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1~2편의 주인공들은 ‘어벤져스’의 멤버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헐크처럼 '금강불괴지신'도 아니고, 토르처럼 신적인 존재도 아니며, 아이언맨처럼 슈퍼맨에 가까운 능력을 지닌 슈트를 가진 것도 아닌 데다 그런 걸 만들 재력을 갖춘 것도 아니다.

캡틴 아메리카처럼 과학의 힘으로 신체능력을 향상시킨 휴머노이드 그루트가 있긴 하지만 나머진 그냥 블랙 위도우나 호크 아이처럼 남들보다 좀 싸움을 잘 할 뿐이다. 아이언맨인 토니 스타크는 엄청난 부자고 매우 똑똑하다. 물론 헐크가 아닐 때의 브루스 배너 역시 뛰어난 과학자다. 하지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무식한 쪽에 가깝다. ‘천하장사’ 드랙스는 아둔하기까지 하다.

그들은 스스로 ‘루저’라고 인정한다. 그런데 이는 중의적 의미다. 자칭 스타 로드(우주의 주인)라는 피터 퀼은 외계인 아버지와 지구인 어머니 사이의 혼혈인이다.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편모슬하에서 자라지만 소년시절에 어머니를 잃고 우주용병을 이끄는 범죄 집단 두목 욘두의 손에서 도둑질 강도질 사기 등을 일삼는 라바저로 자란다.

그에게선 진지함이란 찾아볼 수 없다. 어제 사랑을 나눴던 여자의 존재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그는 온 우주의 여자들을 섭렵하겠다는 듯 여성편력에 집착하는 난봉꾼일 따름이다. 그의 유일한 친구이자 가장 큰 보물은 어머니가 선물한 1970년대 록음악을 녹음한 카세트테이프와 소니 플레이어.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의리나 신의라곤 개미 눈물만큼도 없다.

드랙스는 우주 최강의 빌런 타노스를 섬기는 빌런 로난의 손에 아내와 딸을 잃고 분노를 키우며 범죄자로 살아가는 근육덩어리다. 가모라는 어릴 때 타노스에게 부모를 잃은 뒤 의도치 않게 타노스의 양딸로 자랐다. 역시 타의에 의해 로난의 오른팔이 돼 일하지만 로난와 타노스를 제거할 생각이다. 비슷한 처지인 네뷸라와 철천지원수 사이.

로켓은 잔인한 조직의 생체실험에 의해 마구 난도질당한 끝에 지금의 설치류의 모습이 됐다. 외모 콤플렉스와 타인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된 피해의식이 팽배한 그릇된 인격이다. 그에겐 그루트라는 심복이 있다. 그루트는 멤버 중 중 유일한 초능력자로서 나무의 형질을 지녔지만 도마뱀처럼 절단부위가 복원되고 불빛을 만드는 능력을 지녔다.

하지만 그는 유일하게 할 줄 아는 말이 ‘나는 그루트’다. 로켓이 하지 말라고 해도 분수대의 물을 마실 정도로 개념이 부족하다. 그만큼 순진하거나 무지하다. 이들이 스스로 ‘루저’라고 칭하는 건 이렇듯 콤플렉스투성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들은 뭔가를 잃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건 가족과 자존감이다.

그래서 그들은 만나자마자 다툰다. 인피니티 스톤을 담은 오브를 팔아 떼돈을 챙기자는 공통의 목적 아래 함께 움직이면서도 목적만 달성하면 죽이겠다는 둥 갈등을 그치지 않는다. ‘은하계의 수호신’이란 이름도 로난이 비아냥거리는 의미에서 지어준 것일 뿐 애초에 이들에겐 팀명조차 없었다. 오직 돈이 목적이었다.

피터는 가모라에게 추파를 던지고 그를 아는 가모라는 철저하게 방어선을 구축한다. 네뷸라의 공격에 우주선이 파괴된 가모라가 우주공간에 노출돼 죽으려는 찰나 피터는 욘두에게 자신을 잡으러 오라는 메시지를 보낸 뒤 1인용 우주선에서 나와 자신의 헬멧을 가모라에게 씌워주는 무모한 희생을 자행한다.

이를 보고 지금까지 이기심과 자격지심에 비뚤어져있던 로켓이 변하고 가모라는 피터에게 무장을 해제한다. 공격적이고 파괴적이며 무식하기만 했던 드랙스는 무모하게 로난 군단을 불렀다가 커다란 희생이 생긴 결과를 본 뒤에야 처음으로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라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희생할 줄 알게 됨으로써 비로소 은하계의 수호신이 되는 것.

이들이 범죄자가 된 이유는 ‘평범한 삶을 잃었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무난하게 살고 싶었지만 ‘악마’에 의해 가족을 잃었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빼앗겼기 때문에 스스로 괴물이 된 것이다. 절대 물과 어울릴 수 없었던 기름과도 같았던 그들은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보듬어주게 되면서 희생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그 시점이 바로 슈퍼히어로로 거듭나는 득도의 분기점이다.

드랙스는 거칠고 공격적이며 힘이 장사다. 노여움이 극에 달해 분노만 남아있는 그의 겉모습은 그러나 사실은 가족을 잃은 슬픔을 당해낼 재간이 없을 만큼 심성이 나약했기 때문에 그걸 감추기 위한 또 다른 미약함의 이면이었다.

로난은 평화협정을 맺은 잔다르족을 멸절시키려 하고 범죄자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이 로난의 공격으로부터 잔다르를 지킨다는 설정은 DC에서 그보다 뒤에 내놓은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유사하다. 단,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다른 점은 자살특공대라는 소비적 암수에 의해 억지로 조직된 게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섰다가 그 행위 속에서 의미를 찾는 자아성찰을 이룬다는 데 있다.

로켓과 그루트는 현상금 사냥꾼이었다. 범죄자를 잡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다? 가모라는 창세기의 타락과 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의 고모라, 혹은 이탈리아의 4대 마피아 조직 중 하나인 카모라를 연상케 한다. 이런 아이로니컬한 일이 있을까 싶지만 여기엔 맹자의 성선설과 라이프니츠의 단자(모나드)론이 담겨있다.

절대 악의 지존 타노스는 그리스신화의 죽음의 신 타나토스에서 빌렸을 것이다. 프로이트는 삶의 본능을 에로스라, 죽음의 본능을 타나토스라 각각 규정하고 에로스에서 성의 본능이 내재하는 정신적 에너지인 리비도를 통해 생명유지와 종족번창이 이어진다고 주창했다. 타나토스는 파괴의 본능이다. 마블코믹스에서 타노스는 타이탄 행성 주민 데스의 아들로 태어나지만 흉측한 용모 탓에 어머니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위기를 거친다.

처음엔 그도 착한 사람(?)이었다. 성선설이다. 가모라와 네뷸라는 자매이자 동병상련의 처지지만 서로 위무하거나 협력하지 않고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다. 1편에서 그렇게 칼을 겨눴던 두 사람은 2편에서 마음의 벽을 허문다. 성선설이자 예정조화론이다. 라이프니츠는 단자론을 통해 삼라만상은 신에 의해 모두 조화를 이루도록 미리 정해져있다는 예정조화론을 펼친 바 있다. 그 단자론 중에서도 첫 번째 예정조화론인 ‘세상 모든 모나드는 상호연관이나 교류가 없지만 신의 예견과 조정에 의해 각 단자들의 지각 사이에 조화가 이뤄진다’는 이론이다.

1편의 끝에서 멤버들은 우주선의 추락으로 인해 죽을 운명에 처하지만 그루트의 희생에 의해 생존한 뒤 힘을 합쳐 인피니티 스톤을 취해 타노스에 도전할 만큼 무한대의 힘을 갖춘 로난을 물리친다. 만약 드랙스가 무리해서 로난을 부르지 않았다면, 피터가 오브를 취한 뒤 가모라를 만나지 못했다면, 로켓이 현상금 사냥꾼이 아니라 단순한 강도였다면? 예정조화다.

피터는 베드로다. 그는 예수의 12사도 중에서도 중심인물로서 예수 사후 그리스도교 전파에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로마군에 3번이나 그를 모른다고 거짓말을 한 주홍글씨를 지닌 인물. 피터 역시 베드로처럼 자신의 아버지와 다름없는 욘두를 속인다.

그런데 1편의 끝에서 피터에게 크게 한방 먹은 욘두는 오히려 싱긋 웃는다. 예수는 베드로를 용서했고, 그에 보답하기 위해 베드로는 예수 사후 포교에 전념하고 네로에게 죽임을 당함으로써 순교한다. 러시아에선 표토르, 대제다. 2편에서 피터의 아버지의 존재가 드러남으로써 피터의 정체가 ‘왕세자’임이 알려진다.

초능력자는 꽤 많은 사람들의 판타지이자 현실적인 요망이다. 할리우드에 ‘슈퍼맨’ 이후 수많은 슈퍼히어로들이 등장했지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만큼 상처 입고 버림받고 무능력해서 실패한 ‘루저’는 ‘왓치맨’ 빼곤 없었다. 요즘 보일러 광고에 등장하는 ‘슈퍼히어로 아버지’처럼 어쩌면 진정한 슈퍼히어로는 우리 근처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친환경적’ 설정이 기발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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