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혹성탈출: 종의 전쟁>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프랭클린 J. 샤프너가 연출한 영화 ‘혹성탈출’(1968)은 인류와 유인원의 처지가 정반대인 설정 자체만으로도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관객들을 더욱 소름 끼치게 만든 건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탈출해 지구로 귀환했더니 유인원이 지배하던 행성이 바로 미래의 지구였다는 결말이었다.

이후 후속 시리즈가 지속됐지만 1편의 진중한 메시지를 뛰어넘는 덴 실패했다. 심지어는 기발한 상상력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팀 버튼의 동명의 리메이크작(2001)조차 혹평 속에 흥행의 실패를 맛봐야 했다.

하지만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루퍼트 와이어트 감독)으로 거듭난 비기닝 트릴로지는 달랐다. 두 번째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을 연출한 맷 리브스가 마무리한 ‘혹성탈출: 종의 전쟁’(이십세기폭스코리아 배급)이 오는 15일 한국 관객과 만난다.

▲ 영화 <혹성탈출: 종의 전쟁> 스틸 이미지

트릴로지의 완결편답게 2개의 전편은 물론 오리지널과 그 후속작들까지 아우르는 플롯의 구성이 탄탄하다. 과학실험의 실패로 유인원들이 지능을 갖기 시작하고, 그렇게 시저(앤디 서키스)가 유인원들의 리더가 돼 무리를 이끌고 사라진 뒤 2년이 지났다. 그동안 지구엔 시미안 플루가 창궐해 인류가 멸종될 위기에 처한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코피를 쏟고 말을 할 수 없게 된 뒤 서서히 죽는다. 반면 유인원이 감염될 경우 지능이 강화된다.

시저는 평화를 원했지만 라이벌 코바는 인류와의 전쟁에 적극적이었다. 그렇게 둘은 갈등해 결국 시저는 코바를 죽이고 유인원에게 평화를 가져온 뒤 인류의 표적을 피해 잠적해있던 상황. 그러나 대령(우디 해럴슨)이 이끄는 미국의 한 부대는 유인원을 멸절하려는 파괴본능에 불타올라 유인원의 서식지를 추적 중이다.

대령은 코바의 심복 동키를 포섭해 유인원의 전진기지를 습격한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시저의 심복 윈터는 은둔지역을 탈출해 대령의 진영에 합류한 뒤 시저의 은신처를 알려준다. 인류의 습격을 받은 시저는 눈앞에서 자신의 아내와 큰아들을 죽이고 유유히 달아나는 대령을 목도하곤 분노가 극에 달한다.

▲ 영화 <혹성탈출: 종의 전쟁> 스틸 이미지

유인원 집단은 곧 있을 대대적인 인류의 총공세 정보를 입수하곤 안전한 서식지를 찾아 떠나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리더인 시저에게 이를 간청한다. 그러나 시저는 타오르는 복수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유인원들의 대이동을 용인하면서도 자신은 대령에게 복수하러 떠난다.

그런 그에게 모리스 등 세 심복이 따라붙는다. 그들은 소수의 군인이 주둔했던 야영지를 발견하고 군인 한 명을 사살한 뒤 그곳에서 코피를 흘리며 말을 하지 못하는 소녀 노바(아미아 밀러)를 발견한다. 모리스는 강한 부성애를 발휘해 노바를 일행에 합류시킨 뒤 내내 보살펴준다.

일행이 한눈을 파는 사이 정체 모를 괴한이 말 한 마리를 훔쳐 달아나고 그를 쫓아 폐스키장까지 가 결국 잡는데 그는 시저의 일행과는 다른, 서커스 출신의 늙은 유인원 배드 에이브다. 배드 에이브의 도움으로 대령과 군대가 머무는 주둔지 인근에 도착한 시저는 동료들을 남긴 채 혼자 적진에 뛰어들었다가 생포된 후 충격적인 사실을 목격한다. 인류의 감옥인 줄 알았던 그곳은 유인원 감옥이었고, 무사히 탈출한 줄 알았던 둘째 아들 코넬리우스를 비롯한 전 유인원들이 음식과 물도 배급받지 못한 채 강도 높은 노동력착취에 시달리고 있었다.

▲ 영화 <혹성탈출: 종의 전쟁> 스틸 이미지

노바는 원작에서 인간 주인공 테일러가 유인원의 행성에서 발견한 지능이 퇴화된 관능적인 여인이다. ‘혹성탈출: 종의 전쟁’이 원작 직전의 시점이란 뜻이다. 그래서 원작에서 테일러를 돕는 유인원 지라 박사의 연인으로 등장한 동료 박사 코넬리우스의 출생까지 알린다. 시저의 어린 둘째 아들이다.

영화는 겉으론 시저와 대령으로 대표되는 유인원과 인간의 대립이다. 인간은 나날이 지능화해 인간의 경지에 이른 유인원의 진화에 겁을 먹고 그들을 멸종시키려 한다. 시저는 처음엔 공존의 평화를 원했지만 가족의 죽음 앞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또 다른 코바(증오의 상징)가 돼간다.

이 단순한 스토리 속에는 그러나 엄청난 철학과 종교가 담겨있다. 시미안 플루는 매우 중요한 소재다. 시미안은 원원류(곡비원류와 안경원숭이)를 제외한 원숭이하목 영장류의 총칭(진원류)으로 당연히 인간이 포함된다. 시미안 바이러스는 인간을 제외한 영장류에만 침입한다. 그런데 시미안 플루라는 신종 인플루엔자는 인간을 죽이는 대신 유인원은 똑똑하게 진화시킨다. 이는 환경파괴를 일삼은 인간에게 신이 내린 벌이자 자연의 섭리를 지킨 유인원에 대한 보상이란, 최후의 심판의 메타포다.

▲ 영화 <혹성탈출: 종의 전쟁> 스틸 이미지

이유 없는 증오의 화신은 대령이다. 그는 시미안 플루에 걸린 아들의 고통을 빨리 끝내주기 위해 그의 머리에 총을 쏜 인물이다. 어쩌면 그는 ‘지옥의 묵시록’의 커츠 대령일지도 모른다. 미국의 전쟁의 광기를 거부하고 탈영했지만 캄보디아 오지에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한 채 또 다른 광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사는 가운데 자신을 죽여줄 윌라드 대위를 기다리는 인물이 커츠였다.

그런데 그 증오는 죽은 코바의 망령에 의해 시저에게도 전이된다. 생존이냐, 멸종이냐의 위기에서 유인원을 책임져야 할 리더 시저는 오히려 사사로운 감정에 평정심이 무너짐으로써 책임감을 망각하고 개인적 복수의 증오심에 불타오른다. BC 1세기 로마제국의 종신 집정관을 지낸 카이사르가 한때 명망 높은 정치가이자 로마 역사상 최고의 웅변가로 평가받았지만 결국 황제가 되려는 개인적 욕심 때문에 원로원에 의해 암살당하는 것과 비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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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박한 침투와 처절한 전투가 펼쳐지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이어지는 유인원의 동굴 은신처의 인류 침투작전 등은 마치 서스펜스 스릴러처럼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비주얼과 사운드가 관객들을 정신 못 차리게 몰아친다. 이후엔 시저와 유인원, 시저와 대령 등의 디테일한 심리묘사가 매우 철학적으로 펼쳐진다. 여기서 시저 역의 앤디 서키스의 차원이 다른 연기가 매 시퀀스에서 섬광처럼 빛난다.

배드 에이브는 아무래도 ‘반지의 제왕’의 골룸을 참조한 듯하다. 탈모가 심하고 야윈 외모부터 그런 냄새를 풀풀 풍긴다. 골룸은 착하지만 스미골이란 사악한 이중인격이 하나 더 있다. 배드 에이브는 한없이 여리고 착한 성격이지만 도둑질도 마다않고 이기적이며 제멋대로인 면도 강하다. 어쨌든 그는 시저 일행을 돕는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선한 역할임에도 나쁜 유인원이라 스스로 부르는 것은 바로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알레고리다.

▲ 영화 <혹성탈출: 종의 전쟁> 스틸 이미지

영화는 천연덕스럽게 기독교와 불교를 차용했다. 유인원들의 대이동은 구약성서의 출애굽기다. 그들을 위협하는 거대한 눈사태는 추적하는 이집트군대 앞에서 모세가 펼친 홍해의 기적일 수도 있고, 노아의 홍수일 수도 있다. 또한 그들이 찾고자 하는 신천지의 홀로 우뚝 선 나무 한 그루는 부처가 열반한 장소의 사라쌍수를 의미한다.

인트로의 인류의 유인원 서식지 침투 때 반격에 성공한 시저는 포로로 잡은 저격수를 풀어준다. 그러나 후반부 그는 인간의 화살에 중상을 입는데 그 군인이 바로 풀어준 저격수였다. 불교철학의 공덕행 이론에 역행하는 부정적 부메랑 이론인 듯하나 사실 그 속에는 선행을 강조하는 불교의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시저가 저격수를 풀어준 이유는 자비가 아니라 대령에 대한 경고이자 자만심이었다. 그는 인간 하나쯤이야 언제든지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도취돼있었거나 자신이 믿는 평화주의가 인간에게도 충분히 공감을 줄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그의 착각으로 인해 주변화된 공덕행 이론을 객관화시키는 임무는 동키가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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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시아 에페소스에서 BC 535년에 태어난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우주의 원칙은 끊임없는 변화”라고 주장하며 에토스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걸로 유명하다. 그는 “아무리 아름다운 유인원이라도 인간만큼 아름답지는 않다”고 말했다. 수컷 고릴라는 몸무게가 최고 280kg까지 나가지만 고환은 인간의 4분의1 수준이다.

하지만 영화에선 유인원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고 현명하며 진화한 종으로 그려진다. 결국 인간의 이기심이 환경파괴와 전쟁을 야기해 인류의 멸종을 가져올 수 있다고 현대사회가 경고하는 걸 그대로 반영한 역설이다. 그럼에도 마지막 희망 하나는 남겨둔다. 시미안 플루에 감염됐음에도 불구하고 생존하는 노바(신성)다. 140분이 언제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 12살 이상.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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