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박열>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이슈&피플] 지난 25일 열린 제54회 대종상영화제는 이미 수많은 영화팬들로부터 외면당한 지 오래지만 주최 측은 물론 영화인들에겐 아직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주관, 지원해온 가장 오래된 영화제이기 때문이다. 청룡영화상과 함께 경쟁적 파트너쉽 관계를 유지하는 동반상승 효과로 한국영화 발전에 공동으로 이바지해주길 바라는 소망이 담겨있다.

이번에 조직위원회는 대대적인 개혁을 통한 ‘리부트’를 선언했지만 ‘절반의 성공’이란 다소 희망적인 평가와 ‘역시나’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다소 낯선 최희서가 여우조연상과 여우주연상을 한꺼번에 수상한 게 다수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과연 이번 대종상의 진짜 문제는 뭐고, 그 문제의 본질은 뭣이며, 향후 돌아선 대중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선 해결책이 뭘까?

이번 심사는 1차 예심과 2차 본심을 통해 수상대상을 선정했다. 예심은 심사위원들이 전체회의나 합의 없이 온라인을 통해 개별적으로 점수를 매겼기 때문에 담합은 있을 수 없었다. 본심 역시 심사위원들의 결과가 공개됐으므로 그럴 ‘조작’ 가능성은 희박하다.

▲ 영화 <박열> 스틸 이미지

수상내용에 대해선 그 어떤 권위를 자랑하는 영화제일지라도 모든 사람들을 100% 만족시킬 순 없다. 영화엔 확연하게 순위를 잴 숫자가 존재하지 않고 그래서 심사에 만장일치의 가치관도 존재할 수 없다. 영화적 예술적 상업적인 다양한 잣대가 도입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희서가 ‘출석상’을 받았다는 의혹은 대종상이 그동안 걸어온 바람직하지 못했던 길의 잔상 탓일 가능성이 높다.

방송을 생중계한 TV조선의 진행상의 미숙도 비난의 대상이다. 최희서가 수상소감을 말하는 중간에 방송과 아무 관계가 없는 스태프의 ‘막말’이 그대로 전파를 타는 음향사고가 났고, 심지어 특정 영화인을 거론하며 신체적 모욕이 될 수 있는 단어까지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음에도 사과 한 마디 없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더불어 여자MC의 미숙한 진행솜씨도 지적을 받고 있다.

대종상의 주최권자는 집행위원회인 한국영화인총연합회(이하 영총)다. 올해 새롭게 조직위원회를 꾸려 들어온 김구회 조직위원장이 집행위 측에 내건 옵션은 ‘한 걸음 물러날 것’이었고, 그게 합의가 되자 조직위는 배우들의 참석을 유도하기 위해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이하 연매협)를 공동주최자로 끌어들였다. 따라서 행사의 실질적인 주최는 집행위(영총) 조직위 연매협의 3자 연합 구도다.

▲ TV조선 방송화면 캡처

주최 측은 예심 전 바르고 빠른 개혁을 위해 일정기간 조직위 연매협 예심위원 등에서의 일부 인원들로 TF팀을 운영했고, 당일 행사는 3개 조직의 주최 측이 공동으로 하는 것으로 암묵적으로 약속했다. TV조선은 주관방송사가 아니라 송출사다. 즉 스태프의 막말은 기술상의 잘못된 실수인 것은 맞지만 전체 진행이 어설펐던 데 대한 책임은 없다.

대종상에 대한 대중의 가장 큰 불만은 ‘불투명하다’는 의혹의 여지가 있는 심사결과였다. 그로 인해 배우들이 줄줄이 불참함으로써 ‘출석하는 배우에게 상을 주겠다’는 납득하기 쉽지 않은 기준을 새로 세움으로써 더욱 많은 배우들이 보이콧하고, 결국 ‘출석상' '대충상'이란 불명예를 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 ‘리부트’의 가장 큰 과제는 후보자는 물론 후보에 들지 못했더라도 축제를 즐기기 위해 많은 배우 등 영화인들이 참석하는 것과 그럼으로써 대중의 신뢰를 얻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최희서를 제외한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후보들이 대거 불참함으로써 단숨에 오명을 씻어내진 못했다. 하지만 주최 측은 스케줄상 불참을 통보한 배우들의 동영상을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하려는 노력을 보였고, 이는 영상으로 증명됐다. 남자배우 및 감독상의 이준익도 참석하며 대종의 재기의 뼈를 깎는 노력에 힘을 보탰다. 이런 배우들의 달라진 자세는 오롯이 연매협의 발품 덕이었다.

▲ 영화 <박열> 촬영 현장

문제는 스태프 등 각종 기술분야에 대한 10개의 수상대상 중 7개가 대리수상했다는 데 있다. 다수의 매체와 대중은 이걸 간과했다. 영화제는 배우들뿐만 아니라 감독과 제작자는 물론 스포트라이트의 사각지대에서 묵묵히 땀을 흘린 스태프 등 모든 영화인들의 축제다. 인기를 누리는 배우와 더불어 스태프도 그간의 노고를 보상받고 치하 받아 마땅한 게 영화제다.

스태프 대거 불참의 책임이 가장 큰 곳은 주최 3개 조직 중 영총이다. 영총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한국영화감독협회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한국영화촬영감독협회 한국영화조명감독협회 한국영화배우협회 한국영화기술단체협의회 한국영화기획프로듀서협회 한국영화음악협회 등 8개의 유관 사단법인을 거느린, 주로 영화계의 ‘대선배’들로 구성된 단체다. 즉 연매협이 회원사들을 움직여 배우들을 출석시켰듯, 영총 역시 산하기관을 통해 스태프'들'의 참석을 유도했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카메라에 잡히진 않았지만 당일 행사는 TV조선과 상관없이 연매협 회원들이 전체 진행부터 질서유지 등 사소한 허드렛일까지 거의 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걸 현장을 꼼꼼히 본 사람들은 다 안다. 조직위는 대가를 지불하고 행사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영총과 연매협 측에 임무를 분담 의뢰했다. 연매협은 이병헌 등 톱스타를 유치하는 데 나름대로 노력을 경주했고, 부득이하게 불참하는 배우들의 동영상까지 직접 찍어오는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영총 측의 결과물은 도대체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발견할 수 없었다.

▲ 영화 <박열> 스틸 이미지

각 매체들은 입을 모아 행사진행의 미숙함을 지적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세 주최 측이 전혀 손발이 안 맞았고 그게 스태프 쪽에서의 대리수상이 쏟아진 결과로 입증된다. 물론 시청자는 스타가 보고 싶을 것이다. 그럼에도 ‘반쪽’ 행사가 되지 않기 위해선 진정한 전 영화인의 축제가 돼야하고, 여기에서 스태프가 배제돼선 완성될 수 없다.

결국 ‘리부트’를 천명한 대종상은 돌아선 배우들의 마음은 일부 돌리는 데 성공했지만 정작 그들이 빛날 수 있게끔 음지에서 남다른 땀을 흘려온 진정한 영화장인들까지 사로잡는 덴 실패했다. 과연 그 책임은 어디에 있을까? 내년의 대종상은 올해보다 한 뼘 성장할 수 있기나 한 걸까? 결국 대종상이 ‘큰 종소리’로 영화계에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선 해묵은 숙제인 신구화합이 먼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해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고 천명했다. 대종상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우리 영화계와 관객을 위한 진정한 ‘지원’과 ‘간섭’의 의미를 되새김으로써 ‘영화 산업의 발전과 질적인 향상을 도모’하고자 하는 이 영화제의 정체성을 공고히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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