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김주혁 소장의 성평등 보이스] “안녕하세요. 저는 샬롯이고 7살이에요. 레고를 좋아하지만, 레고 남자 인형이 여자 인형보다 여전히 더 많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요. 여자 레고 인형은 집에 머물러 있거나, 해변에 가거나, 쇼핑을 하고, 직업은 없어요. 하지만 남자 인형은 모험을 하고, 일하고, 사람을 구하고, 상어와 함께 수영하기도 해요. 여자 레고 인형을 더 많이 만들어서, 그들이 모험을 떠나고 재미있는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네?”

▲ 샬롯의 손편지

2014년 초 7살 미국 소녀 샬롯 벤자민이 레고 사 앞으로 보낸 손 글씨 편지 내용이다. 이에 레고는 그해 하반기부터 과학자·기술자·탐험가 등 다양한 여성 인형을 출시해 인기를 얻었다. 엄마가 출근하고 아빠가 아이를 돌보는 레고 장난감도 나왔다. 물론 레고는 핑크색 등 엷은 색 위주로 미용실과 애완동물 가게 등 멋 부리는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킨 여아용 `레고 프렌즈' 시리즈를 2012년 선보인 이래 성 역할 고정관념을 조장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인기리에 유지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7살 소녀 매기는 평소 영웅 캐릭터에 관심이 많았다. 어느 날 테스코 장난감 매장에서 슈퍼 히어로 캐릭터가 있는 시계를 집어 들었다. 뒷면에는 ‘소년용 장난감 선물’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매기의 엄마는 이 화난 모습을 찍어 트위터에 항의하는 글을 올렸다. 이 트위터 글이 화제가 되면서 여론이 악화되자 테스코 측은 사과와 함께 성별 구분 문구를 없애겠다고 밝혔다.

▲ 매기의 항의

‘렛토이즈비토이즈’, ‘핑크스팅스’ 등 젊은 부모들이 주축이 된 영국의 온라인 시민 단체들은 성차별적인 장난감 판매 및 유통 업체들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지속적으로 고발한다. 해당 업체들은 매장 선반이나 장난감 포장지 등에서 성별 표시를 지우는 등 신속하게 반응한다.

장난감에도 성별 장벽을 제거하는 바람이 불고 있다. 장난감의 남녀 구별은 성역할 고정관념의 산물이다. 남매를 둔 가정에서도 장난감을 물려 쓰지 않고 새로 구입하도록 하려는 완구업체의 마케팅 전략이기도 했다. 이제는 분류기준이 남녀가 아니라 주제별 관심사로 변하고 있다.

세계적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은 남아용과 여아용 완구로 구분돼 있던 카테고리를 2015년부터 아동완구로 통합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미국 종합유통업체 타깃도 완구 코너에서 남아용과 여아용이란 표시를 사용하지 않는다. 목발을 짚는 장애아동을 모델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디즈니 스토어도 2015년 핼러윈 데이 세일 때 복장과 액세서리 등에 남아, 여아 구분 대신 ‘아동용’이란 라벨을 사용했다. 삐쩍 마른 바비 인형만을 시판해 여성에게 날씬함을 지나치게 강요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마텔사도 통통한 여자 인형을 내놓고 있다.

▲ 탑 토이 제품 카탈로그

북유럽 최대 장난감 유통업체인 스웨덴의 탑토이는 2012년부터 어린이들이 남녀 구분 없이 함께 다림질이나 총싸움 놀이를 하는 모습을 담은 카탈로그를 발행한다. 놀이에는 근본적으로 남녀 구별이 없고, 살림살이는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필요한 활동이라는 메시지를 심어주기 위해서다. 스페인의 완구기업 토이 플래닛도 2014년부터 장난감의 성별 구분을 없애는 광고를 내보낸다. 남자 어린이가 아기 인형을, 여자 여린이가 전동공구 모형을 가지고 노는 식이다. 스웨덴에 사는 필자의 외손자 방에도 공구세트, 주방세트, 인형 등 성별 고정관념에 휘둘리지 않는 장난감들이 놓여 있다.

성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도록 장난감에도 남녀 구별이 필요하다는 소비자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장난감이 지나치게 젠더화 되면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시킴으로써 어린이들의 관심 분야를 제한하고 창의성을 약화시키는 등 악영향을 미친다. 선택권은 장난감 회사가 아니라 개인이 가져야 한다.

▲ 김주혁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김주혁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양성평등․폭력예방교육 전문강사
전 서울신문 국장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