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sbs '백종원의 푸드트럭' 캡처 화면

[미디어파인=유진모의 이슈&피플] 요즘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제2의 전성기를 연 이상민의 키워드는 ‘빚’이다. 그 이전에 윤정수가 있었다. 최근엔 SBS ‘백종원의 푸드트럭’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이훈이 조명을 받고 있다. 셋 모두 크게 사업을 벌였다 수십억 원의 빚을 떠안은 연예인의 대명사다.​

아무래도 빚 액수가 크다 보니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울 리 없다. 하지만 이상민처럼 그게 외려 회생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별로 색깔이 진하지 않았던 윤정수는 되레 성실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훈은 아직 여론이 들쭉날쭉한다. 시작부터 워낙 스타였기 때문일까?

그는 대학 재학 중이던 1994년 MBC 시사 코미디 ‘청년내각’을 통해 데뷔하자마자 ‘고려대 출신 예능인’이란 지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잘생긴 외모로 단숨에 젊은 여성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정통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이내 연예계를 떠나 헬스클럽 사업을 벌이다 크게 실패했다. 그 후 닥치는 대로 일을 해 빚을 비롯해 직원들의 밀린 급여 및 등을 갚아왔지만 아직도 32억 원에 가까운 부채가 남아있고, 얼마 전 개인회생 신청이 받아들여진 사실로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는 ‘몸짱’ 연예인의 원조다. 데뷔 초 한 가수와의 불미스러운 충돌, 대학 후배에 1억 원을 물어준 일 등 폭행사건 등이 부각되면서 폭력적 이미지가 굳어졌다. 과연 그는 자신의 건장한 신체조건을 이용해 무고한 사람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깡패’인가?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오지랖 넓은 정의감이 문제라고 지적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언젠가 홀로 길을 걸어가던 그는 젊은 남성이 젊은 여성을 때리는 것을 목격하곤 지체하지 않고 달려가 남성을 말렸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몸싸움이 발생했고, 여성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 앞에서 엉뚱하게도 그는 가해자가 됐다. 두 사람은 연인사이였던 것.

이른바 데이트 폭행을 막았지만 여성은 일방적으로 남자친구의 편을 들었고, 상황은 이훈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두 남녀는 팔짱을 끼고 일찍 경찰서를 나섰지만 이훈은 상당히 오랜 시간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금세 상황을 이해했지만 “절차상 어쩔 수 없다"라며 그를 설득해 가해자로서 조서를 완성한 뒤 풀어줬다.

가수와의 폭행사건은 한 지상파 방송의 회식자리에서 벌어졌다. 프로그램에 불만을 품었던 가수가 만취한 채 큰 돌로 PD의 머리를 때려 유혈이 낭자했고, 이훈이 이를 말리는 과정에서 자신도 공격을 당하자 방어했지만 힘이 센 탓에 가해자가 된 것.​

이후 소문이 날 경우 회사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고, 대외적으로 큰 망신을 당할 것을 우려한 PD의 부탁으로 과정은 생략되고 후배인 이훈이 선배인 가수를 때린 것만 부각됐다. 당시 유력 기획사 소속이던 가수는 일사천리로 소송을 진행했고, 사회경험이 별로 없음에도 기획사에 적을 두지 않고 혼자 일하던 이훈은 PD 등 스태프와의 의리상 혼자 모든 짐을 지고 가기로 결정했다. 그는 이 사건 이후 가요계에서 유력하기로 소문난 한 기획사 사장을 찾아가 매니지먼트를 부탁하고 전속계약을 체결했다. 방송가에선 널리 알려진 에피소드다.​

1억 원 위자료 사건은 한 프로야구선수의 부탁으로 시작됐다. 당시 재활훈련 중이던 A는 답답함을 달래고자 이훈에게 전화를 걸어 술을 한잔 사달라고 했고, 의리 앞에선 물불 안 가리는 그가 후배의 부탁을 마다할 리 없었다. 그 자리엔 무술감독 B와 유명 연예인 C가 동석했다. 이훈이 잘 아는 포장마차였다. 옆자리엔 현역 군인을 포함한 젊은이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다가오더니 인사를 하며 고대 후배라고 반가워했다.

그들 자리에서 소주 한 잔씩 돌린 이훈은 자신이 계산할 테니 술값을 절대 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뒤 제 자리에 돌아와 술을 마시는데 갑자기 B의 인상이 일그러지는 것이었다. 후배 자리의 군인이 째려보며 “당신이 그렇게 세? 나랑 한 번 붙어볼까”라고 시비를 걸었기 때문이다.

B가 누굴 때릴 경우 ‘살인미수’에 가깝고, A는 구단과 팬들의 눈치를 봐야하는 처지니 시비에 휘말리면 곤란했다. 유명스타인 C는 더욱더 구설수에 오르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서둘러 일행들을 술집에서 내보낸 이훈은 홀로 남아 후배와 군인 등을 달래려 했지만 정작 만취한 후배가 먼저 주먹을 휘둘렀고 이훈은 서너 명과 싸웠지만 그가 힘이 센 관계로 또 가해자가 된 것이다.

당시 제일 심하게 맞은 후배는 초기엔 매일 병원을 찾아온 이훈에게 오히려 사과를 하며 사건을 원만하게 해결하자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갑자기 태도가 바꾸더니 변호사를 선임하고, 취업이 확정된 것을 이유로 치료기간 동안 못 받을 급여 등 피해금액을 위자료에 더해 소송을 제기했다. 처음에 3000만 원이던 합의금은 결국 1억 원이 됐다.

그는 이 모든 일들을 오로지 자신의 탓이라고 마음을 달랜다. 그가 큰 빚을 떠안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갑질’을 한 대기업 측에 있다는 게 주변사람들의 판단임에도 정작 그는 소송을 포기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대기업과 손을 잡고 자신의 이름을 건 헬스클럽을 차렸다. 당연히 회원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건물주이기도 한 대기업은 태도를 바꿔 헬스클럽을 직영하겠으니 나가라고 통보를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당시 3000여 명의 회원 중 2000여 명이 환불을 요구해 그렇게 해줬다. 문제는 남은 1000명이었다. 그들과의 약속을 깰 수 없어 인근 건물을 임대해 헬스클럽을 열었다. 하지만 회원은 점점 줄었다. 결국 임대료와 직원급여 등의 빚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현금동원 능력이 없는 그는 모든 빚을 떠안고 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금 시점에서 당시의 빚의 40퍼센트를 갚았다고 한다. 개인회생 신청이 받아들여짐에 따라 앞으로 10년 동안 나머지 빚을 갚아나갈 계획이다.

하지만 이런 그의 속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일부 전문용어에 약한 매체에 의해 그에 대한 오해가 발생하곤 한다. 일각에서 그의 ‘파산신청’이 받아들여졌다고 오보를 내는 게 대표적인 사례. 개인파산이란 봉급생활자, 주부, 학생 등 성실한 비영업자가 불운하게도 과도한 채무를 변제할 수 없어 벼랑 끝에 내몰렸을 경우 빚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제도다.

▲ 사진=sbs '백종원의 푸드트럭' 캡처 화면

그 대신 후견인, 후견감독인, 유언집행자, 수탁자, 공무원, 변호사, 공인회계사, 변리사, 공증인, 부동산중개업자, 사립학교교원 등이 될 수 없는 불이익이 뒤따른다.

이에 비해 개인회생제도는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파탄에 직면했지만 향후 지속적으로 수입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개인에 대해 채권자 등 이해관계인의 법률관계를 조정함으로써 채무자의 효율적 회생과 채권자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된 절차다.

단, 개인회생 절차를 통과하기 위해선 채권자 66.8%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훈은 지난 세월동안 전국 각지의 채권자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앞으로 성실히 빚을 갚아나갈 것을 약속함으로써 그들의 동의서를 얻어냈다.

이훈은 틈만 나면 후회와 반성을 반복한다. 그중에서 가장 큰 자책은 연기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비교적 순탄하게 인기를 얻어 정통 배우보다 쉽게 드라마의 주역을 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 특혜가 바로 걸림돌이 됐다.

2006년 SBS 드라마 ‘사랑과 야망’의 주인공을 맡았을 때다. 그는 부족한 연기력 때문에 김수현 작가에게 무려 8시간동안 야단을 맞았다고 한다. 방송활동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음에도 연기력을 지적받는다는 건 성의와 노력이 그만큼 부족했다는 것이고, 자만심에 사로잡혀있었다는 의미도 된다.

▲ 영화 <1번가의 기적> 스틸 이미지

그걸 계기로 딜레마에 빠진 그는 스스로 배우가 될 자격이 없다고 선언한 뒤 사업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게 결국 사업도 연기도 인기도 호감도 모두 잃게 된 결정적인 패착이 돼 돌아온 것이다.

현재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짝사랑의 시작이자 첫사랑이었던 아내 김혜진이 지금까지 자신을 믿고 뒷바라지를 해준 데 대한 고마움, 인터넷에 민감한 두 아들과의 소통에 대한 새로움과 즐거움이 첫째 낙이다. 그래서 그는 더욱더 열심히 연기를 해 배우로서 자포자기했던 못난 자신을 재정립하고, 가족의 행복을 위해 보탬이 되자는 관념으로 가득 차있다.

만 44살을 넘긴 그는 요즘 이준익 감독이 영화 ‘사도’를 통해 설파한 헤겔의 ‘정립-반정립-종합’의 변증법을 음미하는 중이다. 어린 나이에 책임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인기와 부를 누렸던 데뷔시절은 대중이 그가 발전할 수 있도록 최초의 기회를 준 것인데(정립) 그는 오로지 돈을 벌 목적으로 연예인 생활을 했다. 당시 그의 집안은 가난했다. 어린 그의 머릿속은 많은 돈을 벌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자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래서 연기를 한 게 아니라 출연료와 광고만 바라봤다. 그 시기부터 사업에 실패해 나락 끝으로 떨어진 얼마 전까지의 그는 반정립의 인생을 살아왔다. 팬들부터 연예계의 수많은 지인들까지 은혜를 베풀어줬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음속으로 연기은퇴를 선언한 뒤 사업이란 정반대의 길을 걸음으로써 갈등을 야기한 것이다.

▲ 영화 <1번가의 기적> 스틸 이미지

하지만 그 시련은 부정의 부정이란 종합의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 현재 그는 ‘슈퍼맨이 되고 싶었던’ 철없고 치기 넘치던 때와 사업으로 떼돈을 벌겠다던 사업가 시절의 정신세계에서 훨씬 성숙한 단계로 거듭난 태도를 보인다. 지난 1월 MBC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보여준 대로 그의 유도사랑은 각별하다. 그래서 그는 늦은 나이에 용인대학교 유도학과에 편입학했다. 유도(柔道)의 글자 그대로 부드러움의 도를 닦는 자세로 최소한 조카는 될 듯한 젊은이들과 땀을 섞고 있는 중이다.

그는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자신이 세상의 정의를 세울 줄 알았던 착각이 미안하고, 그래서 주제넘게 나댄 게 미안하며, 연기를 열심히 안 하고 한눈을 판 게 가장 미안하다. 지금 되고 싶은 건 최고의 연기자가 아니라 가장 성실한 배우다.

그는 윤정수나 이상민처럼 남을 웃기는 재주가 뛰어나지 못하다. 아직도 김수현 작가에게 야단맞던 부족한 배우인 것도 맞다. 그래서 언젠가는 “쟤가 저렇게 연기를 잘할 줄 몰랐다"라는 칭찬인지 비아냥거림인지 모를 반응을 얻고 싶다. 고난과 고통은 발전과 성숙을 위한 과정일 따름이란 교훈을 가슴속에 새기고 산다는 그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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