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창희의 건강한 삶을 위해] 인류가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비만을 극복하며 잘 살아갈 수 있을지 필자는 늘 고민스럽다. 최근 그 고민의 중심에 치킨·맥주, 일명 치맥 문화가 등장했다. 한국의 먹거리가 문화가 되니 한류 열풍을 타고 그 전파속도도 놀랍다. 이미 이 문화를 받아들인 중국의 사례를 심심찮게 언론에서 볼 수 있다. 치킨과 맥주, 일맥 치맥은 입맛 측면에서 보면 잘 어울리는 음식이다. 짜고 기름진 안주를 먹고 찬 맥주로 입과 위장을 씻어내릴 수 있으니 말이다.

햄버거나 피자에 차가운 콜라가 빠지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치맥, 그리고 즉석식에 곁들이는 정크 드링크는 대중의 입맛 선호에 있어 절대 권력자로 굳건히 등극했다. 기름진 식사 후 입가심이라는 공식이 없어지지 않는 한 그 아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제적으로 입맛을 사로잡은 이 음식들이 우리의 뱃살에 미치는 영향은 과연 어떨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뱃살을 키우는데 있어서도 환상적 궁합이다. 기름진 음식을 먹고 찬 음료를 들이켰으니 내일 아침 쾌변도 장담할 수 없다. 면역의 중심인 장 건강을 지킴에 있어 찬 것은 기본적으로 해롭다.

기름지고 냉한 악당 짝과 만난 우리의 몸은 입에서 느낀 즐거움 이상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 외에도 어떤 문제가 있을까. 우선 간단하게나마 치킨의 역사를 살펴보자. 오늘날 간식거리나 술안주로 전락한 풍요와 자본주의의 상징인 치킨. 그러나 그 역사는 뜻밖에 어둡고 비참하여 흑인들이 노예 생활을 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인들이 먹다 버린 닭 조각들, 즉 뼈가 많은 부위인 날개, 목, 닭발(무릎 아래)을 뼈 채 먹기 위해 흑인 노예들이 튀겨 먹은 것이 그 시초로 알려졌다.

흔히 치킨은 닭을 조각내어 요리하지만, 통닭이라는 말은 닭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고 보니 예전의 통닭은 말 그대로 펄펄 끓는 기름통에 통째로 담가 튀겨내었던 기억이 난다. 바삭한 식감을 주는 닭 껍질의 유실을 막고자 튀김 옷을 입혀 튀겨낸 것이 전부다. 현란한 기교를 부리는 치킨, 일명 조각 닭이 등장한 것은 아마도 88올림픽 전후로 기억된다. 이후 치킨집은 프랜차이즈를 중심으로 우후죽순처럼 늘어나 현재는 114 전화번호 안내에 중국집에 이어 두 번째로 등재될 정도로 그 수가 많다. 간식이나 술안주로 치부되는 음식이지만 치킨집을 운영하여 생계를 이어나가는 업소가 전국에 32,000여 곳이나 된다.

단백질과 지방 덩어리를 밀가루 옷을 입혀 튀겨 냈으니 열량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특히 늦은 밤에 음식을 먹는 행위는 소화기관의 휴식을 방해하므로 신진대사를 저하하는 대표적 원인이 된다. 음식 자체와 그 음식을 즐기는 식습관이 동시에 문제가 된다는 거다. 또한, 최근의 치킨은 더욱 달고 짜지는 경향이 있다. 짠 음식을 먹고 혈액 속의 나트륨 함량이 높아지면 우리 몸은 항상성의 유지를 위해 혈액 속으로 수분을 유입한다.

이때부터 염분의 농도가 정상이 될 때까지 우리 몸은 지방대사를 전혀 하지 않는다. 짜게 먹는 식습관이 수분으로 인한 부족 비만을 초래하는 이유다. 인간이 아득한 옛날 수렵 채집인으로 살아갈 때는 작은 새 한 마리를 잡아먹기 위해 밀림을 4시간 이상 뛰어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생활은 어떤가. 자동차에 앉아 치킨 한 마리를 먹어 치우는데 몇십 분이면 충분하다. 인류의 역사 250만 년은 장구한 세월이다.

궁핍이 풍요로 바뀌고 다시 풍요가 과잉으로 바뀌는데 불과 50년의 세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작년 한 해 대한민국 국민이 8억 마리의 치킨을 먹어치웠다고 한다. 인간이 맛있는 음식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욕구이므로 나무랄 수는 없지만, 그것이 일상이 되어선 곤란하다. 입맛을 추구하면 몸매를 망칠 가능성이 크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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