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흔히 남성들은 미애씨의 ‘잘못된 의사 표현’을, 그리고 여성들은 정규씨의 ‘무신경함’을 탓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남성들은 신부가 바라는 것을 전혀 짐작하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십중팔구는 신부가 괜한 트집을 잡고 어린애처럼 군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많은 여성들은 (신부를 정말 사랑한다면) 어떻게 그런 것도 모를 수 있느냐, 그런 신랑과 사는 신부가 불쌍하다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정규씨는 미애씨가 말한 대로 하느라 나름의 최선을 다했습니다. 나아가 미애씨를 위한 계획도 세웠습니다. 그것이 정규씨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습니다. 그 이상으로 (사실은 미애씨 자신도 잘 몰라서) 말하지 않았던 것까지 정규씨가 알아서 충족시켜주기를 바라는 것은 당장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특히 신혼 부부들이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다음 사항들을 주의해야 합니다.

우선, 남성들은 부인이 하는 말, 즉 자신의 귀에 들어오고 눈에 비치는 것에만 집중하지 말고 미처 말로 표현되지 않은 것은 없는지 한 번 더 생각하고 또 틈틈이 부인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반면 여성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되묻고, 또 그것을 어떻게 말해야 남편이 제대로 알아듣겠는지를 찾아내야 합니다. 조금만 더 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면 내 말을 들어줄 것인지 까지 연구해서,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잘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애씨가 애초에 자신이 바라는 점을 정확하게 인식하여 정규씨에게 분명하게 말할 수 있었더라면, 또는 정규씨가 신부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바라는 것이 또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었더라면, 이처럼 헤어질 뻔한 상황에 이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하기가 결코 쉽지는 않지만,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 불필요한 싸움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불편한 노력이 필요한 이유는 (이전 포스트에서 소개한 바가 있지만) 남성과 여성의 언어 그리고 그 감정 전달과 이해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만 부부 간에 불필요한 말다툼을 줄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말을 해야 안다
대인 관계에 관한 ‘황금률’이란 것이 있습니다.

예수가 말한 “남에게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계명이나, 공자가 말한 “너희가 원치 않는 것은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규범을 일컬어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대인관계에서는 이 정도로 충분할지 몰라도, 부부 관계에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두 경우 다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자신이 아니라 상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부부관계에서의 의사소통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려 합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상대가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말하세요. 하지만 상대가 그대로 해주기를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그래도 당신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주세요.” 라고요.

어쩌면 당신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상대가 원한다면 그렇게 해줄 수는 있어요,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일일이 말로 해야만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전혀 고맙거나 즐겁지 않을 것 같아요.”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한번 같이 생각해보시지요. 그러니까 상대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만 즐거이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말인가요?

​소위 ‘옆구리 찔러서 절 받기’는 싫다는 말인데,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상대가 몰라서건 마음에 없어서건, 상대에게서 받지 못하는 것 때문에 상대를 원망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면 그래도 됩니다. 하지만 제가 그런 말을 드리는 이유는 당신이 상대의 마음을 받기를 원하는 것은 때때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이라서 실망만을 경험하게 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당신들의 관계를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상대가 당신의 ‘속마음’을 당신보다 더 잘 알아주기를 원한다면, 그런 일은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아주 가끔만 일어나는 것이라서, 그런 일이 일어나기 보다 당신들의 관계가 깨지는 것이 더 쉬울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당신이 원하는 것을 (상대가 싫어해서 안 해주는 거라면 몰라도, 상대가 몰라서 못해주는 거라면) 상대에게 알려서라도 받는 것이 당신들 모두를 위해서 더 낫지 않겠나요? 그런데, 그래도 아직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나는 상대가 충분히 알아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상대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경우를 피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는 방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무엇보다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마음 편하게 해주는 것’, ‘잘해 주는 것’, ‘가정적인 사람’ 같은 표현은 너무 막연하고 범위가 넓어서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상대는 자기 편할 대로 판단할 수도 있지만, 거꾸로 엄청나게 많은 것을 해줘야 할 것처럼 느낀 나머지 지레 부정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가능한대로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말하자면 ‘식사 후 그릇을 한 번 헹궈서 싱크대에 넣기’나 ‘목욕시킨 아이를 받아 수건으로 물을 닦아주기’처럼 말입니다. 또한 금지 또는 강제적인 표현보다는 부탁의 형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사람의 본성에는 하지 말라고 하면 괜히 더 하고 싶어지는 반발심이 있음을 고려하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술 마시고 늦게 오지 말라”고 하기보다는 “일주일에 적어도 절반 이상은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자”고 말하는 것이 훨씬 부드럽고 설득력이 있는 표현입니다. ​이럴 때면 상대 역시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라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가 더 쉽습니다. 왜냐하면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는 ‘간섭’보다, 부탁 받은 것만 들어주면 나머지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거부감이 훨씬 덜 들기 때문입니다.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 ‘엎드려 절 하고 절 받기’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즉 자신이 원하는 것은 상대에게 잘 알려주고, 그 결과와 상관없이 상대가 원하는 것은 들어주라는 것 말입니다. 만약 상대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면 충분히 설명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바라는 것을 상대가 해주었다면, 대단히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 정도는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끝내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애써 말해도 제대로 해주지 않거나 오히려 그 반대로 심술을 부리는 배우자 때문에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도 아주 많은 것이 현실이니까 말입니다.

이처럼 싸워도 얻기 어려운 것을 싸우지 않고 받아내는 것이 행복한 결혼 생활의 비결입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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