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저스티스 리그>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저스티스 리그’(잭 스나이더 감독)는 21세기에 매번 마블에 뒤처졌던 DC의 자존심을 세워줄 효시가 될 수 있을까? 아직 ‘어벤져스’를 따라가기엔 부족한 점이 없지 않지만 첫 ‘정의를 위한 합동작전’을 계기로 계속해서 캐릭터를 보완하고 새로운 슈퍼히어로를 끌어들임으로써 세계관과 우주관을 확장시켜나간다면 대등한 라이벌 구도를 꿈꿔봄직해 보인다.

둠스데이와의 혈전으로 슈퍼맨이 죽은 뒤 원더우먼은 정체를 숨긴 채 프랑스에서 조용하게 살아가지만 배트맨은 여전히 노구를 이끌고 범죄와의 전쟁 중이다. 도둑을 잡던 그의 앞에 정체불명의 하늘을 나는 좀비 하나가 나타난다. 우주정복을 꿈꾸는 빌런 스테픈울프의 파라데몬 군단의 정찰병인 것.

고대에 마더박스라 불리는 3개의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 이들 3개를 취해 합치는 자는 시간 공간 등을 모두 지배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힘을 갖게 된다. 스테픈울프가 이것을 차지하려 전쟁을 일으키자 섬나라 아마존, 바다의 왕국 아틀란티스, 그리고 인간세계가 힘을 모으고 여기에 신들까지 가세해 스테픈울프를 물리친 뒤 3개의 차원에서 각자 1개씩의 마더박스를 보관해왔다.

그런데 슈퍼맨이 죽은 걸 안 스테픈울프는 때가 왔다고 느끼고 다시 지구로 와 아마존과 아틀란티스를 차례로 치고 2개의 마더박스를 확보한 상황. 이제 그는 인간세상의 마지막 마더박스를 차지하기 위해 파상공격을 펼칠 태세다.

브루스 웨인은 슈퍼맨 사후 인간사회가 더욱 황폐해지는 데다 자신은 현저하게 노쇠해 감에 위기감을 느낀다. 이젠 혼자서 정의를 구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팀을 구성하려고 노력 중이다. 먼저 북유럽의 아쿠아맨을 찾아갔으나 거절당한 뒤 대학생 플래시를 만나 곧바로 그를 영입한다.

▲ 영화 <저스티스 리그> 스틸 이미지

아마존에서 쏘아 올린 횃불에 의한 재앙의 시그널을 본 원더우먼은 브루스의 케이브로 온다. 그녀의 임무는 사이보그를 끌어들이는 것. 아틀란티스로 되돌아간 아쿠아맨은 스테픈울프와의 첫 대결에서 완패한 뒤 저스티스 리그에 합류한다.

번개를 맞아 슈퍼맨과 겨룰 정도로 빠르게 달리는 능력과 전기를 다루는 힘을 갖춘 플래시. 몸 자체가 컴퓨터이자 아이언맨에 가까운 전투능력을 지닌 사이보그. 물을 다스리는 아쿠아맨. 여기에 배트맨과 원더우먼. 이렇듯 뛰어난 슈퍼히어로가 무려 5명이나 모였음에도 스테픈울프에겐 역부족이다.

이제 마지막 마더박스를 빼앗길 게 뻔히 눈에 보이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브루스는 팀원들에게 매우 위험한 제안을 한다. 과연 이들은 신이 되려는 스테픈울프를 물리치고 인류를 구할 수 있을까?

잭 스나이더라고 하면 다수의 관객들은 ‘300’을, 마니아들은 ‘왓치맨’을 각각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길 주저하지 않는다. 인트로는 다분히 ‘왓치맨’의 횡으로 흐르는 시작을 연상케 한다. “희망은 차 열쇠와 같지. 자주 잃어버리지만 결국 아주 가까운 곳에 있거든”이란 대사에서 ‘저스티스 리그’에 ‘왓치맨’의 ‘스마일의 철학’을 심고자 한 스나이더의 노력이 엿보인다.

또한 테러집단이 횡행하고 폭동이 만연하는 혼돈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절망과 허무주의에 빠진 모습 역시 ‘왓치맨’의 쓸쓸한 시대적 배경이 오버랩된다. 신문은 슈퍼맨과 함께 데이빗 보위와 마이클 잭슨의 영정사진을 싣고 ‘영웅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라고 한탄과 자조가 섞인 질문을 한다. 역시 ‘왓치맨’의 신문 가두판매대 설정이다.

▲ 영화 <저스티스 리그> 스틸 이미지

슈퍼맨이 죽었고, 그래서 스테픈울프가 다시 나타났으며, 이에 정의의 리그가 조성된 것이란 단순한 구조에 머물지 않고 아쿠아맨을 통해 “인간 때문에 빙하가 녹았다”라고, 알프레드를 통해 “펭귄 폭탄 걱정하던 때가 좋았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인류의 오만이 환경을 파괴하고 인간성과 정의마저도 때려 부숨에 따라 어둠이 도래했다는 메타포를 펼치는 데서 확실히 달라진 DC임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과학을 “살리거나 죽이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인류 멸망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건 협동이자 합심이다. 아쿠아맨은 “난 혼자가 편해”라며 북유럽을 거점으로 나름대로 인류에 헌신하는 걸 만족해했지만 배트맨은 “나도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지만”이라며 지금은 힘을 합칠 위기의 시대라는 걸 역설한다.

‘저스티스 리그’만 놓고 보면 그럭저럭 합격점이다. 하지만 이를 완성하기 위해 시작한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 리그의 시작’이 발목을 잡는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그 자체만으로도 시나리오 상에 문제가 많았는데 그런 패착을 뛰어넘는 ‘저스티스 리그’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선 DC에겐 영원한 주홍글씨일 듯하다.

한없이 순수하고 희생정신이 투철하며 인류애가 인간보다 더 강한 슈퍼맨을 의심한 ‘맨 오브 스틸’(2013)의 마지막 장면은 나름대로 당위성을 갖췄다. 그런 발상을 한 사람이 미군 장성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강국 미국에서도 막강한 권력을 지닌 장군이기에 슈퍼맨의 엄청난 힘이 부러워 시기심이 들 수도, 이에 자신의 위치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낄 수도 있는 것.

그러나 ‘배트맨 대 슈퍼맨’에선 산전수전 다 겪은 브루스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건 난센스다. 당위성과 설득력이 떨어지는 두 사람의 맞대결에서 크립토나이트로 우세를 점한 배트맨이 슈퍼맨을 죽일 결정적인 순간에 어머니의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살려준다는 설정은 수많은 관객들의 코웃음을 자아냈던 ‘흑역사’는 영원한 멍에다.

▲ 영화 <저스티스 리그> 컨셉 일러스트

배트맨과 슈퍼맨이 연합해 둠스데이와 싸우지만 역부족일 때 결정적으로 도움을 주는 인물이 원더우먼이다. 그런 원더우먼이 가세한 저스티스 리그가 이번엔 둠스데이보다 다소 약해 보이는 스테픈울프에게 쩔쩔맨다. 만약 ‘배트맨 대 슈퍼맨’이 없었고 단순히 ‘원더우먼’만 있었다면 타당성이 있는 설정이지만 그렇지 못한 게 큰 핸디캡이다.

DC가 MCU보다 매번 한발씩 늦기에 마블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는 환경도 태생적 한계다. 스테픈울프는 “다크사이드 님을 위해”라고 외친다. 마블로 치면 스테픈울프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로난 정도의 빌런이고, 다크사이드는 마블 최고의 빌런 타노스 정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마더박스는 자연히 마블의 인피니티 스톤이 연상된다.

플래시는 ‘엑스맨’ 시리즈와 ‘어벤져스2’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퀵실버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아직 어려서 어수룩하고, 장난기 넘치며, 소소한 재미를 담당한다는 점에선 ‘엑스맨’의 퀵실버와 마블로 돌아온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피터 파커에 가깝다.

시나리오가 ‘배트맨 대 슈퍼맨’에 비해 꽤 탄탄해졌다는 점에선 희망적인 리그의 시작이다. 비주얼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화려하다. 어깨에 잔뜩 들어갔던 힘이 어느 정도 빠진 듯한 요소요소의 유머와 더불어 디스토피아적 그림자를 적당하게 뒤섞은 디테일도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배트맨 대 슈퍼맨’으로 실망한 관객들에게 모처럼 DC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줄 것이다. 12살 이상. 119분. 11월 15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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