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킹스맨: 골든 서클> 샌디에고 2017 코믹콘 인터내셔널 현장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킹스맨: 골든 서클’(이하 ‘킹스맨2’)이 지난 27일 개봉일 48만 1751명의 관객을 동원해 누적 관객수 48만 7486명으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청소년관람불가 외화 최고 오프닝 스코어인 ‘로건’의 25만 6255명도, 청소년관람불가 영화 최고 흥행 오프닝 기록인 ‘아수라’의 47만 5482명도 깬 신기록이다.

이는 북미에서 전편만 못하다는 혹평이 흘러나왔고, 국내 언론시사회 이후에도 비슷한 부정적 평가가 여러 매체에서 쏟아진 것과 다른 결과물이다. 1편 때와 달리 주연배우와 감독이 내한한 이유도 흥행이 염려돼 바람몰이 차원에서 달려왔을 것이란 일각의 곱지 않은 시선 역시 일축했다. 관람한 관객들의 만족지수도 꽤 높다. 왜 이런 엇박자를 보이는 걸까?​

전편인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이하 ‘킹스맨1’)는 수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국내에서 612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놀라운 흥행성적을 올렸다. 미처 이럴 줄 몰랐던 주연배우와 감독은 애초 내한일정을 잡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미안해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가운데 속편이 제작된다면 한국 개봉 때 꼭 찾아보겠다고 선언했으며 이번에 그 약속을 지켰다.

▲ 영화 <킹스맨: 골든 서클> 스틸 이미지

우리 관객에게 비밀요원 영화라면 ‘007’ 시리즈가 매우 낯익다. 이와 재미의 시선을 달리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역시 익숙하다. 아예 아군과 적군의 기초개념을 깬 ‘본’ 시리즈까지 섭렵했으니 새로운 스파이물에 대한 흥행의 기대감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데 ‘킹스맨1’은 달랐다.

주인공 에그시는 전투능력이 뛰어나면서도 인텔리전트하고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한 제임스 본드도, 그보다 더 뛰어난 초능력에 가까운 실력을 겸비한 에단 헌트도, 그들의 장점만 고루 갖췄지만 내면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제이슨 본도 아니다. 키도 별로 안 크고 미남도 아니며, 고교를 중퇴하고 해병대 복무기간마저도 채우지 못한 동네 ‘양아치’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루저’인 에그시를 전면에 내세운 출발점부터 다른 ‘킹스맨1’이었다. 매튜 본 감독은 최근 리부트한 ‘판타스틱4’로 실망을 주긴 했지만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로 블록버스터 연출능력을 충분히 인정받은 바 있다. 뿐만 아니라 히어로를 매우 인간적인 시각에서 날카롭게 조명한 ‘킥 애스’ 시리즈로 철학적 깊이도 뽐냈었다.

▲ 영화 <킹스맨: 골든 서클> 스틸 이미지

굳이 ‘킹스맨1’을 규정한다면 ‘킥 애스’에 고어의 장치와 B급영화의 유머를 첨가한 액션물이다. B급 호러의 걸작으로 남은 샘 레이미 감독의 ‘이블 데드’ 시리즈가 보여준 유머처럼. 그래서 적지 않은 매체나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병맛이 주는 재미가 뛰어난 B급영화’로 분류하기 주저하지 않았다. 아마 ‘킹스맨2’에 대한 평론가나 매체의 부정적 평가는 이 오류에서 시작된 듯하다.​

‘킹스맨1’의 제작비는 8100만 달러(약 916억 원)고 ‘킹스맨2’는 1억400만 달러(약 1176억 원)로 알려졌다. 1000억 원 안팎의 제작비는 결코 B급영화의 사이즈가 아니다. B급영화는 1930년대 대공황으로 인한 영화산업의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할리우드 메이저스튜디오가 저예산으로 단시일 안에 제작해 A급영화와 동시에 상영한, 상대적으로 질이 좀 떨어지는 영화를 지칭했다. SF 범죄물 스릴러 등이 주를 이뤘다.

1949년 연방 대법원이 특정 영화사의 영화만을 상영하는 불공정배급 관행을 폐지하는 과정에서 제작사 배급사 배급체인의 분리를 명령함에 따라 스튜디오가 B급영화 자체 제작에서 손을 떼자 많은 독립영화제작사들이 출현하면서 B급영화는 새로운 지점으로 나아갔다. 단순히 질이 떨어지는 영화가 아니라 스타도 없고 제작비도 적지만 돈에 눈먼 스튜디오가 외면하는, 자유로운 작가정신에 근거해 자본의 눈치를 안 보는 창작의 세계를 펼치게 된 것.

▲ 영화 <킹스맨: 골든 서클> 스틸 이미지

마틴 스코시즈,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코엔 형제가 바로 B급 영화계의 스타 거장이며 현재 세계적으로 완성도와 흥행성에서 가장 완벽한 신뢰감을 주는 크리스토퍼 놀란 역시 B급영화의 메카라는 선댄스영화제가 알아본 천재다. 따라서 한 사람의 출연료만으로도 웬만한 독립영화 한두 편은 만들 수 있는, 대스타인 콜린 퍼스와 사무엘 L. 잭슨이 동시에 출연한 ‘킹스맨1’이 B급영화라고 하긴 어렵다. 배급사인 이십세기폭스(코리아)는 전형적인 메이저스튜디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의력과 상상력, 그리고 상업영화의 클리셰를 비웃는 B급 정서만큼은 충만했기에 관객들에게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던 ‘킹스맨1’이고 이에 취한 일부 평론가나 매체가 그런 관점에서만 ‘킹스맨2’를 바라봤기에 실망을 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중심을 잡아줘야 할 해리는 클라이맥스를 제외하곤 내내 에그시에게 민폐만 끼치는 매우 나약한 늙은이로 그려지니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며 수트‘빨’과 지적인 매력과 전투능력을 뽐내던 전편의 히어로를 애타게 기다려왔던 일부 필자들이 주관적 감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느낌이 짙다. 

결국 ‘B급의 병맛이 사라졌다’는 몇 매체의 가장 큰 불만과 또다시 점화된 여성비하 논란은 물밀듯 쇄도하는 관객들의 공감을 사진 못했다. 전편의 디테일마저도 거의 대부분 자연스럽게 잇는 시나리오의 치밀함과 미국까지 확장한 세계관은 결코 전편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전편이 동네 ‘양아치’에서 히어로로의 성장기를 그렸다면 이번엔 그 히어로가 또 다른 히어로들과 연합해 본격적인 활약상을 펼칠 후속작을 기대하게 만드는 확장판이란 평가를 낳고 있다.

▲ 영화 <킹스맨: 골든 서클> 스틸 이미지

‘올드 보이’의 장도리 액션 신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전편의 교회 살육전은 이번엔 새로운 악당 포피의 포피랜드에서의 더욱 화려한 액션 몹신으로 업그레이드됐다. 더불어 ‘칼다리’로 보여줬던 전편의 고어액션 역시 사이즈를 키웠으며 사람을 통째로 가는 기계 등을 통한 B급 유머로 잔혹함의 차원을 높였다.

전편이 영국신사들을 비웃는 ‘개천에서의 용의 탄생’이었다면 이번엔 미국의 제국주의와 한때 최악의 제국주의였음에도 현재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신사의 품격의 가치를 앞세우는 영국의 ‘두 얼굴’을 조롱한다. 물론 환경보호를 위해 인류를 거의 멸절에 이르게 하려는 아이러니컬한 인물 발렌타인을 내세운 전편의 메시지는 위스키의 반전만으로는 다소 아쉬운 게 맞지만 풍부한 알레고리와 다른 차원의 재미를 주는 ‘어벤져스’ 스타일의 슈퍼히어로물의 탄생을 예고한다는 세계관과 액션세계의 확장 플롯은 분명히 지나치게 상투적인 구조에 역사적 억지가 넘쳐나던 ‘트랜스포머’ 시리즈와는 다른 기대감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 영화 <킹스맨: 골든 서클> 스틸 이미지

여성비하 논란은 모든 사람의 인권이 동등하다는 인식과 개념이 정립된 현 사회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시각과 입장이 모두 같을 순 없기 때문에 향후에도 쉽게 가라앉을 것도 아니고 편향된 일방의 주장만 앞세울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국의 공주를 다소 퇴폐적으로 그린 점이나 하필 가장 사악한 악당을 여자로 설정한 점 등은 그런 논란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는 건 사실이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일국의 왕과 왕비 앞에서 제3자를 향해 상소리를 퍼붓는 시퀀스는 오히려 낡은 권위에 대항하는 ‘사람’들의 당당한 자기주장으로 보는 게 합당할 듯하다.​

‘킹스맨’ 시리즈는 어차피 메이저스튜디오가 큰돈을 벌고자 ‘007’ 시리즈와의 차별화를 꾀하면서 나온 아이디어다. 팝콘무비다. 가장 블록버스터다운 ‘어벤져스’가 의외로 철학을 갖췄다면 ‘킹스맨’은 대놓고 고어코미디액션을 지향한다고 떠들어대는 장르다. 매튜 본이, 혹은 그의 바통을 이어받을 다른 감독이 ‘킥 애스’의 존재론적 철학에 대한 고뇌를 잃지만 않는다면 ‘킹스맨’ 역시 썩 괜찮은 사색의 팝콘무비 시리즈로 자리매김할 기투(창조적 가능성을 전개해가는 실존의 존재방식)의 틀을 갖췄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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