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이슈&피플] 슈퍼주니어 멤버 강인이 지난 17일 새벽 서울 강남구의 한 술집에서 술에 취해 여자친구를 폭행한 혐의로 구설수에 올랐다. 그는 이미 2번의 음주운전 적발 건이 있다. 이번 폭행 혐의를 포함해 모두 술이 문제였다.

보건복지부 대한보건협회 건강증진개발원이 TV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 등 미디어의 음주 장면 모니터링 보고서를 내고, 음주를 조장하고 더 나아가 미화할 수 있다며, 각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민간협의체에 의뢰해 작성한 ‘절주문화 확산을 위한 미디어 음주장면 가이드라인’을 공개했다.

지난해 초부터 올 상반기까지 지상파·케이블·종합편성채널의 모니터 결과, 드라마에서 회당 1회 이상 음주 장면이 등장했고, 예능은 회당 1회 가까이 음주 관련 대사가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tvN ‘인생술집’의 경우 술을 마시며 하는 예능이다.

술은 인류가 제대로 요리문화를 조성하기 전부터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술은 사람의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기호음료이자 요리의 훌륭한 파트너로 오랫동안 밀착돼 이어져 내려온다. 뭐든지 과유불급이란 말이 적용되겠지만 과했을 경우 본인은 물론 타인에게까지 큰 피해를 끼치는 음식으로 술만 한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적당한’ 음주량과 도를 넘어선 그것의 차이가 크다는 게 문제다.

비단 우리나라만 과한 음주로 인해 야기되는 사건과 사고가 크고 많은 게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술에 관해 지나치게 관대하다거나 예외를 두는 풍토가 조성돼있는 게 문제로 지적돼왔다. ‘술김에’라는 관행적 표현이 대표적이다. 지금이야 음주상태에서의 범죄에 대해 가중처벌의 목소리가 높고, 그런 쪽으로 사회 전반적으로나 법조계에서나 분위기가 무르익는 형국이지만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그건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우리 민족의 음주문화와 연관이 있다. 대표적인 ‘어르신’의 가르침으로 ‘술은 어른한테 배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긴 하지만 여기엔 함정이 숨어있다. 처음부터 어른에게 주도를 배워야 나중에 사회에 진출해 술을 마셔도 실수하지 않는다는 좋은 뜻이 있긴 하지만 그 그늘엔 ‘어린 나이일지라도 어른과 마시면 면죄부를 받는다’는 모순이 있는 것.

어린아이에게 술을 못 마시게 하는 건 체력적으로 이기기 힘들어서고, 취했을 경우 나쁜 본성이 드러나는 걸 자제할 정신력이 미약하기 때문에서다. 술은 용기를 만용으로 바꾸고, 분별력을 감정으로 변화시키기 마련이다. 더불어 육체적 균형감각까지 마비시키는데 어른과 같이 마셨다고 그게 자제되는 게 아닌 건 당연하다. 술에 취하기 전이야 어른 앞이라고 얌전하겠지만 도를 넘어서면 증조할아버지 앞이라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런 문화적 배경 아래 술을 배우다 보면 사회에 진출해 구성원들이나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땐 일찌감치 무장이 해제돼 시작부터 마음이 해이해지기 일쑤다. 소위 ‘허리띠 풀어놓고 한번 마셔보자’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어릴 때부터 권위적인 아버지나 할아버지 밑에서 두 손으로 잔을 받든 뒤 고개를 돌려 마시는 과한 예의범절을 지키느라 억눌렸던 자존감을 마음대로 펼쳐보자는 치기에 성인과 사회인이란 위치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지위다.

우리 사회는 회식문화란 게 일상화돼있어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씩은 구성원들이 모여 술잔을 기울일 뿐만 아니라 일주일에 서너 번씩 동료들끼리 삼삼오오 어깨를 부딪치며 술자리를 갖기 마련이다. 이때 등장하는 대표적인 잘못된 음주습관이 ‘원 샷’한 뒤 그 잔을 옆자리에 돌리는 행위다.

일단 위생적으로 불결하다. 그렇잖아도 한 그릇 안의 국물을 여러 사람들이 함께 퍼먹는 식문화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확산되고 있는데 타인의 타액과 음식물 찌꺼기가 묻은 술잔에 입을 댄다는 건 참으로 원시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원 샷’을 거듭하니 알코올 흡수속도가 빨라져 취기가 금세 찾아오기 마련.

우리나라는 타인의 취향을 인정하지 않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다르다’를 ‘틀리다’고 왜곡하는 게 익숙할 정도니 그 폐해는 상당하다. 오직 힘 있는 자, 혹은 다수의 의견만 맞는 것이고, 서민과 소수의 의견은 다른 다양성이 아니라 틀린 것으로 치부되는 분위기다.

그래서 술은 잘 마시고 많이 마시는 게 지극히 당연하다는 데 다수의 의견이 집중됨으로써 상대방의 주량과 기호를 인정하지 않고 소주를 쏟아붓거나 ‘소맥’을 돌리곤 한다. 요즘처럼 힘든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 중 상당수는 술이나 회식자리를 그다지 즐기지도, 소주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어른’들이 억지로 자신들의 입맛과 버릇을 강압적으로 강요하는 건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우리 사회에 술자리를 갖게끔 만드는 요소가 많은 건 사실이다. 단적으로 건전한 놀이문화와 그걸 즐길 공간과 환경이 부족하다. 도시를 둘러보면 술집을 빼면 여가를 즐길 장소를 찾는 게 쉽지 않다. 땅덩어리가 좁은 이유도 있지만 국가가 국민의 건강을 지켜주고 레저를 보장해주고자 하는 탄착점이 현실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지금의 할아버지 세대는 자식들이 당구장이나 볼링장에 가면 ‘나쁜 짓’을 한다고 몽둥이를 들었을까?

이렇듯 빈곤한 문화 환경과 비뚤어진 문화적 시선 탓에 결국 젊은이들은 주점에 모여 토론을 하고, 건배로 우정을 외치며, 폭탄주를 돌림으로써 정치 문화 예술 철학 등을 공유한다. 사랑 우정 비즈니스 취업 이직 취미 사상 등이 술자리에서 형성되고 교류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식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그 자식들은 그렇게 성장해 유사한 문화가 정석이라고 착각한다.

여기에 21세기 들어 연성화된 미디어 환경이 한몫 크게 한다. 드라마에선 술에 취해 자세가 흐트러지는 여주인공을 인간미 넘치는 ‘여신’으로 표현한다. 평소엔 ‘여신’이지만 그녀에게도 허술한 구석이 있다는 식으로 미화함으로써 술이 그런 연화제 역할을 한다고 긍정적 기능을 홍보한다.

▲ tvn'인생술집' 캡처 화면

또한 예능에선 유명 연예인들끼리 가진 술자리의 에피소드를 풀어놓음으로써 마치 올림포스에서 신들의 연회가 벌어진 듯한 ‘자랑질’을 해댄다. 시청자들은 그걸 보고 스타들의 파티를 상상하면서 술에 대한 호감을 키워간다. 쟁쟁한 스타들이 즐기는 행복에 겨운 술자리를 동경하며 자신들도 그런 파티를 자주 갖는 게 행복하고 여유 있는 삶이라는 환상을 키우게 된다.

술에 대한 인식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취하면 실수한다는 것만큼은 모두 인정할 것이다. 탈무드는 ‘술이 들어가면 비밀이 나간다’고 했다. 더 나아가 ‘악마는 일일이 사람들을 찾아가기 힘들 정도로 바쁠 때 술을 보낸다’고 경고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위의 결과를 놓고 볼 때 술이 무의식 상태의 원인이 되기는 했지만 그러한 무의식을 일으킨 동기는 스스로 술을 마신 행위에 있음으로 잘못의 근본은 술에 취하도록 자신을 내팽개친 당사자에게 있다"라며 음주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해 가중처벌을 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침으로써 우발적 범죄의 변론을 원천봉쇄한 바 있다.

술은 어른이 가르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잘 배워야 하고, 그건 교육과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스 신화에서 디오니소스만큼 ‘보직’과 별명이 많은 신이 있을까? 그는 포도나무, 포도주, 다산, 풍요, 기쁨, 광란, 황홀경, 부활, 도취, 쾌락의 신이다. 별칭은 디메토르(어머니가 둘인 자), 트리고노스(세 번 태어난 자), 폴리고노스(거듭 태어난 자), 브로미오스(소란스러운 자), 리아에우스(근심을 덜어주는 자), 이아쿠스(부르짖는 자), 자그레우스(위대한 사냥꾼) 등.

이는 그의 가장 큰 상징성인 술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제우스가 자신의 딸과 바람을 피워서 낳은 아들이고, 이를 질투한 헤라의 사주를 받은 티탄에게 잡아먹힌다. 이에 분노한 제우스가 티탄에게 번개를 내리쳐 재로 만드는데 이 속에서 인류와 포도나무가 탄생한다. 그래서 인간성 속에는 신성과 야성이 공존하는데 이는 술의 속성과 아주 잘 들어맞는다.

술은 적당히 마시면 심신 양쪽에 모두 좋지만 넘치면 건강을 해치고 인간성을 동물성으로 바꾼다. 디오니소스가 기쁨의 신이자 광란의 신인 이유다. 적정량을 즐길 줄 아는 이성과 자제능력은 기쁨을 가져오지만 그걸 상실할 땐 광란, 즉 미친다는 의미다. 무려 2500년 전에 만민평등과 코스모폴리타니즘을 외친 디오게네스는 ‘미친 소크라테스’로 불렸는데 그의 미침과는 격이 다르다.

그는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최초의 철학자였다. 맨 정신으로 알렉산더 대왕에게 “햇빛이 가려지니 좀 비켜라”라고 말했다. ‘미친’과 ‘깡패’가 매우 우월하다는 수식어와 접미사가 된 지금이 미친 게 아닐까? 정부와 민간단체까지 나서서 TV에 음주조장을 자제하라고 팔을 걷어붙인 건 이제 음주 관련 전문 특별법이라도 입법화해야 할 때가 된 게 아닌가 할 만큼 씁쓸한 현실의 광란을 걱정하게 만든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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