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맨헌트>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48만여 명, 95만여 명, 4만여 명. 하지원이 주연을 맡은 최근 영화 ‘조선미녀삼총사’(2014), ‘허삼관’(2015), ‘목숨 건 연애’(2016)의 흥행성적이다. 초기 ‘가위’ ‘폰’의 연타석 안타로 충무로의 호러 퀸이 된 이후 드라마 ‘다모’(2003) ‘발리에서 생긴 일’(2004) ‘시크릿 가든’(2010) 등으로 안방극장을 점령하고, 영화 ‘해운대’로 1000만 명 흥행의 맛까지 봤던 하지원의 성적표치곤 초라하다.

현재 MBC 드라마 ‘병원선’의 10%대의 시청률에 공헌하고 있고, 연말 홍콩이 낳은 세계적인 흥행감독 우위썬(오우삼)의 영화 ‘맨헌트’로 명예회복을 노리는 중이다. 한때 액션 퀸이었던 그녀가 킬러 역을 맡았다고 해서 기대감을 키우고 있지만 우 감독이 전성기를 지난 데다 근래 우리나라 배우가 홍콩영화에서 성공한 케이스가 드물다는 게 핸디캡. 홍콩영화의 세력 역시 예전만 못하다. 과연 하지원은 전성기를 되찾을 수 있을까?

공교롭게도 하지원의 전성기의 기준은 전 소속사와 헤어지던 2013년으로 볼 수 있다. 이 회사를 나온 뒤 하지원은 자신의 1인기획사를 세워 지금껏 활동하고 있지만 출연하는 작품마다 흥행성적이 형편없었으며 최근엔 화장품회사로부터 고소를 당해 법정투쟁 중이다. 오비이락치곤 참으로 공교롭다.

▲ mbc 드라마 <병원선> 스틸 이미지

가수에게 히트곡이 중요하듯 배우는 작품선택이 운명을 좌우한다. 작품 하나 잘못 고르면 지금까지 쌓아온 게 모래성이 되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 개천 출신 용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감독이나 제작사의 경우 배우 캐스팅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반대로 봉준호처럼 내용과 흥행 양면에서 투자사와 배우와 관객 모두를 만족시키는 감독의 경우 말 한 마디면 누구든지 캐스팅이 가능하다. 그만큼 정상급 배우는 작품선택에 신중하고 예민하다.

유명 스타들이 적지 않은 수익금을 나눠주면서까지 기획사에 적을 두는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 분배 액수 이상의 값어치를 하기 때문이다. 스케줄과 이미지 등을 관리해주고 대소사를 일일이 챙겨주는 건 지엽적인 배경이고, 가장 중요한 건 ‘괜찮은’ 작품을 선별해주거나 잡아오는 능력과 혹은 점잖게 거절하는 테크닉이다. 촬영 중 혹은 ‘온 에어’ 중에도 꾸준히 발전적으로 관리해주는 매니지먼트 시스템에 대한 의존도도 크다.

톱스타의 경우 쏟아져 들어오는 시나리오를 일일이 읽어볼 수가 없다. 정말 치밀한 배우라면 모든 사생활은 물론 잠조차 양보한 채 시나리오 정독에 몰두하겠지만 비현실적인 얘기다. 그래서 시나리오 담당자가 따로 존재해 1~2차 필터링을 해주는 게 상식이다. 아무리 기획사 대표나 시나리오 담당자가 강권을 해도 결국 작품을 선택하는 최종결정자는 배우다. 하지원의 경우 2013년을 기점으로 영화선정 과정과 최종선택에 문제가 있었다는 유추가 가능하다.

▲ 영화 <조선미녀삼총사> 스틸 이미지

영화를 흥행성적만으로 평가하는 건 오로지 ‘돈=수입’으로 계산하는 천박한 자본주의적 대차대조표이기에 예술가적 성격이 강한 배우에게 그런 방식을 대입하는 건 실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 자신에게 흥행성적은 매우 중요한 크레딧이란 점 역시 부인할 수 없는 게 업계의 현실이다. 전 작품을 ‘말아먹은’ 배우를 새 작품의 투자사(제작사, 감독)가 기용하는 건 매우 큰 리스크를 안고 간다는 점에서 금기에 가깝다.

흥행실패의 1차적 책임은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에게 있지만 주연배우에게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관객들 역시 작품에 실망하면 그걸 배우에게도 대입하는 심리가 작용한다. 작품선택 기준이 감독이 아니라 배우 쪽에 가까운 관객일수록 실망의 심리가 배우에게 강하게 반영되는 경향이 짙다.

2013~4년 하지원은 영화 ‘조선미녀삼총사’와 드라마 ‘기황후’ 두 작품에 동시에 출연했다. 물론 ‘조선미녀삼총사’는 먼저 촬영한 것이긴 하지만 대중은 그런 제작의 이면을 계산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전 소속사가 투자한 작품이고, 하지원은 전 소속사가 골라준 마지막 작품으로 ‘조선미녀삼총사’와 ‘기황후’를 선택한 것이다. 물론 ‘기황후’의 제작사는 소속사와 별개다.

▲ 영화 <목숨 건 연애> 스틸 이미지

하지원이 착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한 건 관계자들이 잘 안다. 문제는 현재 1인기획사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작품선별능력이다. 잘하고 못하고를 논할 수 없을 만큼 형편없다. ‘목숨 건 연애’는 그 절정을 보여준다. 불행 중 다행으로 ‘병원선’을 만나긴 했지만 흥행에선 성공하고 예술에선 기존 작품에 못 미친다. ‘맨헌트’는 아직 불투명하다. 법정투쟁도 목에 걸린 가시다.

식자들은 연예인이 대표적인 거울자아의 인격체라 표현한다. 스스로 기투한 피투가 아니라 대중의 판단과 표현에 의해 피투된 기투의 자아다. 결국 연예인도 예술가도 모두 대중이 평가하고 정체성을 정립함으로써 그 거울자아를 정체성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기 마련이다. 그게 시대적 흐름이기도 하고, 예술적 사조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특히 연예인은 예정조화론(우주의 모든 모나드, 즉 실존적 실체는 상호 관계가 없긴 하지만 서로 잘 조화와 질서를 이룰 수 있도록 신이 미리 정했다는 라이프니츠의 형이상학적 이론)에 기초한 삶을 사는 게 과도한 정념과 혼돈과 광기 등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그게 바로 기획사와의 조화 혹은 좋은 인연이다.

▲ 영화 <목숨 건 연애> 스틸 이미지

연예계는 특히 예정조화론이 잘 적용되는 사회다. 소녀시대는 SM이, 빅뱅은 YG가, 수지는 JYP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빅스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불교의 인연은 바로 서양철학의 예정조화와 맥락을 함께한다.

그렇다고 ‘1인기획사’가 무조건 부정적이란 의미는 아니다. 배우매니지먼트업계의 대기업인 싸이더스HQ를 박차고 나와 1인기획사를 차린 전지현은 오히려 제2의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 송혜교도 오랫동안 사실상의 1인기획사 UAA에 적을 두고 활동하고 있는데 유아인에 이어 최근 박형식을 영입하며 몸집을 키우고 있다. 이정재와 정우성이 시작한 ‘2인기획사’ 아티스트컴퍼니는 대형기획사로 발돋움 중이다.

▲ 영화 <조선미녀삼총사> 스틸 이미지

대표적인 1인기획사에서의 재기 모델인 김희선보다 하지원은 더 어리고, 아직 결혼도 안 했다. 하지원은 그동안 연기력 논란도 없었고, 영화와 드라마 양쪽에서 크게 성공한 이력이 있다. 아직은 가능성이 무한히 열려있다는 증거다. 지금이 위기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아티스트 수준의 뮤지션은 타고난다. ‘예술’이란 평가를 받을 정도의 연기력과 스타성을 갖춘 배우 중에도 그런 이가 있긴 하지만 다수는 오랜 시간의 단련과 제련은 물론 시행착오 등을 거쳐 완성된다. 나이는 벼슬은 아니지만 연륜으로 쌓은 내면의 깊이를 바탕으로 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는 업계에서 예우를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그런 배우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작품을 만나지 못해 스스로 값어치를 떨어뜨린다면 예술적, 산업적, 국가적으로 모두 손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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