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반드시 잡는다>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공모자들’ ‘기술자들’의 김홍선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반드시 잡는다’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엇갈릴 미스터리 스릴러다. 기존 탐정물의 틀에서 벗어난 독특한 주인공을 앞세워 사회적 문제점들을 슬쩍슬쩍 건들면서 서민들의 애환까지 거론하는 등 나름대로 메시지를 갖추는 듯하지만 과한 연출의 욕심이 낳은 액션 등은 취향이 다른 관객의 눈에 거슬릴 소지가 다분하다.

전라남도의 서민 마을 아리동(가상의 도시). 70대 초반의 심덕수(백윤식)는 아리연립 등 몇 채의 부동산을 소유한, 동네에서 보기 드문 알부자로 열쇠공은 ‘알바’고 실제론 임대업으로 월세를 받아 여유롭게 산다. 그는 30년 전 떠났던 고향인 이곳으로 얼마 전 돌아와 토스트 가게를 하며 사는 민영숙(배종옥)을 흠모한다.

혼자 사는 이유를 애써 설명이라도 하듯 앞뒤가 꽉 막힌 탓에 주변에 친구가 없다. 세입자들은 저마다 안타까운 사연들을 간직한 가난뱅이라 월세를 제때 내는 게 쉽지 않지만 그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하루만 늦어도 닦달을 해대는 통에 인심을 못 얻고 있다.

60대의 세입자 최 씨에게 월세를 독촉하러 갔다가 함께 있던 독거노인을 돕는 자원봉사자들과 말다툼을 한다. 덕수는 작은 배려도 없는 막말을 내뱉고, 그럼에도 굽실거리기만 하는 최 씨가 안타까워 봉사자들이 최 씨를 거들어 준 것.

▲ 영화 <반드시 잡는다> 스틸 이미지

다음날 최 씨는 목을 맨 시체로 발견되고 사람들은 월세 독촉에 괴로워하던 그가 자살했다고 결론을 내린 뒤 덕수에게서 등을 돌린다. 동네 민심은 더욱 흉흉해진다. 며칠 전 개천에서 한 노인이 실족사한 데 이어 덕수의 다른 임대주택에서 한 노인이 자연사한 채 발견됐기 때문이다.

덕수가 최 씨의 집에 들어와 유품들을 살피는데 최 씨의 예전 형사 동료였던 박평달(성동일)이 불쑥 들어온다. 평달은 서랍에서 미국행 비행기 티켓을 꺼내며 수년 만에 아들을 만날 꿈에 부푼 노인이 자살을 하겠냐며 30년 전 이곳에서 있었던 연쇄살인의 용의자가 다시 나타났다고 확신에 찬 주장을 펼친다.

평달은 범인이 젊은 여자를 죽이기 위한 워밍업으로 세 노인을 죽인 것이라며 곧 여자 희생자가 나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덕수가 사는 105호 바로 위의 205호에는 20대 처녀 지은(김혜인)이 산다. 평달의 말에 걱정된 덕수는 지은의 집을 방문한다.

두 사람은 지은의 친구 수경의 시신 일부를 발견한다. 평달은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덕수를 말린다. 지은의 시신이 없다는 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고, 만약 경찰이 수사에 나설 경우 범인이 그녀를 죽일 것이니 일단 지은을 살리고 보자는 게 그의 논리.

▲ 영화 <반드시 잡는다> 스틸 이미지

두 사람이 회의 장소로 자주 이용하는 곳은 영숙의 토스트 가게. 이곳에서 덕수는 한의사 나정혁(천호진)을 만난다. 그는 전신마비의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것으로 평판이 좋은 데다 정기적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무료진료의 선행을 베풀어 큰 인심을 얻고 있다.

지은의 집에 몰래 들어가려던 동네 '양아치'와 그 일당이 용의선상에 오르는가 하면, 이 순경(조달환)은 열쇠공이므로 아무 집이나 들락날락할 수 있는 덕수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뒤를 캔다. 평달은 영숙이 30년 전의 일을 숨기고 있다고 덕수에게 귀띔해주더니, 30년 전 자신이 직접 범인의 눈을 본 적이 있다며 정혁을 의심한다.

평달 역시 미심쩍은 점이 전혀 없는 게 아니다. 그의 언행은 뭔가 과장됐고, 과대망상증에 걸린 듯 지나치게 자신의 육감을 확신하는 게 수상하다. 과연 진범은 누구이고, 왜 그런 잔인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걸까?

▲ 영화 <반드시 잡는다> 스틸 이미지

맥거핀은 복선에 복선을 거듭 설치하는 치밀함을 갖췄지만 눈치 빠른 관객이 예상 가능한 클리셰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다만 나름대로 메시지는 갖췄다. 덕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혈당 수치를 재며 “이런 성가신 병에 걸려갖고”라며 불평을 한다. “환갑 넘은 늙은이는 식충이냐"라며 노인을 무시하는 사회에 대고 울분을 터뜨리기도.

영화는 노인이 체력이 떨어진 것이지 인식과 의식과 의지마저 노쇠한 건 아니라는, 노인에 대한 강력한 변론을 펼친다. 늙어도 치매만 아니라면 사회의 한 축을 구성할 자격은 충분하다고 외친다. 더 나아가 비록 육체적 능력은 떨어질지라도 경험을 통해 축적한 노하우와 체득한 판단 능력이 월등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한편으론 노인들의 이런 자만과 오만이 사회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경종도 울린다. 자신에 대한 신념이 하늘을 찌르는 덕수는 오토바이를 타고 할머니가 깔아놓은 고추 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달린다. 지하철 임산부석에 떡하니 앉는 노인, 길거리에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침까지 내뱉는 현실의 노인들에 대한 알레고리다.

▲ 영화 <반드시 잡는다> 스틸 이미지

얼핏 보면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연상케 한다. 이 영화는 천박한 욕망에 집착하는 ‘양아치’ 모스와 우연의 철학을 신봉하는 살인마 시거라는 두 젊은이와 마냥 친절한 노인들, 그리고 늙은 보안관 에드를 통해 피투‘된’ 삶과 기투‘하는’ 삶을 말한다. 더불어 신념과 우연이란 표제어를 통해 늙어감에 대한 사유를 요구한다.

결국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제목은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에 대한 존재론적 측면에서 신은 무책임하거나 그럴 수밖에 없다는 얘기고, 더불어 늙어감과 늙음의 실존론적 자세는 젊음에 대한 관용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내포돼있다. 하지만 ‘반드시 잡는다’에는 이런 철학적 자세는 희박하다.

오히려 “노인한테 공경을 해야지 공격을 하냐"라는 식의 유치한 말장난과 지나친 욕심이 만든 ‘노인 액션’이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심지어 ‘까불지 마’(2004)가 오버랩된다. “임차인들이 게을러서 이렇게 사는 게 아니라 열심히 해도 나아지는 게 없어서 그렇다"라는 지은의 항변 하나만 가슴 한구석에 아린 여운으로 남을 따름이다. 단, 스릴러로서의 공포 효과는 확실하다. 110분. 15살 이상. 11월 29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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