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명절은 안녕하십니까? [김나윤 칼럼]

김나윤 청춘칼럼니스트l승인2017.09.19l수정2017.09.19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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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김나윤의 베짱이 ‘문화찬가(撰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추석 때마다 TV에서 한복을 입고 송편을 빚는 화기애애한 가족들의 이미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그것이 한국 사회가 민족의 대명절 추석을 표방하는 방식일 것이다. 그러나 실상 추석을 앞둔 지금 대한민국 어느 곳에서 명절의 충만함과 행복함을 논하고 있는가. 그것은 명절을 둘러싼 허상일 뿐이다. 추석을 앞둔 이 시점에서, 명절증후군을 겪는 주부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큰집에 가기 싫다는 취업준비생들의 볼멘소리가 가득하다. 그렇다면 왜 명절은 환영받지 못하는 불편한 잔치가 되었을까.

명절의 불편함은 이분법이 가진 ‘배제의 원리’에서 유발된다. 명절은 이분법의 원리가 작동하는 시공간의 장을 연다. ‘기혼자와 미혼자’, ‘회사원과 취업준비생’,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가족 공동체가 모인 장에서 가족 구성원들은 이분법의 프레임에 갇힌다. 전자가 ‘정상’이 되면서, 잉여로서의 후자는 자연스럽게 ‘비정상’으로 남는다. 그리고 ‘비정상’으로서의 주체는 철저히 소외되고 배제된다. 삶의 다양성은 고려되지 못한 채 정상에서 배제된 존재들은 처절한 박탈감만을 얻을 뿐이다. 그렇다고 ‘비정상’의 인물들을 ‘정상’으로 포함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명절은 일종의 품평회장이다. 그곳에선 가족 구성원을 대상화하고, 덕담이라는 포장 아래, 심리적 ·언어적 폭력이 가해진다.

동시에 ‘남성과 여성’ 또한 명절을 둘러싼 이분 프레임이다. 명절엔 가부장제가 부여한 성 역할이 노골화된다. 명절의 제례의식의 주체는 남성이다. 명절의 주요 이벤트 중 하나인 제사는 철저히 남성 위주로 진행된다. (심지어 여성은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동시에 주체가 되지 못한 ‘잉여’로서의 여성은 가사노동을 담당한다. 가사노동의 평등이라는 담론은 자취를 감추고, 명절의 가사노동은 온전히 여성의 것이 된다. 남성의 가사노동은, ‘돕는다’라는 언어로 표현되며 여성의 가사노동은 ‘당연하고 자명한 것’이 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며느리로서 힘든 명절을 보내온 여성들은 ‘시어머니’라는 호칭을 얻은 이후 가부장제의 피해자에서, 강력한 가부장제의 수호자로 변신한다. 물론, 요즘은 남녀 모두 평등하게 가사노동을 하고 동등한 위치에서 제례의식을 행하는 집도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명절문화는 ‘특수’로, 기존의 명절문화를 전복시킬 만큼 보편화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추석을 맞아 가짜 깁스를 주문하는 며느리, 명절증후군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는 주부들의 모습은 아직 ‘진부한’ 명절 레퍼토리를 벗어나지 못한 명절 문화의 현실을 보여준다.

명절을 앞두고 각종 매스 미디어에서는 명절증후군을 극복하기 위한 피로회복 아이템들이 소개된다. 이는 ‘힐링’이라는 마취제와 다름없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아니라, 단순히 상처받은 곳에 덧칠하는 사후약방문일 뿐이다. 정상과 비정상, 남성과 여성 등의 이분 프레임이 명절에 작동하는 한 명절은 행복으로 봉합될 수 없다. 명절을 없애자는 이야기는 아이들의 과격한 말장난이 아니다. 주부들, 취준생들, 미혼자들 등 ‘잉여로서의 주체들’의 하소연은 철없는 볼멘소리가 아니다. ‘잉여로서의 주체들’이 존재하는 한 명절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매양 그날이고 싶은 행복한 날이 아님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명절은 조상께 인사드리고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구성원들이 모여 정답게 식사할 수 있는 행사이다. 그러나 더 이상 많은 사람에게 명절은 행복한 날이 되지 못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은 사회 구성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 채 낡은 수사로 남아, TV 속에서만 메아리칠 뿐이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명절을 보내려면 그 이분의 프레임부터 거둬져야 한다.

가족구성원을 대상화시키고, 두 진영으로 나누어 폭력을 가하는 악습에서 벗어나야한다. 또한 정해진 성 역할과 가부장제 논리에서 벗어나, 모두가 함께 준비하고 모두가 함께 제례의식에 참여하는 추석의 모습이 보편화되어야한다. 그래야만 가족 구성원 모두가 웃는 낯으로 서로를 마주 볼 수 있는, 모두가 그날만 같기를 바라는, 진정한 의미의 ‘명절’이 될 것이다.

김나윤 청춘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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