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당신은 나랑 산지가 몇 년인데, 아직도 내 마음을 몰라? 그걸 꼭 말로 해야 돼? 도대체 나에게 관심은 있는 거야?” “제가 최선을 다해서 잘 하면 그 사람도 웬만큼은 알아서 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전혀 아니에요”

결혼을 앞둔 사이든, 1년차 부부든, 30년차 부부든 ‘나를 몰라 주는’ 상대와 다투는 건 똑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 그래서 내가 꼭 집어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내가 바라는 대로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원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해주지 않는 또는 못하는 사람은 ‘센스가 없어서’ 정도가 아니라 ‘사랑이 부족한 탓’으로 타박 받곤 합니다.

사실 연애 초기에는 서로 상대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갖은 애를 쓰다 보니, 요행히 그것이 잘 통하면 상당한 효과를 보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는 마치 직장에서 상사나 고객이 바라는 것을 재빠르게 눈치채고 잘 해결해주는 사람이 높은 점수를 받는 것과 비슷해 보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정말로 사랑한다면 상대가 원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일까요?

굳이 말을 주고받지 않고 눈빛만 마주쳐도 서로의 마음을 모두 알 수 있는 사이를 ‘이심전심’이라 합니다. 이는 오랜 친구나 연인 또는 부부처럼 가까운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텔레파시’ 현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또 이런 신비한 경험을 나눈 두 사람은 특별히 깊은 유대와 친밀감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분위기 깨는 말이지만) 이런 신비 현상에 너무 심취하는 것은 현실감을 둔화시키고 결국에는 두 사람의 관계에 해를 끼치는 역효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그 사람이 당신의 속마음을 전부 아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널리 알려진 오 헨리의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에서 남편은 아내를 위해서 자기 시계를 팔아 머리 빗을 샀는데, 그 부인은 머리칼을 팔아서 남편의 시계줄을 준비합니다. 상황만 보자면, 이 부부가 각자 최선을 다해서 준비한 선물은 쓸모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 부부는 과연 이심전심으로 잘 통한 것인가요, 아니면 전혀 통하지 않은 것인가요? 결과만 보면, 이심전심과는 전혀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오히려 자신이 애써서 마련한 선물이 쓸데없어진 것에 실망하여 화가 나서 싸우게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가난한 부부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이심전심 같은 신비 체험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머리칼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랄 것이니 그때까지 열심히 돈을 모아서 시계를 다시 사자”는 현실적인 위로와 격려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운동선수들의 손발이 척척 맞는 환상적인 팀플레이에 감탄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장면은 운이 좋아서 그리고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랜 기간 각자 노력하고 또 함께 훈련한 결과로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래도 때로는 어이없는 실수를 하지 않던가요? 연인들이 꿈꾸는 ‘잘 맞는 한 쌍’은 ‘어딘가에 있는 천생연분’이 아니라, 이처럼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만들어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잘 해주려 해도 피할 수 없는 싸움
달콤한 신혼 생활에 대한 기대가 산산조각 나는 것은 대부분 그리 큰 문제 때문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호의적으로 시작했던 대화가 단 몇 마디만 어긋나면 아주 쉽게 싸움이 되어버리곤 해서 결혼 생활 자체가 어렵게 되는 이런 현상의 원인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격 차이’로 알고 있지만) 소위 ‘의사소통 장애’ 때문입니다. 이런 장애가 일어나는 것은 도대체 무슨 문제 때문일까요? 애초에 뭔가를 기대한 것이 잘못일까요? 만일 그렇다면, 그런 기대도 없이 사랑하거나 결혼을 할 이유가 있을까요?

사실 사랑하는 상대에게 무엇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이 바라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면, 그것을 알 리 없는 상대는 자기 나름대로 판단하여 대응하게 되는데, 이런 과정에서 나타나는 오류가 서로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사이가 멀어지게 합니다. 이런 ‘의사소통 장애’는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특히 부부 관계에서 더 분명하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실제 예를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임신 3개월의 미애씨는 신랑 정규씨의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전화를 하여 “힘들어서 설거지를 못하고 있으니 빨리 와서 설거지를 해 달라”고 했습니다. 집에 온 정규씨는 부엌으로 가면서 “앞으로는 가사 도우미를 불러 쓰자”고 말했습니다. 정규씨가 설거지를 끝내고 와서 보니 미애씨는 소파 한 쪽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정규씨가 혹시 낮 동안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이유를 물었지만, 미애씨는 아무 말 없이 울기만 했고,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신랑은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후 미애 씨가 말했습니다. “당신처럼 냉정한 사람과 계속 살아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어!” 정규씨는 신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뭐가 냉정하다는 건지 왜 헤어지자는 건지 그저 황당하기만 했고, 급기야 화를 참을 수 없어 밤새 싸우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지 또 이렇게 사느니 일찍 헤어지는 것이 정말 서로를 위해서 나은 것인지 알아보고 싶어서 상담실을 찾았습니다.

상담을 통해 알게 된 정규 씨의 사정은 이랬습니다. 정규씨는 회사 업무가 밀려있었지만 입덧으로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신부가 힘들다고 하니 선배들의 눈총을 무릅쓰고 서둘러 귀가하였습니다. 다행히 그날은 일찍 퇴근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매번 그럴 수 없는 것이고, 그렇다고 힘들어 하는 아내를 그대로 둘 수는 없어서, 가사 도우미를 쓰자고 한 것입니다. 넉넉하지는 않은 살림이지만 아내가 우선이라고 생각해서 나름대로 배려해 준 것인데, 아내가 기뻐하고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냉정한 사람’이라고 몰아세우니 황당할 따름이었습니다.

반면, 미애씨의 마음은 달랐습니다. 사실 그까짓 설거지는 누가 하든 상관없는 것이었습니다. 미애씨가 정말 바랐던 것은 (사실 싸울 당시에는 자신도 몰랐지만) 설거지가 아니라, 신랑이 일찍 와서 함께 있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규씨가 집에 오자마자 (자신에게는 관심을 보이지도 않고) 부엌으로 가면서 고작 설거지를 대신할 가사 도우미를 부르자고 하니, 자신이 바랐던 것과는 정반대로 신랑이 자신을 귀찮아하고 또 자신에게서 멀어지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마음이 상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되나요? (이들 부부의 사례와 부부싸움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더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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