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저스티스 리그>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저스티스 리그’(잭 스나이더 감독)가 국내 개봉 4~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원더우먼’의 216만여 명의 최종기록을 깰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미개봉성적에서 ‘원더우먼’에 뒤진 상황이라 만만치 않지만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 리그의 시작’과 ‘수어사이드 스쿼드’에 실망했던 관객들이 그럭저럭 만족한다는 게 고무적이다.

아무리 흥행에 크게 성공한 영화일지라도 부정적인 의견이 있기 마련. ‘저스티스 리그’ 역시 마찬가지다. 과연 이 영화는 볼 만한 값어치가 있을까? 결론부터 내리자면 ‘개인의 취향’이다. 영화가 문화이자 취미란 점에선 철저하게 각자의 시각과 사정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슈퍼히어로 영화를 좋아한다면 무조건 필독서다.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추종자라면 거부감이 들겠지만 원만한 취향의 소유자라면, 2시간 동안 별생각 없이 즐기고 싶다면, 영화는 봐야겠는데 특별하게 마음이 끌리는 작품이 없다면 무난하다. 내용이야 어쨌거나 화제작이니 주변의 대화에 끼려면-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한-안 보는 것보단 보는 게 낫겠다.

▲ 영화 <저스티스 리그> 컨셉 일러스트

약 3억 달러라는 거대한 제작비가 들어간 만큼 비주얼은 흠잡기 힘들 만큼 화려하고 웅장하며 판타스틱하다. ‘어벤져스’의 슈퍼히어로들과의 차별성을 부각하려 애쓴 흔적이 역력한 각 히어로 및 빌런 스테픈울프와 그의 파라데몬 군단은 관심을 가질 만한 캐릭터임에는 틀림없다.

더불어 팀 버튼의 ‘배트맨’,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잭 스나이더의 ‘왓치맨’ 등이 DCUF(DC 유니버스 프랜차이즈) 특유의 슈퍼히어로의 어두운 면을 부각한 게 거부감이 들었다는 관객 역시 ‘So So’라며 즐길 만한 팝콘무비다. 어차피 비현실적인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치는 재미를 즐기고자 하는 데 뭐 거창한 게 필요하냐는 사람들에겐 괜찮다.

흠집 잡기가 취미인 사람에겐 딱 먹잇감이다. 심각한 걸 좋아하는 이에겐 추천금지. 적지 않은 관객들의 DCUF에 대한 거부감은 어둡다는 것. 배트맨과 슈퍼맨은 정체성에 고민을 한다. 배트맨은 어릴 때 부모를 잃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슈퍼맨은 자신의 힘이 외려 콤플렉스다. 시간을 돌려가며 애인을 살려낼 정도의 능력자이지만 절대 지구인은 될 수 없다.

▲ 영화 <다크 나이트> 스틸 이미지

놀란의 배트맨은 자신의 행동이 선인지 악인지 헷갈려 괴롭다. 제도권이 그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래서 조커는 배트맨과 자신이 닮은꼴이라 한다. 배트맨이 가면을 쓰는 이유는 나약한 내면을 감추기 위해서다. 배트맨과 슈퍼맨은 악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시민에게 엄청난 피해를 끼친다. 과연 그게 그렇게 어둡고 음울한 설정일까?

천만에! ‘엑스맨’의 돌연변이들은 모두 인류의 적으로 내몰린다. 그들은 그저 평화롭게 생존권을 보장받으면 그만이었는데 그들의 능력에 지레 겁먹은 인류의 편견으로 인해 짓지도 않은 죄를 꼭 지을 듯한 잠재적 범죄인으로 분류된다. 가면을 쓰고 밤거리를 휘젓는 게 아니라 아예 은신처에 숨어살거나 정체성을 감춘다.

‘어벤져스’의 멤버들 역시 마찬가지다. 저마다 아픈 과거를 갖고 있거나 인격 장애로 괴로워하며, 그로 인해 다가올 미래의 불행에 대해 불안해한다. 블랙 위도우는 애써 감췄던 러시아의 스파이라는 과거가 드러나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브루스 배너는 헐크라는 능력 자체가 상처다. 유일하게 평화로워 보이는 인물이 호크 아이지만 그 역시 로키에게 세뇌될 만큼 정신력이 약하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사생아 스타로드는 어릴 때 홀어머니를 암으로 잃은 뒤 우주의 무법자 욘두에게 납치돼 범죄자로 자랐다. 그렇다면 왜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어두운 면이 그다지 부각되지 않고, 그에 비해 어두운 설정이 다소 약하기까지 한 DCUF만 유독 무거워 보일까? 연출의 세련미 차이다.

▲ 영화 <콘스탄틴> 스틸 이미지

일단 스나이더는 ‘왓치맨’이란 걸작으로 본의 아니게 슈퍼히어로 장르를 가장 어둡게 풀어내는 감독으로 낙인이 찍혔다. ‘맨 오브 스틸’로 본격적으로 DCUF에 합류한 그는 이 작품에서 지나치게 많은 정력을 허비했는지 정작 기념비가 될 만한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실소를 자아내게 할 시나리오와 연출로 실망감만 안겨줬다.

게다가 ‘저스티스 리그’는 그가 중간에 메가폰을 놓는 등 우여곡절을 거쳤으니 관객들의 선입견이 좋을 리 없다. 그의 ‘300’에 열광했던 팬들조차 도끼눈으로 째려보는 형국. ‘저스티스 리그’는 여전히 시나리오에 허점이 많다. 역대 최연장의 밴 애플렉에게 박쥐가면을 씌운 건 그만큼 배트맨이 노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췄다.

문제는 슈퍼맨이다. 많은 관객들이 ‘배트맨 대 슈퍼맨’의 엔딩에서 슈퍼맨이 죽었을 때 예상했던 대로 그는 부활한다. 아마존족, 아틀란티스족, 인류, 그리고 고대의 신까지 힘을 합쳐서 간신히 물리쳤던 스테픈울프가 그동안 잠잠했던 이유는 슈퍼맨 때문이고, 되돌아온 이유는 그가 죽었기 때문이다.

▲ 영화 <원더 우먼> 스틸 이미지

그래서 배트맨 원더우먼 아쿠아맨 사이보그 플래시 등의 저스티스 리그는 스테픈울프의 가공할 힘에 맥을 못 추고 결국 슈퍼맨을 살려낸다. 하지만 되살아난 그는 ‘좀비’에 가깝다. 그것까진 나쁘지 않다. 문제는 본성을 되찾는 이유가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슈퍼맨을 죽이려던 배트맨이 그를 살려주는 이유가 엄마의 이름이 같았던 설정과 아주 흡사할 정도로 궁색하다.

게다가 슈퍼맨은 지나치게 강하다. 크립톤 행성의 평범한 한 명에 불과한 그를 제우스보다 전지전능한 초능력자로 그리는 건 위험해 보인다. 그건 영화적 상상력을 떠나 상식에 어긋난다. 이쯤 되면 저스티스 리그와 어벤져스가 맞붙을지라도 슈퍼맨의 일방적 활약이 명약관화다.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슈퍼맨과 배트맨은 빌런 둠스데이에게 열세를 보이다가 갑자기 나타난 원더우먼의 도움으로 간신히 물리친 바 있다. 그런데 원더우먼은 리그 멤버 중 가장 강하긴 하지만 전편과 달리 스테픈울프에게 현저하게 쩔쩔맨다. 슈퍼맨은 더 강해졌고, 원더우먼은 많이 약해졌다.

▲ 영화 <저스티스 리그> 스틸 이미지

아쿠아맨 사이보그 플래시 등의 캐릭터가 다소 약하고 활약상이 크지 않다는 것 역시 많이 보완해야할 핸디캡이다. 플래시가 유머담당이지만 아직 역부족이다. 가장 실망스러운 지점은 웨인의 약해진 전투력이 아니라 캐릭터다. “당신의 슈퍼파워는 뭐냐?"라는 플래시의 질문에 웨인은 “돈”이라고 답한다. MCU의 토니 스타크 같은 역할이 웨인이다.

그런데 스타크는 아이언맨 슈트를 입으면 신인 토르와 맞먹을 정도의 가공한 전투력을 자랑하는 헐크를 제압할 만큼 돈의 위력을 잘 활용하지만 웨인은 나약하기만 하다.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어떻게 슈퍼맨을 제압할 수 있었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이미 렉스 루더와의 지루한 싸움을 통해 크립토나이트에 대처할 방법을 찾았을 법한 슈퍼맨인데 그렇지 못한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아이언맨’은 스타크를 사회부적응자로 분류한다. 쉴드는 첫 심사 때 그런 이유로 그를 탈락시킨 바 있다. 자본주의로 지구촌의 패자로 우뚝 선 미국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갑부인 그는 슈퍼카를 타고 값비싼 와인을 마시는 등 흥청망청 돈을 써대며 여성편력을 자랑하지만 반사회적 인물이다. 그래서 어벤져스의 리더는 나이 많은 캡틴 아메리카다.

저스티스 리그의 주인은 갑부인 웨인이다. 그는 막강한 재력을 앞세워 영웅들을 고용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을 강화시킬 순 없다. 그냥 영웅들에게 전투비용과 ‘인건비’를 대줄 뿐이다. ‘아이언맨’이 자본주의의 매력과 폐단의 양면을 아주 풍자적으로 잘 묘사한다면 ‘저스티스 리그’는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볼 뿐이다.

▲ 영화 <토르: 라그나로크> 스틸 이미지

‘저스티스 리그’는 MCU 사상 가장 재미있어서 지나치게 가볍다는 평가를 받는 ‘토르: 라그나로크’와 경쟁 중이다. ‘토르: 라그나로크’는 가벼운 유머와 통쾌한 액션만 넘실대는 듯하지만 나름대로 북유럽 신화에 대한 분석과 예의, 세상에 대한 풍자와 은유를 담았다. 오딘과 로키의 의형제관계를 토르와 로키로 바꾸고, 로키와 헬라의 부녀관계를 오딘과 헬라로 바꾸는 등 영화적 장치에 원활하게 맞물리도록 창작의 나래를 활짝 펼쳤다.

라그나로크는 신화에서도 종말인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신화대로 오딘의 산화를 거쳐 종말이 오지만 살아남은 이들은 절망하지 않고 후세를 위한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려는 희망을 품고 새 세상으로 향한다. 노아의 방주다. 그런 메시지는 말문이 트인 헐크와 점점 인간에 가까워지는 토르를 통해서도 암시한다. 세계내부의 존재자로서의 주변세계의 사물로 향해 가는 '세계-내-존재'로의 발전이다.

MCU에 ‘닥터 스트레인지’가 있다면 DCUF에는 ‘콘스탄틴’(프란시스 로렌스 감독, 2005)이 있다. 수많은 관객들이 ‘콘스탄틴’의 후속편을 간절히 바라는 것만 봐도 이 캐릭터와 로렌스 감독이 가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어벤져스’에는 아직 본격적인 오컬트가 없다. ‘저스티스 리그’의 약점이 신화라면 오컬트의 혼합은 MCU를 향한 썩 훌륭한 대안일 수 있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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