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TS엔터테인먼트 제공.

[미디어파인=유진모의 이슈&피플] 소위 ‘B.A.P의 남동생 그룹’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데뷔한 TRCNG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지난 10일 SBS ‘인기가요’를 통해 처음으로 대중과 만난 TRCNG에 대한 각 매체의 지대한 관심과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이 그렇다. 다국적 메이저음반사인 유니버설뮤직이 내달 일본에서 그들을 데뷔시킨다는 소식 역시 눈치 빠른 일본에서도 가능성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K팝은 분명히 한류열풍의 선두주자 역할을 해낸 효자다. 드라마 ‘겨울연가’의 인기가 일본에서 시작돼 아시아 전체로 확산된 후 전 세계에 한류드라마 돌풍을 일으키면서 한류열풍의 중심에 섰다면 그 탄탄한 발판이 됐고 동반성장하는 원동력이자 2차 동력이 돼준 게 K팝이란 것 역시 명약관화다.

그래서 21세기 들어 우리 가요계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아이돌그룹이 데뷔하고, 그만큼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는가 하면 있었는지도 모를 신인이 사라졌다는 소식이 들려오곤 한다. 그런 심한 아이돌그룹의 부침 속에서 TRCNG라는 신인 한 팀이 나왔다고 해서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마치 HOT의 데뷔 당시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만큼은 변별성이 보인다. 그 의의는 무엇일까?

#그룹명

일반적으로 아이돌그룹명은 십대들이 쉽게 인식하고 강한 인상을 받게끔 만드는 게 상식이다. 다만 시대적 변화에 따라 그 이름 속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HOT가 대표적이다. ‘뜨겁다’는 매우 쉬운 단어를 채택하고 그 속에 ‘Hi-five Of Teenager’라는 틴에이저만의 밝고 희망찬 의미를 집어넣었다.

EXO는 태양계 외행성의 ‘Exo Planet’에서 따온 말로 Exo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외부’를 뜻하는 접두어다. 즉 ‘미지의 세계에서 온’이라는 신비주의적 이미지를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런가 하면 10~20대가 사회적 편견과 억압을 받는 것을 막아주면서 당당히 자신들의 음악과 가치를 지켜내겠다는 뜻을 담은 방탄소년단도 있다. 줄여서 BTS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는 한글이름을 영문화한 이니셜이기도 하고, 영역한 ‘Bulletproof Boy Scouts’의 이니셜이기도 한 절묘한 작명이다.

▲ 사진=TS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예 영어 외의 독일어로 ‘6개의 수정’이란 뜻의 젝스키스도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쉽고 단순하면서 임팩트가 강하기로 빅뱅만한 이름은 찾기 쉽지 않다. 그런 상황 속에서 TRCNG는 길고도 어렵다.

‘Teen Rising Champion in a New Generation’이라는, ‘새로운 시대에 떠오르는 십대들의 챔피언이 되겠다’는 포부를 담은 쉬운 내용이긴 하다. 해석은 쉽지만 이니셜은 외우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렇게 조합이 쉽게 인식되지 않는 이름을 택한 이유는 아무래도 기존의 아이돌그룹과의 차별화를 강조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건 그들의 나이와 무관하지 않다.

#나이

이들의 평균나이는 만 15.9살이다. 걸그룹 중 비교적 어리다는 여자친구의 데뷔시절보다 ‘젊다’. 보이그룹 중에서도 보기 드문 나이다. 이 10명의 멤버를 2000~2001년생으로 채운 건 바로 그룹의 이름과 깊은 관계가 있다. 지금은 21세기다. 멤버들은 모두 21세기 초에 태어났다. 즉 21세기를 여는 효시다. 그래서 그룹명이 ‘새로운 세대의 떠오르는 챔피언’이다.

20세기의 끝인 1990년대는 댄스그룹의 전성기였다. 서태지와아이들 듀스 룰라 투투 클론 쿨 터보 등 수많은 댄스그룹이 창궐했다. 그리고 그 시기 마지막을 장식한 그룹이 HOT 젝스키스 SES 핑클 등 아이돌그룹의 사실상의 시초였다. 이전의 댄스그룹이 20대 중반의 평균연령이었다면 그들은 10대 후반이었기에 아이돌그룹이란 이름이 적용될 수 있었다.

사실상 아이돌그룹은 이미 1960년대에 존재했다. 비틀즈가 원조다. 1963년 그들이 정식으로 데뷔했을 때의 나이가 각각 23살(존 레논, 링고 스타) 21살(폴 매카트니) 20살(조지 해리슨)이었다. 데뷔앨범에서 히트된 ‘Love me do’ ‘Please please me’ ‘I saw her standing there’ 등은 모두 3분을 넘기지 않는다.

앞의 두 곡은 말랑말랑한 가사와 멜로디와 편곡의 슈가팝이고 세 번째 곡은 그들이 존경했던 엘비스 프레슬리 스타일의 로큰롤이다. 중반 이후 인기보단 음악성에 치중하는 쪽으로 노선을 바꿔 후반기에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와 ‘White album’이란 불후의 명반으로 록을 완성하고 록의 모든 하위장르를 집대성하면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밴드로 남긴 했지만 초창기엔 아이돌그룹 수준의 음악을 했다.

오죽하면 그들을 시기한 미국이 아예 대놓고 전략적으로 비틀즈를 모방한 아이돌그룹 몽키즈를 출범시키기까지 했을까? 비틀즈의 초기를 흉내 낸 영국 그룹으론 ‘Saturday night’을 히트시킨 베이시티롤러즈를 들 수 있는데 그들은 아이돌그룹치고는 생명력이 매우 짧았다.

예전엔 아이돌그룹이라고 해도 직접 연주하고 작곡을 했지만 뉴키즈온더블록(1986)에 이르러 현재의 아이돌그룹 형태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악기는 팽개친 채 무대 위에서 강렬한 춤을 위주로 한 퍼포먼스에 치중하며 듣는 음악이 아닌 보는 음악을 추구하는 본격적인 새 시대를 연 것이다. 그들보다 1년 먼저 일본에서 소년대가 데뷔한 사실은 우리 가요계에 시사하는 내용이 분명히 있다. 소방차(1987)는 누가 뭐래도 소년대가 롤모델이었다.

▲ 사진=TS엔터테인먼트 제공.

TRCNG는 이렇게 장구한 아이돌그룹의 역사를 20세기로 마감하고, 새로운 21세기의 역사를 쓰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갖고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우리네 속담처럼.

#‘스펙트럼’

그래서 데뷔앨범의 제목도 ‘뉴 제너레이션’이다. 타이틀곡 ‘스펙트럼’은 힙합댄스의 외형을 띤다. 아이돌의 레퍼토리가 그렇듯 오리지널 인스트러먼트(생악기)가 배제된 채 디지털 편곡으로 설치돼있고, 랩과 멜로디를 혼합했다. 그런데 멜로디의 구성은 마치 뮤지컬을 연상케 하는 점층법과 점강법이 눈에 띈다. 교묘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혼재다. 그리고 음악성도 놓치지 않겠다는 기획사의 의도다.​

멤버가 10명인 이유는 소속사 대표가 결벽증에 가까운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수법 중 가장 대표적인 10진법을 적용한 것이다.

#향후 전망

1996년 대성기획(현 DS엔터테인먼트)은 브라질 교포 중학생 최혁준과 이세성으로 이뤄진 아이돌이란 댄스듀오를 데뷔시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전의 댄스그룹은 20대 초중반이 대세였던 데 비교해 충격적이었다. 아이돌은 데뷔곡 ‘Bow Wow’로 이름대로 단숨에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떠오르지만 이듬해 소리 소문 없이 해체된 후 아예 대중의 뇌리에서 잊혔다.

그 이유는 이듬해 ‘전사의 후예’로 데뷔한 HOT가 워낙 막강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SM과 DS의 숙명적인 라이벌대결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사실 아이돌이나 대성기획은 할 말이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아이돌은 음악성은 말할 것도 없고 형편없는 보컬실력에 춤실력마저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급조된 팀이었다.

이에 반해 HOT는 SM이 연습생제도란 시스템을 국내에서 처음 도입해 제대로 훈련시킨, 준비된 아이돌스타였다. 한마디로 상대가 안 되는 클래스였던 것이다. TRCNG는 21세기의 HOT를 노리는 시스템이 적용된 팀이라고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스펙트럼’의 스펙트럼 안에서 서태지와아이들, 그리고 HOT의 색깔이 살짝살짝 비치는 게 그렇다.

2000년생은 고교 2년생이다. TRCNG는 팬들의 ‘오빠’가 아닌, ‘친구’의 눈높이에서 소통하겠다는 의미다. 아이돌이 제대로 된 실력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단숨에 틴에이저를 사로잡을 수 있었던 배경은 또래라는 '눈높이' 덕이었다. 앞으로 아이돌그룹의 멤버는 21세기에 태어난 청소년들로 세대교체가 될 것이다.​

TRCNG는 그 서막이다. 첫걸음은 상쾌하다. 문제는 멤버 중 2000년생이 만 20살이 되는 2020년, 3년 후다. 이때부턴 ‘아티스트’로 평가받을 수 있을 만큼의 개성과 음악성을 확립하는 게 관건이다. 아이돌그룹이 단명하는 이유는 돈 문제 아니면 음악성정립 문제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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