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아메리칸 뷰티>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이슈&피플] 이루 셀 수 없는 필모그래피를 자랑하는 연기파 배우 케빈 스페이시의 대표작으로 ‘아메리칸 뷰티’(1999)를 빼면 서운할 것이다. 잘나가는 부동산 중개인 아내 캐롤린, 반항하는 여고생 딸 제인을 둔 중년의 레스터(케빈 스페이시)는 해고 직전의 잡지사 직원이자 가족에겐 무시당하는 무기력한 가장이다.

샤워할 때 자위행위 하는 게 유일한 낙인 그는 제인의 친구 안젤라에게 성욕을 느껴 그녀와의 잠자리를 꿈꾼다. 옆집에 해병대 출신의 콜로넬 가족이 이사 온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콜로넬은 아내에게 위압적이고, 고교생 아들 리키에겐 억압적이다. 나약하기만 한 레스터는 이 마초맨 앞에서 위축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에게 입술을 빼앗기곤 완전히 변한다.

‘유주얼 서스펙트’의 카이저 소제(케빈 스페이시)만큼이나 충격적인 반전이 국내외 영화팬들을 놀라게 만들고 있다. 스페이시가 커밍아웃을 한 것이다. 그 배경은 배우 안소니 랩이 “14살 때 스페이시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데 있다. 이미 커밍아웃을 한 ‘스타 트렉’의 재커리 퀸토는 이른바 ‘물타기’ 전략이라며 스페이시를 비난하고 있다. 과연 무엇이 진정한 ‘아메리칸 뷰티’인가?

‘아메리칸 뷰티’는 ‘미국인들의 아름다움’과 한 장미 품종의 중의적 의미인데 결국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에 대한 역설적 표현이다. 미국 중산층, 혹은 중하위계층인 주인공들은 모두 상처받거나 외로워하는 등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들이다. 캐롤린은 젊었을 때 레스터를 사랑했으니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경쟁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레스터는 가장으로서 결코 모녀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다.

캐롤린은 친구들을 만나면 소외되고 부끄러웠을 것이다. 친정식구를 볼 면목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부동산 중개업에 뛰어들어 악착같이 일했고, 그 덕에 젊었을 때완 다르지만 여자로서의 매력도 어느 정도 되찾았다. 그녀가 바람을 피우는 건 원초적 성욕이나 남편에 대한 반발심리가 아니라 ‘자아 찾기’다. 아내이자 어머니 그리고 살림꾼으로서 바빴기에 그동안 잊고 살았던.

▲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 스틸 이미지

제인의 반항, 리키의 일탈, 안젤라의 도발 등은 그런 불안정한 가정에서 자란 청소년에게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성장통이다. 콜로넬이 문제다. 게이인 그는 옆집의 게이부부를 보고도 화를 내지 않는 리키에게 폭력적이고, 심지어 리키가 레스터와 ‘나쁜 짓’을 하는 사이라고 오해해 권총을 주머니에 넣고 레스터를 찾아간다. 아내와 쇼윈도 부부로 살아간다는 레스터의 말을 게이라서 불행하다는 뜻으로 오해한 콜로넬은 갑자기 그에게 입을 맞춘다.

하지만 레스터가 거부하자 총으로 쏜다. 군대라는 매우 딱딱한 제도권에 길들여지고, 법과 도덕의 테두리 안에서의 철저한 훈련에 순종해온 콜로넬의 이중적 면모다. 어릴 때 자신의 정체성이 틀에 박힌 보수적 제도에 어긋나는 걸 알고 스스로 제도권 안으로 들어가 복종을 배워온 그는 헐크러첨 안팎이 다른 자신의 이중성이 괴로워 동질의 사람들을 혐오하는 척하면서 폭력성을 키워왔다.

게이라는 진실이 밝혀질까 두려워한 그는 의외로 눈물이 많고, 마음이 나약한 성향이었다. 그가 레스터를 죽인 건 비밀이 드러날 것을 우려한 이유도 있지만 처음으로 자신의 진정성을 고백했는데 외면당했다는 수치심과 자괴감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외도를 레스터에게 들킨 캐롤린은 레스터를 죽이러 왔다가 이미 싸늘한 시신으로 변한 걸 보자 오열한다. 이 얼마나 속물적이고 이기적인가? 뒤늦게 찾은 자아와 그것의 정립에 대해 황홀해하며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던 그녀에게 레스터는 걸림돌이었고, 그래서 제거하려했지만 결국 자신의 속물근성을 깨달으며 비로소 진정한 주체성을 찾을 첫걸음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레스터는 캐롤린보다 더 먼저 자아성찰을 완성한다. 당당하게 회사를 그만둔 뒤 패스트푸드점에서 ‘알바’를 하며 늘 갖고 싶어 했던 차를 산다. 또 안젤라에게 어필하기 위해 운동을 해 근육을 키운다. 결국 안젤라와 침대에 누운 레스터는 그러나 그녀가 처녀라는 말에 천박한 욕망을 포기함으로써 그녀의 꿈이 순수하게 펼쳐질 수 있게끔 어른다운 성숙함을 보여준다. 안젤라에 대한 배려는 곧 자아의 정립이었다.

퀸토의 비난을 기준으로 하면 스페이시는 레스터보다 콜로넬에 가깝다. 스페이시는 랩의 폭로에 ‘생각이 안 나지만 만약 그랬다면 술에 취했던 것이고, 사과하겠다’고 말했지만 퀸토는 “그동안 수많은 상과 존경을 받은 경력을 토대로 성소수자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자존감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파렴치한 행동을 모면하기 위해 계산된 이런 행동은 유감”이라고 반발했다.

▲ 영화 <슈퍼맨 리턴즈> 스틸 이미지

일단 뒤늦게나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과정에서 대중의 궁금증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놓은 점은 긍정적이긴 하다. 그럼에도 상쾌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동안 게이 의혹에 대해 부인했던 점이 그렇다. 아무리 이미지 관리나 가족·친지와의 관계 때문에 숨겼다고 양보할지라도 랩의 폭로에 발맞춰 사과와 커밍아웃을 동시에 함으로써 잘못보다 커밍아웃이 부각된 결과만 놓고 볼 땐 그 저의가 의심스럽긴 하다.

미국은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합법화에 찬성하는 입장을 공식화하며 각 자치주의 각기 다른 동성결혼의 합법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바 있을 정도로 동성애에 대해 꽤 진보적인 성향을 보인다. 천차만별인 각 민족과 국가의 법과 도덕적 잣대를 떠나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개인의 인격과 자유와 행복추구권리가 보장돼야한다는 건 민주주의가 정착된 이래 가장 당연한 진리이자 제일 절실한 과제다.

스페이시가 스타고 갑부이며 오피니언 리더임을 떠나 한 인간의 존엄성 문제만 놓고 봤을 때 그의 성소수자로서의 권리는 행복과 엄발나선 안 된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잡지사 직원의 신분을 유지하려한 건 투철한 애사심이나 일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오로지 가장으로서의 위치를 사수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쥐꼬리만 한 봉투나 그 신분은 아내와 딸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가 스스로 회사 문을 박차고 나와 기름냄새 풍기는 패스트푸드점에 취업하고, 주제넘게 값비싼 차를 구매한 건 가장으로선 무책임이지만 개인적으론 진정한 자아의 추구였다. 게다가 그는 딸의 친구를 넘보던 비도덕적 욕망마저도 어른으로서의 양심으로 짓누르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스페이시가 지금이라도 ‘레스터’가 아니라 ‘콜로넬’에 불과했다는 퀸토의 비난에서 벗어나려면 레스터가 안젤라와 관계를 하려다가 스스로 자제한 것처럼 ‘어른’다운 모습을 보여야할 것이다. 성소수자를 위한 사회활동과 기부에 적극적으로 나서야할 것이고, 팬들을 대상으로 계몽운동을 펼쳐야 할 것이며, 일부 성소수자들의 반사회적 일탈과 반항 등의 범죄를 막는 교화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누구든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은 열려있다. 중요한 건 그걸 빨리 깨달아 사회봉사로써 죗값을 치르는 것이고, 뒤에 오는 사람들이 자신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가르침으로 이끄는 것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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