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김주혁 소장의 성평등 보이스] 만일 TV의 메인 뉴스 앵커로 중년 여성과 20~30대 젊은 남성이 나온다면 반응이 어떨까? 남성 앵커는 30대 중반을 넘기기 전에 ‘젊은 피’로 교체돼야 한다면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까? 남성은 젊음과 외모로 평가하는 반면 여성은 경륜과 능력으로 평가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다. 중년 남성과 20~30대 젊은 여성의 조합이 TV 메인 뉴스 앵커 체제로 유지되고 있다. 주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중년 여성을 외국 TV에서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제는 우리도 달라져야 한다.

TV를 비롯한 대중매체는 요즘도 성역할 고정관념으로 가득하다. 서서히 달라지고 있지만 변화의 속도가 매우 더디다.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등에는 남성은 씩씩하고 주도적이어야 하는 반면 여성은 날씬하고 예뻐야 한다는 등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면을 찾아보기가 어렵지 않다. “남자가 그래 가지고 어떻게 하려고 그래!”라는 식이다. 집안일이나 아이 돌봄은 여성의 일이고 가계 부양 책임은 남성이 져야 하는 것처럼 강조되는 대목이 많다. 출연자도 남성이 압도적이고 여성은 보조적인 역할이 많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묘사하는 장면도 적지 않다.

게임이나 웹툰이 여성을 성적 대상이나 폭력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장면은 심각한 수준이다.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지 않는 성적 행동은 성폭력임에도 불구하고 동의 없이 성적 행동을 해도 되는 것처럼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크다.

▲ 영화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 스틸 이미지

영화도 남성 중심주의가 심각하다. 우리 영화에서 여성은 대부분 남성의 보조 역할 등으로 등장하는 데 머문다. 지난해 관객 100만 명 이상의 한국영화 24편 중 양성평등 수준을 측정하는 두 테스트를 모두 통과한 작품은 <귀향> 등 6편에 불과한 실정이다. 영화에 이름을 가진 여성이 2명 이상 등장하고, 그 여성 2명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그 대화가 남성이 아닌 다른 것에 관한 내용인가 등 3가지 질문이 벡델 테스트다. 마코 모리 테스트는 영화에 여성이 최소 1명 이상 등장하고, 그 여성이 자신의 스토리를 가지며, 그 스토리가 남성 인물의 스토리를 보조하는 데 그치지 않는 독자적인 것인지를 묻는다. 너무나도 초보적인 질문이다. 그러나 <검사외전> 등은 벡델 테스트의 3개 항목 모두 걸렸다.

지나 데이비스재단이 2015년 미국에서 흥행한 100대 영화를 조사한 '지나 데이비스 포용지수(GD-IQ)'에 따르면 남녀 배우의 비율을 보면 출연 분량 34.5% 대 12.9%, 대사 분량 33.1% 대 9.8%로 남성이 여성을 압도한다.

광고는 여성을 성적 대상이나 의존적이고 무책임하거나 무능한 존재로 묘사하는 일이 잦다. 집안일은 여성의 몫으로 치부하는 내용도 많다. 도시락은 엄마나 여자 친구만 싸야 할까? 아빠(가 만들어도 맛있는) 우동이 필요하다. 상업 광고뿐 아니라 정부 홍보물도 문제가 많다. 명절 준비는 여성이 해야 하는 것처럼 잘못된 내용을 담은 홍보물이 버젓이 나돌았다. 맞벌이 가정이 남성 외벌이 가정보다 많아진 지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전업주부가 자녀와 함께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는 모습이 포스터 등에 종종 등장한다. 자녀를 동반한 어른은 여성으로만 묘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청소년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접하는 대중매체에서부터 성역할 고정관념을 줄여나가야 여성과 남성이 모두 행복한 사회를 앞당길 수 있다.

▲ 김주혁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김주혁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양성평등․폭력예방교육 전문강사
전 서울신문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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