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두대 앞에 선 올랭프 드 구즈

[미디어파인=김주혁 소장의 성평등 보이스] ‘인간은 자유롭게, 그리고 권리에 있어 평등하게 태어나 존재한다’. 1789년 왕정을 종식시킨 프랑스 혁명 당시 채택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의 제1조다. 그러나 여기서 ‘인간’이란 말에 여성은 포함되지 않았다. 세상뿐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도 철저하게 남성 중심으로 사용돼 왔다는 얘기다.

올랭프 드 구즈라는 여성은 이에 항의해 <여성과 여성시민의 권리 선언>을 발표했다. 그 선언은 ‘여성은 자유롭게, 그리고 남성과 평등하게 태어나 존재한다.’로 시작한다. 이 때문에 그녀는 단두대에서 처형되면서 유명한 말을 남겼다. “여성이 사형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 연설 연단 위에 오를 권리도 당연히 있다.”

남성이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 유명한 조각상의 이름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다. 만일 조각상의 주인공이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었다면 제목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생각하는 여성>이었을 것이다.

▲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유관순 열사

3월1일이면 ‘기미년 3월1일 정오’로 시작하는 <삼일절 노래>와 함께 <유관순 노래>가 불린다.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로 시작한다. 왜 여학생들도 유관순 ‘언니’가 아니라 ‘누나’라고 불러야 할까. ‘유관순 열사’라고 하면 안 될까.

중학교가 남녀공학이면 ‘000 중학교’다. 여학생만 다니는 중학교는 ‘000 여자중학교’라고 한다. 남학생만 다니는 학교는 ‘000 남자중학교’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남녀공학과 똑같이 그냥 ‘000 중학교’다. 여성들이 교육에서 배제되던 시절이라면 몰라도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보다 높은 시대에는 부적절한 명칭이다. 신설학교부터라도 ‘000 남자중학교’라고 부르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남성에게는 일반적으로 “선생님”이라고 높여 부르는 반면 여성에게는 대충 “아줌마”라고 함부로 부르는 사람들도 꽤 있다. 택시를 타고 가다가 기사로부터 반말을 들어서 기분 나빴다는 젊은이는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많다.

남편의 형제는 아주버님, 도련님, 아가씨라고 높여 부른다. 그러나 아내의 형제는 처남, 처형, 처제라고 간단히 부른다.

미망인(未亡人)이란 말은 남편을 따라서 죽어야 하는데 아직 죽지 못한 사람이란 뜻이다. 본인이 겸손하게 스스로를 가리키는 것도 적절치 않지만, 다른 사람이 그렇게 부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서양어와 달리 한국어에는 높임말이 있고 존칭이 널리 사용된다. 경어가 중복 사용돼 위계질서를 강화한다. 유럽인인 필자의 사위는 한국말을 잘 못한다. 딸네 식구와 영상통화를 할 때 사위에게서 “장인어른, 안녕하셨습니까?”란 말은 들을 수 없다. 대신 “Hi!”에 이어 높임말이 없는 영어로 대화가 이어진다.

우리나라 부부 사이에서는 남편이 아내에게 반말을 많이 하는 반면 아내는 남편에게 존댓말을 많이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외국영화에서 “Did you take supper?”라는 부부 간 대화가 나온다고 할 때 번역은 말하는 사람이 여성인지 남성인지에 따라 다르다. 남편의 말이면 “저녁 먹었어?”이고 아내의 말이면 “저녁 식사 하셨어요?”가 일반적이다. 부부라면 나이에 관계없이 존댓말이든 반말이든 대등하게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남녀관계와 관계된 속담은 대부분 가부장제의 산물이어서 성차별적이다. 이제는 쓰지 말거나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사용해야 한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시대착오적이다. ‘암탉이 울면 달걀이 나온다’로 바꿔야 한다. ‘사내가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가 떨어진다’도 틀렸다. ‘사내가 부엌에 들어가면 사랑받는다’가 맞는다. ‘북어와 여자는 사흘에 한 번씩 패야 한다’는 식의 인권 침해적 속담은 더 이상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

이제는 말도 남성 중심이나 남성 존중에서 벗어나 여성과 남성이 모두 중심이 되고 존중받는 방향으로 가려서 사용하면 좋겠다.

▲ 김주혁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김주혁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양성평등․폭력예방교육 전문강사
전 서울신문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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