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미 16년 전 ‘메멘토’로 자신의 천재성을 널리 알린 바 있다. 김영하의 동명의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원신연 감독, 쇼박스 배급)은 ‘메멘토’처럼 기억을 소재로 한 영화다. 과연 ‘메멘토’와 어떻게 차별화됐을까?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성스러운 피'와는 어떻게 다를까?

강화시 애월읍이라는 가상도시(애월읍은 실제 제주에 존재한다). 50대 후반의 병수(설경구)는 15살 때 어머니와 누나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죽였다. 그 후 그는 ‘세상엔 꼭 필요한 살인이 존재한다’는 자신만의 논리를 세우고 쓰레기들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연쇄살인마가 된 그는 동네 외진 곳에 땅을 사 대나무숲을 조성하고 그 밑에 피해자들을 묻었다.

결혼을 하고 딸 은희(김설현)가 유아기를 벗어나자 ‘아이 하나 키우는 게 사람 열 명 죽이는 것보다 힘들다’며 살인을 그쳤다. 17년 전 교통사고를 낸 그는 뇌가 심하게 손상된 여파로 알츠하이머병에 걸렸고, 점점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 현재 그는 시내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은희는 은행에 다닌다.

▲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스틸 이미지

시에서 젊은 여자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지자 병수는 은희에게 각별한 주의를 당부한다. 안개가 심하던 어느 초저녁 그는 실수로 전방의 승용차와 추돌한다. 그 충격으로 열린 승용차의 트렁크 안에 있는 커다란 가방 안에서 피가 흐른다. 잽싸게 거즈에 그 피를 묻혀 주머니에 넣는다. 승용차에서 내린 인물은 시 경찰서에 근무하는 태주(김남길)다. 긴장한 병수에게 태주는 가방 안에 든 게 노루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살인마는 살인마를 알아본다. 병수는 첫눈에 그가 자신과 동질의 인물임을 깨닫는다. 동네 파출소장 병만(오달수)은 병수의 유일한 친구다. 병수가 기억을 잃고 방황하면 병만은 은희를 불러 인계하곤 한다. 뉴스를 보던 병수는 순간 태주와의 첫 만남이 떠올라 자신이 만약 태주라면 트렁크 안에 있던 가방을 어디에 버렸을까 상상한 뒤 떠오른 장소로 가서 여자의 시신을 발견한다.

병수는 치매를 치료하기 위해 문화강좌에 다니고 있다. 거기서 만난 여인 연주가 귀찮게 달라붙는다. 그날도 제 마음대로 차에 올라탄 연주를 태우고 시내로 가던 병수는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걷는 태주와 은희를 발견하곤 소스라치게 놀란다. 태주를 죽일 결심을 한 병수는 태주의 뒤를 쫓아 그의 주거지를 알아낸 뒤 잠들기를 기다리다가 자신이 먼저 잠에 빠진다.

▲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스틸 이미지

깨어난 병수는 집에 있었고, 그의 눈앞엔 태주와 은희가 앉아있다. 병수는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했다. 태주가 간 뒤 병수는 은희에게 결혼하면 절대 안 된다며 태주가 어떻게 여기에 왔는지 따진다. 그러자 은희는 “제발 그만하라”라고 울부짖으며 태주도 병수가 불렀다고 말한다. 그런 은희의 목에서 상흔을 발견한 병수가 “태주가 그런 거냐”라며 따지자 은희는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짓는다.

결국 병수는 병만에게 태주를 살인자라고 고발하고 피가 묻은 거즈를 증거물로 내밀지만 검사 결과 노루피로 나온다. 게다가 대나무숲에 다녀왔다는 병수의 운동화 바닥에선 시체가 발견된 저수지의 것으로 의심되는 흙이 묻어있다. 태주가 외딴집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걸 발견한 병수는 그곳에 숨어들어가 연주가 살해당하는 동영상을 발견하곤 결정적인 증거라고 생각해 병만에게 넘긴다.

▲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스틸 이미지

태주는 병만 및 수사팀에 대나무숲을 파헤칠 것을 귀띔하고 그곳에서 수많은 유골 및 연주의 사체가 발견된다. 병수는 태주가 진짜 살인마인지 아니면 자신이 기억을 조작하는 것인지, 기억 자체가 잘못된 것인지 혼돈을 겪는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메멘토’가 주인공 레너드의 기억조작이란 일대 반전으로 관객들을 전율케 만들었다면 이 영화는 과연 병수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기억을 조작한 것인지, 아니면 태주가 병수보다 더 사악한 연쇄살인마인지 퍼즐을 맞추는 데 재미가 존재한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묻는다. '성스러운 피'와 맥락을 같이한다.

인트로와 아웃트로를 장식하는 선로가 깔린 터널을 나온 병수의 삶에 찌들고 사연에 멍든 초췌한 몰골이 의미하는 바는 상당히 철학적이다. ‘우연은 대부분 우연이 아니다’라는 대사나 살인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병수의 행동은 인류의 아전인수를 꼬집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병수와 태주가 공통으로 겪은 가정폭력과 여성혐오증에 대한 타당한 설명이나 그럴듯한 정황이 부족해 캐릭터의 설득력과 플롯의 개연성이 떨어진다.

▲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스틸 이미지

영화에서는 많은 역사와 철학이 보인다. 조선 태조와 무학대사의 대화인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의’, ‘장자’의 ‘제물론’의 호접몽, 로크의 인간오성론, 사르트르의 즉자-대자까지 엿보인다. 돼지(연쇄살인범)인 병수는 태주를 보자마자 돼지임을 직감한다. 하지만 자꾸 기억을 잃어가는 그가 혼미해질수록 태주는 멀쩡한 사람이고, 자신은 기억은 사라지고 사람의 목을 조르는 손의 본능만 살아있는 현재진행형 살인마가 아닌지 심한 의심을 하게 된다.

호접몽과 더불어 ‘오성의 직접 대상은 관념이고, 관념은 모든 경험에서 우러나온다’는 인간오성론이자 영국의 경험론이다. 이런 인식론을 아우르는 스토리와 플롯은 두 주인공을 즉자 대 대자로 맞세운다. 어쩌면 그가 나이고, 내가 그일 수도 있는 ‘즉자 대 대자’의 관계일지, 아니면 자아와 타자의 관계일지 영화는 계속 혼미한 안갯속을 헤매게끔 유도한다.

▲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스틸 이미지

기억은 기록이자 역사다. 역사는 기억을 기록함으로써 사람들을 꾸준히 교육해 더 나은 미래를 이끌어가게끔 만드는 게 올바르다. 하지만 역사는 승자의 몫이기도 하니 왜곡이나 조작도 가능하다. 병수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배경엔 어쩌면 살인자로 살아온 과거를 지우고 지금은 따뜻한 아버지로서만 기억되고 싶은 자기합리화 혹은 왜곡의 방어기제가 존재할 수도 있다.

임상심리학에선 ‘이전까지의 억압에 의해 의식할 수 없었던 갈등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철학에선 ‘기억의 편집’이라고 하는 게 통찰이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미발전의 존재 양태에서 자립성을 잃는 대타적인 관계를 거쳐 자기 자신과의 진전된 관계를 이루는 대자적 상태로의 전환을 거치는 과정’(두산백과사전)인 즉자대자이기도 하다. 기억을 잃어가는 병수가 태주를 만남으로써 자각한 게 바로 통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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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메멘토'와 '성스러운 피'의 주인공이 그랬듯, 자신의 살인을 합리화하고, 제거의 대상마저도 자신이 결정하는 전지전능의 착각에 빠졌던 본능의 개입의 가능성이 잔존한 그의 통찰은 과연 완성된 것일까? 영화가 주목하는 지점이다. 그런데 스릴러를 웬만큼 봤다는 관객이라면 기승전결의 기술은 모를지라도 완성의 해법은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영화 속에 설정된 나이보다 훨씬 더 늙게 보일 만큼 혹독한 감량을 한 설경구의 연기력은 확실히 달라졌다. 김설현도 이제 전문배우의 길에 들어설 워밍업이 충분히 된 듯하다. 하지만 오달수는 의외로 활약이 미미하고, 김남길의 존재감은 ‘무뢰한’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 시종일관 어둡고 처참한 세기말적 분위기와 의외의 카메오들의 존재감이 안타깝다. 15살 이상. 118분. 9월 7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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