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부활자’, 미스터리와 모성애로 푼 검사외전 [유진모 칼럼]

유진모 칼럼니스트l승인2017.10.11l수정2017.10.11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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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희생부활자>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곽경택은 ‘친구’로 한국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지만 ‘친구’만한 후속작이 없다는 핸디캡도 동시에 지닌 감독이다. ‘극비수사’(2015)에서 소신을 강조하며 드디어 작품 속에 휴머니즘과 철학의 생명력을 제대로 불어넣을 줄 알게 된 그가 처음으로 손댄 미스터리스릴러 ‘희생부활자’(쇼박스 배급)는 그래서 기대와 궁금증을 품게 만드는 작품이다.

최명숙(김해숙)은 일찍 남편을 여읜 뒤 딸 희정(장영남)과 아들 진홍(김래원)을 키우기 위해 트럭에 각종 생필품을 싣고 다니며 노점상을 펼쳐 억척스럽게 살아간다. 그녀의 유일한 희망은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진홍이다. 드디어 진홍이 합격하고, 명숙은 그에게 전셋집 보증금을 주기 위해 홍은동 거리를 걷다가 오토바이를 탄 강도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지근거리에 있던 진홍은 강도의 칼을 맞고 쓰러진 명숙을 목격하고 뛰어오지만 이내 엄마의 죽음에 울부짖을 수밖에 없다. 한 달여 뒤 유력한 용의자가 변사체로 발견되며 사건은 종결된다. 그로부터 7년 뒤. 검사 임용 후 첫 재판을 마친 진홍에게 희정의 다급한 전화가 걸려온다. 그리고 서둘러 집에 돌아온 그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본다. 엄마가 돌아왔다.

▲ 영화 <희생부활자> 스틸 이미지

평소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명숙의 부활을 축하하기 위해 교인들이 몰려오는데 명숙은 갑자기 식도로 진홍을 공격하고 교인들에 의해 제압된 뒤 기절한다. 진홍은 119 구급대를 부르면서 경찰에 신고한다. 이 기괴한 사건에 국정원 요원 영태(성동일)와 경찰청 정보분실 소속 수현(전혜진)이 개입한다.

명숙의 정체는 억울한 죽음의 복수를 위해 살아 돌아온 희생부활자(RV, Resurrected Victims). 2000년 미국에서 처음 보고된 이후 마카오 영국 등 전 세계에서 발견된 미스터리다. 명숙은 89번째이자 한국에서 처음 발견된 RV. 국정원은 이미 RV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명숙이 언론에 드러날 경우 사회에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이를 어떻게든 막으려 노력한다.

수현은 생각이 다르다. RV의 목적은 오로지 복수다. 따라서 명숙이 진홍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면 진홍이 진범이란 증거다. 그래서 은밀하게 그의 뒤를 캔다. 진홍은 오래전부터 엄마를 죽인 진범은 따로 있다는 심증을 굳히고 있던 터. 그래서 검사 임용 후 경찰 수사기록을 가져와 그동안 따로 수사를 벌여왔고, 이를 토대로 여러 가지 정황상 진범이라 확신한 조선족 리칭칭(김민준)을 체포하는 데 성공한다.

▲ 영화 <희생부활자> 스틸 이미지

진홍이 사건 당시의 목격자에게 들은 바로는 범인이 2명인데 리칭칭은 명숙에게 치명상을 가한 또 다른 한 명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수현의 수사에 따르면 명숙이 죽은 뒤 진홍이 5억 원의 보험금을 수령했다. 진홍이 엄마를 죽일 이유는 존재했던 것. 그런데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명진수라는 노인도 보험금을 받았다. 그와 진홍의 가족과는 아무런 연고가 없다.

과연 진홍이 엄마를 살해한 걸까, 아니라면 진범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왜 명숙은 아들에게 칼을 휘둘렀을까? 과연 국정원의 속셈은, 검찰과 경찰이 좇는 진실은 도대체 뭘까?

박하익의 소설 ‘종료되었습니다’를 근거로 곽 감독이 무려 18고를 거쳐 완성한 시나리오는 매우 탄탄하다. 영화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야 진범을 알 수 있게 만드는 미스터리의 장르적 논법에 매우 충실하다. 중반부에 뜬금없이 등장하는 한 의문의 소녀는 스릴러의 중심이다. 명숙 진홍 영태 수현 등에 집중됐던 무게중심이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분산되면서 다소 혼란스럽긴 하지만 어느새 얘기의 흐름이 딱 맞아떨어지면서 관객들의 뒤통수를 묵직하게 가격하기에 충분하다.

▲ 영화 <희생부활자> 스틸 이미지

영화의 소재는 RV로 시작하지만 주제는 다소 산만할 정도로 많다. 진홍이 경찰로부터 용의자로 의심을 받자 검찰간부는 진홍에게 “대한민국에서 기소권은 우리 검찰밖에 없잖아”라며 용기를 북돋운다. 영화는 2015년에 이미 완성됐다. 당연히 검찰의 무소불위의 권력에 대한 조소다.

화살은 국정원을 비켜가지 않는다. 영태는 비교적 양심이 살아있는 요원이다. 하지만 그는 상부로부터 ‘까라면 까라’는 식의 일방통행식 명령을 자주 받는다. 그의 임무는 사회의 안녕과 질서지만 그 방식이 상식과 현행법을 어긋나기 일쑤다.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RV는 이미 존재한다. 그러나 그는 국민들에게 철저하게 그걸 숨겨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에 가림이 없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엠페도클레스는 기원전 5세기 파피루스 저서를 통해 만물을 구성하는 4원소로 물 불 흙 공기를 규정한 바 있다. 오죽하면 그는 자신을 신격화하기 위해 에트나 화산에 투신해 산화했다. 뤽 베송은 영화 ‘제5원소’를 통해 세상을 구원할 마지막 5번째 원소로 사랑을 첨가했다.

▲ 영화 <희생부활자> 스틸 이미지

이 영화는 물과 불이 또 다른 주인공이다. 영화의 실외장면은 내내 어둡고 비가 내린다. 물은 탄생이자 시작이고, 불은 죽음이자 마무리고 절정이다. 인간의 몸은 70~80%가 물이고, 누구나 태아시절 양수 속에서 지냈다. 하루 세끼 꼬박 챙겨 먹어야 산다지만 사실 그보다 더 생존에 중요한 건 물이다.

물과 불은 상극이다. 하지만 인류는 불을 발견하면서 빠르게 문명을 시작하고 확장시켜나갈 수 있었다. 이토록 물과 불은 생존과 생활에 필수지만 동시에 재앙이기도 하다. 그걸 거스르거나 악용하거나 오용할 경우다. 살아도 산 게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게 아닌 존재인 RV의 체내발화는 진정한 죽음이지만 그건 끝이 아니라 한 챕터의 마무리고 새로운 장의 시작이란 희망을 의미한다. 영화는 오히려 탄생을 의미하는 물을 비로 대체해 내내 음습한 분위기를 조장한다. 이 삶이 퍽퍽하다는 뜻이다. 드라마 ‘최강배달꾼’에서 고등학생 주인공이 외롭게 죽은 아버지의 골분을 날리며 “잘 가, 그동안 사느라 고생했어”라고 작별인사를 했듯.

그래서 이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제3원소가 바로 신호등이다. 사람은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 서기 마련이다. 그 신호등에서 어떤 방향을 설정하는가에 따라 인생이 아주 다르게 바뀔 수 있다. 그리고 제4원소로 양심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곽 감독이 선택한 제5원소는? 베송과 비슷한 모성애다. 종교에 대한 알레고리도 있으니 집중할 것.

▲ 영화 <희생부활자> 스틸 이미지

외형상 주인공은 김래원이지만 정작 돋보이는 배우는 김해숙이다. 그녀의 연기는 원래 뛰어나기로 유명하지만 이 작품은 두고두고 회자될 듯하다. ‘마더’의 김혜자에 못지않다. 도대체 사건을 어떻게 펼치고 풀어나가 어느 지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매조질지 감독과 두뇌게임을 펼치는 재미가 꽤 쏠쏠한, 오랜만에 보는 쫀득쫀득한 미스터리스릴러다.

영화의 또 다른 주제의식은 ‘혼돈’이다. 관객을 의문에 푹 빠지도록 의도한 것인지, 인생이란 게 그렇게 혼란스러운 것이라고 암시하기 위한 것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카메라 각도는 심심하면 오블리크 앵글이고, 틈만 나면 핸드헬드로 화면을 흔든다. 엠페도클레스가 기여한 인식론은 진홍에게, 존재론은 명숙에게 각각 담겨있다. 단, 왜 2년 동안 묵혔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긴 한다. 다소 산만한 편집도 불편할 수 있다. 91분. 15살 이상. 10월 12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유진모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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