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 송강호, '이러면 반칙이지' [유진모 칼럼]

유진모 칼럼니스트l승인2017.08.07l수정2017.08.11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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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택시운전사’(장훈 감독, 쇼박스 배급)가 엄청난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개봉 직후 3일 동안 30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건 관람한 관객들의 반응이다. 하나같이 분노 울분 공포 등의 감정을 통해 감동을 느꼈다며 가족 친지들과 또 보겠다는 평이 줄을 잇고 있다.  

영화는 꽤 탄탄한 조연들을 곳곳에 배치하는 영리한 캐스팅을 선택했다. 광주의 정이 넘치는 택시운전기사 태술(유해진), 천진난만한 대학생 재식(류준열), 의식이 깬 기자 최 기자(박혁권), 광주 입구를 지키는 계엄군 박 중사(엄태구), 광주시민을 사찰하는 사복조장(최귀화) 등이 그들이다. 물론 투톱의 한 축인 독일기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의 무게감 역시 묵직하다.

그럼에도 영화에 푹 빠지도록 감정이입의 중심축을 이루는 강력한 흡입기 역할은 단연 송강호다. 다수의 관객들이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영화를 선택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고 손꼽는 몇 안 되는 배우 중에서도 단연 선두에 선 그는 최근 ‘사도’(2014) ‘밀정’(2016) 등으로 쉴 새 없이 관객과 만나고 있음에도 매 캐릭터에 독자적인 생명력을 불어넣는 재능을 이번에도 변함없이 발휘한다.

▲ 영화 <밀정> 스틸 이미지

서울의 택시운전기사 만섭(송강호)은 ‘변호인’의 우석과 ‘밀정’의 정출의 색깔이 어느 정도 들어간 인물이다. 우석은 돈보다 정의를, 명예보다 명분을 좇는 인권변호사다. 정출은 원래 임시정부에서 일했지만 사리사욕을 위해 동지들을 배신한 뒤 일본 경찰이 된 반역자다. 정출은 의열단장 채산(이병헌)을 잡기 위한 목적으로 겉으론 사업을 하지만 뒤론 의열단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함께 행동하는 우진(공유)에게 접근한다.

그러는 가운데 서서히 우진에게 인간적인 정을 느낌과 동시에 채산을 만난 뒤 그의 큰 그릇과 됨됨이에 이끌려 갑자기 의열단을 돕는 밀정이 된다. 뿐만 아니라 그것도 모자라 아예 신출귀몰한 독립운동가가 돼 일본군을 괴롭히는 슈퍼히어로로 거듭난다.

만섭은 우석이나 정출에 비하면 지나치리만치 평범한 소시민이다. 1970년대 중동개발 붐을 타고 사우디아라비아 개발현장에 노동자로 파견돼 약간의 돈을 만진 뒤 그걸로 개인택시를 사고 영업권을 따내 사글셋방에서 초등학생 외동딸을 키우며 산다. 그는 시위하는 대학생을 보고 ‘공부하라고 대학에 보냈더니 웬 데모냐’며 ‘먼지 풀풀 날리는 사우디에 한 번 갔다 와봐야 우리나라가 행복한 나라라는 걸 알지’라며 혀를 끌끌 차는 전형적인 우익 이념의 중년이다.

▲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 이미지

그런 그가 광주에 가서 실상을 두 눈으로 목도한 후 세상만사에 눈을 뜨게 된다. 갑자기 광주시민들을 돕는 데 적극적으로 나선 배경은 진보적 성향의 행동하는 양심가가 된 것도, 과시형 영웅주의에 빠진 것도 아니다. 사람이기에 부상자를 병원에 옮김으로써 그들의 고통을 치유해주거나 목숨을 구하려 하는 것이고, 운전기사이기에 손님 힌츠페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서울로 향하던 차를 돌려 다시 광주로 가는 것이다.

만섭에게선 그동안의 송강호의 필모그래피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시위대 탓에 길이 막히자 짜증을 내면서도 이리저리 샛길을 찾아 길을 뚫는 초기의 모습은 ‘넘버3’의 조필도 있고, ‘반칙왕’의 대호도 있다. 신흥 폭력조직의 두목이지만 많이 어설픈 조필, 직장생활에 찌든 샐러리맨이란 자아를 극복하고 초자아를 발견하는 대호.

만섭은 정권의 데마고기에 성실하게 중독되는 지극히 평범한 ‘정권입맛형’ 소시민이지만 정작 사글세조차 몇 달째 내지 못할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사는 매우 주변화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정신형상학적 개별성과 규정성을 내용으로 갖는 정리된 추상을 스스로 찾아낸다는 점에선 다분히 대호와 닮아있다.

▲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 이미지

송강호가 영리한 이유는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다 제각각이고, 영화는 특히 다른 영화와 중첩되는 캐릭터를 피하려 노력을 기울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인간은 인간적으로 닮아있고 사람이 만드는 영화 속 캐릭터 역시 초월이 힘들다는 함정을 교묘하게 피해간다는 데 있다.

사실 이 영화에서의 송강호의 책임과 역할은 트레일러에서 강조되는 수 만 가지의 감정이 뒤섞인 허망한 표정연기 하나로 집약된다. 힌츠페터를 태우고 광주에 가서 현장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진짜 빨갱이들의 폭동이고, 군인들이 잘 진압하는 줄 알았다. 그 아비규환의 지옥 속에서 살기 위해, 가족을 살리기 위해, 자유를 찾기 위해 혹은 진실을 알리기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사람들 틈에서 느낀 경악 분노 무기력감 슬픔 고통 등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을 뒤섞은 절망의 표정 연기는 당분간 보기 힘든 명불허전이다.

공교롭게도 그는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계 인사 중 영화배우의 ‘간판’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데올로기로 작품을 선택하는 배우가 절대 아니다. 박찬욱 감독이 ‘올드 보이’의 주인공을 캐스팅한다는 소식을 듣고 먼저 연락해 ‘뭐든 시켜만 달라’고 했고,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에 관한 얘기를 꺼내며 출연의사 타진을 하자 시나리오도 읽어보지 않고 ‘오케이’한 그다.

▲ 영화 <변호인> 스틸 이미지

그는 ‘변호인’ 때 노무현이란 인물을 감히 그려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 고사했듯 ‘택시운전사’ 역시 처음엔 그랬다. 이미 몇 편의 영화가 가해자와 피해자, 억압과 양심 등의 각자 다른 시각으로 그려낸 바 있는 데다 소재와 인물 등이 줄 피로감을 걱정했을 것이다. 역사적 사실이 주는 무게감과 그 아픔을 중심에서 이끌 임무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그건 기우였다. 힌츠페터는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만섭의 실존 주인공인 사복에 대해선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당시의 독재시스템에 비춰볼 때 어쩌면 ‘제거’됐을 수도 있다. 그런데 송강호는 할리우드의 노련한 크레취만을 압도할 정도의 캐릭터 창조력을 발휘해 김사복이 아닌, 김만섭을 만들어냈다.

기사식당에서 사글셋방 주인 겸 동료기사에게 밥을 얻어먹는 것도 모자라 천연덕스럽게 밀린 방값을 빌려내는가 하면 옆 테이블의 독일 손님을 태우면 하루 안에 10만 원을 벌 수 있다는 대화를 엿듣곤 곧바로 숟가락을 내려놓고 약속장소로 내달리는 캐릭터는 참으로 ‘송강호답다’는 생각에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 이미지

송강호는(감독과 함께) 만섭의 인격의 단계, 즉 개념을 완성해간다. 시작의 만섭은 그냥 ‘동물’에 불과했다. 생존본능에 의해 택시운전기사로서 먹이활동에 충실했다. 종족보존본능에 의해 외동딸을 극진히도 아끼고 그녀에게 상처를 입힌 주인집 아들과 그의 엄마에게 저항했다. 그가 시위대에 혀를 끌끌 차고 광주의 진상을 알려 노력하지 않은 건 무리의 리더에게 복종함으로써 먹이를 얻고 생명을 이어가는 동물의 행동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결국 ‘사유하는’ 동물이었다. 그래서 ‘현실의 개별적인 것(광주의 진실)들에 침투(부상자 돕기 등)함으로써 자신을 규정하고 분할하는 부정성으로서의 자유(계엄령에의 반발, 자유의지 실현)를 자신에게 부여함’(헤겔, 야마구치 세이이치)으로써 개념을 완성하고 이성적 동물인 진짜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런 감정과 시각과 행동하고자 하는 양식(良識)의 변화를 미세한 눈과 입술 등의 떨림 등으로 디테일하게 그려낼 줄 아는 훌륭한 화가가 송강호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유진모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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