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원영빈의 리딩이야기] 10여 년 전 우리 아이와 동네 아이 한 명을 데리고 영어책 읽기를 시작할 때는 다독(Extensive Reading)이고 뭐고 눈으로는 책을 보면서 테이프에서 나오는 소리를 따라가면 무조건 영어가 느는 줄 알던 시절이 있었다. 다독의 진정한 의미도 제대로 몰랐던 나에게 '13세 소녀가 영어책을 좋아하여 늘 영어 소설책을 즐겨 읽어 토익 만점을 받았다.'라는 신문 기사는 그저 책만 많이 읽으면 영어를 저절로 잘하게 된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래서 내용이고 뭐고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가 빨리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게 할까?'라는 욕심에 해리포터 한 권을 다 들으면 당시 유행하던 로봇을 사준다고 꾀어 한 문장 짜리도 제대로 못 읽는 아이에게 두꺼운 해리포터 시리즈를 쥐여주며 음원을 들으면서 눈으로 따라 읽게 한 용감하고도 참으로 무식한 엄마이자 선생님이었다. 그 때문인지 전혀 알아듣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영어책 음원 따라 읽기에 진절머리를 냈던 우리 아이는 거의 일 년 가까이 책 읽기를 거부하며 나의 속을 애태웠다.

하지만 같이 책 읽기를 시작했던 동네 아이에게는 선생님으로서 '천천히' '아이의 능력에 맞게'를 강조하며 웃으면서 칭찬과 격려를 반복하면서 책 읽기를 진행하였다. 내 아이가 아닌 나의 '학생'이었기에 욕심을 내려놓고 지도할 수 있었다. 그 때문인지 그 아이는 빠르게 실력을 쌓아갔고 외국인과 말하는 대도 거침이 없었으며 문법을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영어로 글쓰기도 가능해져 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우리 아이의 영어 교육에 대해 더 조급해져 우리 아이에게는 더 억지로 영어책 읽기를 시킬 수밖에 없었던 엄마로 변해갔다.

정확히 말하면 10여 년 전의 나의 행동은 정말, 잘못된, 바보 같은 행동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우리 아이와 내가 지도했던 학생 아이의 '다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아이보다 수준 높은 책을 많이 읽게만 요구하였다.

내가 지도했던 학생이 영어 실력이 빠르게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아이와의 '다름'은 첫째, 그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한글 동화책을 가까이하게 해 주어 그 집에 가면 항상 식탁 주변과 거실이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으로 가득 차 있던 것이었다.  집에는 TV도 없어서 그 아이는 항상 집에서 책과 함께 노는 아이였기에 ABCD를 몰라도 영어책만 주어도 음원이 있으니 재미있게 영어책을 유추하면서 읽을 수 있는 책 읽기 습관이 잡힌 아이였다. 그러니 영어책 읽기로 어렵지 않게 실력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일을 한다는 핑계로 한글책 읽기의 중요성을 간과한 채 신문 기사의 내용대로 영어책을 무작정 많이, 게다가 얼토당토않게 높은 수준의 영어책을 계속 읽게만 시켰으니 한글책 읽기의 재미를 못 느끼고 습관도 잡혀있지 않았던 우리 아이에게 영어책 읽기가 재미도 없고 효과도 적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현재 군 복무 중인 아들에게는 이번 휴가 때 그때 엄마의 행동에 대해 미안했다고 사과했으며 아들은 나이스하게 웃으며 무식하지만 용감했던 엄마를 용서해 주었다.)

그렇다면 그때 나는 어떻게 그 둘을 지도해야 했을까? 그러기 위해서 그 이후로 10여 년의 시간과 경험이 더 필요했지만 그로 인해 아이의 유형에 따라 독서의 지도 방법을 깨우치게 되었고, 아이들은 영어독서지만 즐겁게 책 읽기를 통한 습득(노출)이 가능하게 되었다.

제2 외국어 학습론의 대가 Stephen krashen은 “Extensive Reading is not the best wasy. It' the only way.”(다독은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니라 유일한 방법이다.)라고 하며, 다독으로 인해 충분한 어휘력 및 수준 높은 문법 능력, 그리고 철자까지 잘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하였다. 나도 전적으로 동감하는 말이지만 내가 그 동안 지도해 본 아이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크라센의 이론에 맞는 아이들은 위에서 언급한 동네 아이처럼- 어려서부터 한글 책을 많이 읽었거나, 태어날 때부터 어휘감각이 있거나, 책 읽기를 좋아하는 소수의 아이들뿐이었다. 그 아이들은 한글 책을 많이 읽어 습득되어 이해되는 어휘의 수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훨씬 많았다. 또한 한글책 읽기로 습득된 유추 능력은 그림만 보아도 그림에 따라 음성만 들어도 그 스토리의 전반을 이해하는 듯 처음 보는 영어책도 재미있게 읽는 등 크라센의 이론과 일치하였다. 이런 그룹을 <다독형 아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실제로 <다독형 아이>비율보다 조금 더 많은 그룹이 바로 <정독형 아이>그룹이다. 이 아이들은 일명 '천천히 가는 아이들'이다. 다독으로 인해 유추 능력을 형성하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다행히도 여유있는 엄마들은 모국어로 된 책을 읽히면서 영어책 읽기도 같이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려 엄마가 보기에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아이의 경우는 다독을 메인으로 하지 않고 다소 학습적인 방법일 수 있으나 정독(Intensive Reading)으로 반복적인 습득 -암기에 가까운-에 집중하면서 다독과 병행해야 한다. 문장 만들기의 연결고리인 문법도 여러 번 -수도 없이- 반복해 주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소수의 다독형, 정독형을 제외한 나머지 부류의 아이들을 다독과 정독을 같이 하면 효과적인 아이들 일명 <다·정형 아이>라고 부른다.  이 그룹의 아이들이 바로 일반적으로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보통의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양적으로 많이 읽는 다독을 하면서, 어휘, 문맥, 문법까지도 정확하게 이해하여 말과 글로 표현이 가능하게 끔 하는 정독을 병행하는 균형 잡힌 독서를 하게 되는 효과적인 그룹이다.

앞서 크라센 박사의 말처럼 다독으로 다독의 장점을 모든 아이들이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 역시 그것만을 믿고 몇 년간을 다독에만 매달려 온 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다독만 한다고 좋은 경우는 소수의 다독형 아이들이었고 정독과 문법 그리고 학습적인 부분들이 따랐을 때 더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책 잘 읽기의 조건 중에 다독의 효능을 제일 먼저 꼽은 이유는 다독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 이상의 보이지 않는 절대 효과 때문이다.

처음 영어책 읽기를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무조건 많은 양의 책을 읽게 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조건이 있다. 한글책을 충분히 읽었을 것, 또 하나는 아이의 리딩 레벨보다 한두 단계의 아래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의 책을 더 많이, 더 충분히 읽은 후에 다음 단계 책을 읽을 것을 전제로 한다.

언제까지 얼마큼 읽어 채워야 하는가는 아이가 들어올 때 자신의 리딩 레벨이라고 여겼던 책을 소리 내어 줄줄 읽을 수 있거나, 그 책의 내용을 영어로 혹은 모국어로 자세하게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이 되었을 때이다. 아이들은 전혀 상관이 없고, 오히려 더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것에 대해 만족하지만 엄마들은 그때까지 참는 것을 매우 어려워한다.

아이들에 따라 시간과 양에 차이는 있지만 그 정도 채우면 아래와 같은 장점들이 생겨난다.

1. 전체 스토리를 파악하는 속도와 이해력이 높아진다. 다독하는 아이들의 장점은 뇌의 작용에 의해 글을 처리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이해력 또한 높아져서 전체 스토리를 이미지화하여 더 깊이 책의 스토리에 빠지게 되니 점점 더 책이 재미있어진다.

2. 단어와 문맥의 유추 능력
유추 능력은 쉽게 말하면 한글책을 읽으면서 터득되는 것과 같은 원리로 이해하면 쉽다. 우리가 어렸을 때 한글책 읽으면서 그곳에 나오는 모든 뜻을 이해하고 읽었을까? 그냥 몰라도 앞뒤 내용 보면서 대강 읽어도 어떤 내용인지 들어오니 재미있게 읽었을 뿐이다. 그러면서 몇 번 더 읽으면 다른 책이나 매체에서 보면 보다 명확히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 꼭 사전을 찾지 않아도 유추가 가능해진다. 영어책 읽기도 같은 원리이다. 게다가 쉬운 단계의 아이들 책에는 글보다 그림이 많으니 더욱 단어의 의미가 짐작이 쉬울 것이다.

조금 유식하게 설명하면 단어가 여러 형태의 문장 속에서 반복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자연스럽게 유추 능력이 생긴다. 그러기에 다독을 많이 한 친구들의 단어 암기 능력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우수하게 나타난다. 스펠링을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단어가 문장 안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많이 보았기 때문에 뜻과 형태가 낯설지 않게 되는 것이다.

3. 문자와 소리를 조합하는 능력
귀로는 음원을 들으면서 책의 글귀를 눈으로 따라가며 읽으니 유추 능력도 생기고, 그 단어가 어떤 소리로 읽어야 하는지도 깨우치게 된다. 파닉스를 하지 않아도 책을 줄줄 읽어내는 아이들이 생기는 것은 바로 글을 따라 음원을 듣기를 병행하기 때문이다. 파닉스를 따로 하지 않아도 들리는 대로 읽을 수 있으니 이게 바로 일거양득이다.

4. 집중력과 지구력
다독으로 효과를 보려면 처음에는 10분~20분 정도로 감질나게 책을 읽게 하다가 조금씩 아이에게 맞게 1시간 이상 시간을 늘리다 보면 어느새 엄마에게 아이가 다른 공부는 하지 않고 영어책만 읽는다는 기분좋은 컴플레인을 받게 된다. 영어책의 내용이 재미있어서 말릴 때까지 읽게 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거의 매일 꾸준히 CD의 음원에 맞춰 영어책을 읽으니 집중력과 지구력은 덤으로 생긴다. 책 읽는 아이들이 다른 공부도 잘한다는 것이 거짓이 아닌 것이 바로 그 이유이다.

5. 유창성
유창성 정확한 발음으로 적절한 표현력을 가지고 리듬, 운율, 억양에 맞춰 의미 단위로 끊어 읽는 것을 말한다. 눈으로만 묵독으로 읽게 되면 생기기 어려운 장점들인데 많이 듣고, 때로는 한 시리즈만을 수십 번 반복해서 듣고 읽게 되니 자연적으로 유창성이 생겨나게 된다. 책을 읽다 보면 이 유창성을 더 개발해야 함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정독에서 더 집중적으로 다룰 것이다.

이상으로 아이의 유형별로 영어 독서 방향과 다독의 효과에 대해 알아보았다. 10여 년 전 영어책 다독의 장점을 제대로, 정확히 알았더라면, 지금 우리 아이에게 더 큰 선물이 되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있지만, 지난 10여 년 전의 나처럼 아이에 대해 잘 모르고 억지로 책 읽기를 진행하는 겁 없는?! 엄마들에게 영어책 읽기 방법 중의 하나인 다독의 매력적인 효과에 대해 전달하여 나 같이 실수하고 후회하는 엄마와 선생님들이 다시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원영빈 키즈엔리딩 대표 - (저서) '공부방의 여왕'

[원영빈 키즈엔리딩 대표] 
숙대학원졸 해외스쿨캠프 제작&기획 
영어리딩 전문가 활동
영어 리딩 전문가 양성 프로젝트
현) 키즈엔리딩 대표

저서 : '공부방의 여왕'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