’를 사진 한 장에서 출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애초부터 ‘동주’나 ‘박열’의 이준익 감독과는 출발점이 다른 그다. 이 감독은 데뷔작 ‘키드 캅’으로 실패한 후 제작과 수입에 전념하며 절치부심할 때도 ‘아나키스트’를 제작할 정도로 강렬한 역사의식을 드러낸 바 있다. 그럼에도 그는 ‘황산벌’ ‘평양성’에서 역사의 본질에서 벗어나 사투리개그로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그가 욕을 안 먹은 이유는 삼국시대의 이합집산은 일제의 침략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고, 최종승자인 신라가 쓴 고구려와 백제를 폄훼한 역사를 굳이 지적하지 않으려 한 이유는 TK세력이 오랫동안 권력을 잡고 그걸 묵인함으로써 대중의 감각이 무뎌졌기 때문이다.

▲ 영화 <군함도> 스틸 이미지

그러나 이 감독은 제작에서 손을 떼고 연출에 전념함으로써 그동안 갈무리해뒀던 역사적 사명감을 본격적으로 객관화 혹은 객관화된 미메시스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류 감독이 상업적 주관화에 탐닉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다. 류승완에게 이준익을 대입하는 게 무리인 이유다.

만약 류 감독이 ‘군함도’를 ‘동주’나 ‘박열’처럼 고증을 기준으로 시대의 아픔 속에 놓인 지성과 감성의 고뇌, 그리고 애국심의 발로와 행동의 차이점에 초점을 맞추려 했다면 CJ가 선뜻 220억 원을 내놓거나 배급을 맡으려했을지 의문이 드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전까지 대기업이 정권의 입맛 맞추기 외의 이윤의 사회환원 혹은 일제청산 등에 관심을 가진 적이나 있을까?

물론 ‘이 영화를 통해 일본식민통치 하의 강제징용과 조선인들을 대하는 일본인들의 이중성을 고발하는 형식을 취했다’는 류 감독의 발언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그런 의도가 없다는 게 아니라 그곳에만 집중하지 않고 이것저것 다 취하려다보니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게 돼버렸다는 게 문제다.

▲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 이미지

분명히 ‘군함도’는 ‘쉰들러 리스트’나 ‘인생은 아름다워’와는 애초부터 아이덴티티를 달리하는 영화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비슷한 배경의 영화 중 다수가 나치의 만행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데 집중한 것과 달리 그런 지옥 같은 데서 순진한 아들을 위해 연기를 하는 바보 같은 아버지를 통해 절망 속에서 희망을 키워내는 인본주의 혹은 부성애의 숭고함을 기리고 있다.

다수의 관객이 비난하는 게 류 감독의 역사의식보단 바로 이런 영화적 완성도와 집중의 메시지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 부조리를 스펙터클의 도구로 활용해온 류 감독의 스타일이 극대화됐다고 믿은 ‘군함도’에 대한 과도한 기대 뒤에 맞은 실망감이 분노로 치환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번 논란은 류 감독에게 성숙의 계기와 발전의 기회가 되거나 상업적 업그레이드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공교롭게도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가 있는 것도 호재 혹은 악재다.

▲ 영화 <덩케르크> 스틸 이미지

‘덩케르크’는 지금까지 놀란이 연출한 영화 중, 그리고 당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 중 가장 간결하고 최고로 강렬하며 심리묘사에서 제일 절묘하다. 한 마디로 절제의 미덕! 등장인물은 많지만 주인공은 없다. 심지어 놀란의 페르소나 킬리언 머피는 이름조차 없다. 상황은 긴박하지만 대사는 적다. 독일군은 딱 한 시퀀스에 등장하지만 악랄한 행동은 없다.

관객이 하늘 땅 바다 등 세 공간에서 벌어지는 긴박하고 절박한 상황에서의 놀랍도록 아름답거나 처절한 비주얼과 이를 극대화시키는 사운드 등을 즐기며 전쟁이 인간의 심리에 끼치는 영향과 상처가 어떤 건지 직접 전쟁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전율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값어치는 ‘쉰들러 리스트’나 ‘인생은 아름다워’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다. 감독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대표작이 바뀔 지경이다.

어쩌면 일부를 제외한 다수의 국내 감독들이 갑자기 상승한 관객의 수준에 엄발나는 휘장걸음을 걷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상업영화의 극대화된 조건을 갖춘 ‘어벤져스’조차 철학을 갖추는 환경이고, 이제 국내 관객이 그걸 알아챌 만큼 지적인 상황이다. ‘영화적 설정’이라는 방어막은 설득력을 잃었다. 완성도의 가녘에서 얼거리만 갖고 덤비는 윷진아비를 믿을 관객은 없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유진모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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