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다니엘 인스타그램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첨단의 디지털 시대는 인류에게 많은 편리함을 줬지만 마냥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애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인터넷 댓글이나 SNS 등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게 다반사고, 민족적으론 우리의 훌륭한 한글이 파괴되는 폐해 또한 심각한 수준. 생활언어는 물론 언론매체의 글마저 자꾸만 자극적, 원색적으로 변해간다.

맞춤법에 어긋나는 게 당연시되고 있고, 반어법을 넘어서 나쁜 말이 좋은 말이 돼간다. ‘깡패’가 그렇고 ‘악마’가 그렇다. 도대체 ‘악마의 재능기부’란 말이 말이 되기나 한 걸까? 악마의 재능이 뭔지, 그 재능을 시청자에게 기부해서 어떤 도움을 주기나 하겠다는 건지 곰곰이 몰두해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다.

TV에서 예능은 드라마만큼이나 시청자와 방송사 모두에게 중요하다. 예능프로그램의 기본 임무는 시청자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하루 종일 생업에 시달린 서민들의 피로를 풀어주고, 별 고민 없이 유쾌하게 만들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도록 도와주는 게 가장 큰 목적이다. 물론 방송사도 언론사인 만큼 자그마한 메시지 하나쯤 던져주고, 뭔가 흐뭇한 교훈 하나 남겨준다면 최상의 ‘재능기부’다.

▲ MBC every1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화면 캡처

그런 면에서 MBC에브리원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와 Mnet ‘악마의 재능기부’는 천차만별의 비교대상감이다. 최근 ‘어서 와~’는 한국에서 10여 년 생활해 이제 한국인이 다 되다시피 한 독일인 다니엘의 고향 친구 3명을 초청해 진행됐다. 향수병에 걸릴 만도 하고, 무엇보다 가족과 친구가 그리운 다니엘에게 한국을 처음 방문한 친구들은 정말 최고의 명약이었고, 친구들 역시 첫 한국방문은 새로운 경험인 동시에 오래 그려온 판타지의 실현이기도 했다.

MBC에브리원은 개국 이래 10년간 시청률 2%를 넘은 적이 없었는데 ‘어서 와~’는 3주 연속 3%를 돌파하는 쾌거를 올렸다. 수도권에서는 4%도 넘었다. 정말 ‘어서 와’를 외칠 수밖에 없는 ‘신의 한 수’였다.

사실 외국인을 주인공으로 삼는 예능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포맷이 아니다. 그나마 JTBC ‘비정상회담’ 같은 통통 튀는 프로그램마저도 이젠 식상할 정도다. ‘어서 와~’는 한국이 처음이고, 예능 경험도 없는 ‘일반인 관광객’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모험을 시도했다. 어차피 예능은 연출이 개입해야 재미있는데 이들에게선 연기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먹혔다.

▲ MBC every1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화면 캡처

KBS2 ‘배틀 트립’과 완전히 상반된 포맷이다. ‘배틀 트립’은 유명 연예인 친구끼리 테마를 정해 해외여행을 다니는 게 기본틀이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시청자의 흥미를 돋우고 그들을 즐겁게 하는지 잘 알기에 예능실력을 발휘한다. 음식 하나를 먹는 표정도, 아름다운 풍광을 대하는 탄성도 연기다. 이에 비교해 다니엘의 독일친구 3인방에겐 연기가 있을 수 없다. 하더라도 어색하다. 그런데 케이블TV의 ‘어서 와~’는 지상파 방송인 ‘배틀 트립’에 근접한 시청률을 올렸다.

날것이 시청자의 감흥을 자극한 셈이다. 시청자의 스스로를 대입하는 몰입감이 높아질 수 있고, 실제 외국관광객을 대했을 때의 생경함과 신기함을 그대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란 의도가 적중했다. 한국 여행을 통해 판타지가 만족이 되는 친구들에게 다니엘이 한국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소개하며 가이드로서 이끄는 설정은 다큐멘터리에서 발견한 예능의 새로운 패러다임이었다.

▲ MBC every1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화면 캡처

한 친구는 독일에서도 한국식당을 자주 이용할 정도로 한국음식 마니아였다. 당연히 그의 꿈은 한국에서 ‘진짜’ 한국음식을 먹는 것이었는데 그 판타지가 실현됐다. 혐오식품일 수도 있는 닭모래집 요리를 어색하지만 기꺼운 경험의 차원에서 즐겼으며, 매운 음식도 일부러 만끽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칼을 이용하는 서양과 달리 가위로 잘라 먹는 고깃집에서의 ‘바비큐’ 경험에선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가운데 남다른 김치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KBS2는 장혁 차태현 김종국 홍경민 홍경인 등 평소 ‘용띠클럽’이란 이름으로 20년간 각별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1976년생 동갑내기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새 시즌제 예능 ‘용띠클럽: 철부지 브로망스’(가제) 6부작을 내달 3일 시작한다. 아주 단순하지만 이런 게 기획이다. 기획이란 동기부여의 근간 위에 당위성과 변별성을 구축하고 시청자의 호기심과 기대심리를 자극할 만한 요인으로 마무리할 때 시청자와 소통할 확률이 높다.

▲ 사진=장혁 인스타그램

그런 면에서 이 다섯 주인공의 조합은 필요충분조건을 다분히 갖췄다. 차태현과 김종국의 예능 실력은 ‘1박2일’과 ‘런닝맨’ 등을 통해 이미 충분히 입증됐다. 장혁은 매우 훌륭한 보너스고, ‘불후의 명곡’으로 예열을 한 홍경민과 그동안 예능에서 자주 볼 수 없었던 홍경인은 기대주다. 멤버 간의 매끄러운 조화 하나만큼은 보증수표다.

유사한 맥락에서 지난 14일 시작해 21일 2회를 넘긴 Mnet ‘악마의 재능기부’의 신정환과 탁재훈 조합은 얼핏 그럴싸해 보인다. 두 사람은 룰라의 멤버와 솔로가수로서 같은 기획사 소속이었지만 당시엔 인연이 없었다. 신정환은 1994년 룰라로 데뷔했지만 이듬해 군입대로 소속사를 떠났고, 그해 탁재훈이 소속사를 통해 솔로가수로 데뷔하면서 서로 어긋났기 때문이다.

▲ Mnet <프로젝트 S : 악마의 재능기부> 화면 캡처

1998년 두 사람은 한때 같은 기획사 소속이었다는 연대감으로 컨츄리꼬꼬를 구성하면서 ‘절친’이 됐으니 ‘악마의~’에서 뭉친 게 새삼스럽진 않다. 하지만 굳이 ‘악마’에게 ‘재능기부’를 시키겠다며 공통으로 도박 전과자인 두 사람을 한자리에 세운 저의에 다수의 시청자가 어리둥절한 반응인 건 어쩔 수 없는 결과다.

물론 전과자라는 게 평생 멍에가 돼선 안 된다. 두 사람은 이상민처럼 누군가의 큰돈을 빌려 쓰고 못 갚는 것도, 고영욱처럼 미성년자에게 성적인 피해를 입힌 것도 아니다. 그냥 자기 돈으로 도박을 했을 따름이다. 피해자가 있다면 그들을 믿고 성원을 보냄으로써 부와 명예를 쌓게끔 결정적인 도움을 준 대중이고, 피해 상황은 배신감과 실망감과 낭패감이다. 생활수준의 괴리감이 낳은 가치관에 대한 철학적 회의(懷疑)다.

▲ Mnet <프로젝트 S : 악마의 재능기부> 화면 캡처

이상민도 여러 예능을 누비는데 신정환과 탁재훈이라고 방송에 출연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죄를 지었더라도 죗값을 치렀다면 생업에 복귀할 기회는 마땅히 줘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고 생존의 섭리다. 문제는 그들이 일당 10만 원도 안 되는 평범한 노동자가 아니라 한때 프로그램 한 편 찍어 1000만 원대의 개런티를 받던 스타고, 대중을 유쾌하게 만드는 책임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 신정환은 국민의 수준도 제대로 몰라보고 어설픈 연출로 속이려다 곧바로 속셈이 드러난 괘씸죄의 농도가 굉장히 짙고 그 여파가 꽤 길다. 연예인 중에서도 특히 예능인은 시청자를 편하게 즐겁게 유쾌하게 만드는 걸 사명으로 하는 직업이다. 시작하기도 전부터 시청자의 불쾌하다는 불같은 반발이 쇄도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불통의 결과는 탄핵된 전 정권이 보여준 바 있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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