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한 조사에 의하면 ‘부부싸움의 가장 큰 원인'을 ‘돈 때문’ 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절반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부부간에 돈 때문에 싸웠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이 없으니까 싸우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여러 부부들을 만나면서 늘 느끼는 것은 부자라고 해서 돈 문제로 싸우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부자들의 돈 싸움이 더 치열하고 졸렬한 경우도 아주 많습니다.

일례로, 남편의 사업이 잘 되어서 집에 돈은 많지만 자신은 한 번도 마음 편히 돈을 써본 적 없다는 부인이 있었습니다. ​남들은 자신을 부러워하겠지만, 정작 자신은 슈퍼에서 사과 한 알을 사더라도 남편에게 먼저 허락을 받거나 나중에 영수증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 아주 자존심 상한다며 괴로움을 호소했습니다. ​집에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이렇게 살기를 바랄 사람이 있을까요?

또 돈이 없어서 생활이 불편하기 때문에 자주 싸우게 된다는 부부들은 어떻게든 돈만 생기면 싸움에서 벗어날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얼핏 당연해 보이는 이런 생각도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잘못 찾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흔히들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결혼 생활에서의 돈 문제는 단순히 돈이 얼마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결혼 생활에서 돈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과연 무엇 때문일까요?

수경씨의 사연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남편이 군대를 나오고 시험 준비를 하는 동안 제가 먼저 직장에 들어갔어요. 연애하는 동안에는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제가 데이트 비용을 거의 다 부담했지요. 그런데 이제 남편도 취직을 했고 결혼한 지도 5개월이 지났는데, 그때 버릇이 남아서인지, 남편이 월급을 내놓지 않아요. 살림을 제가 하니까 월급 통장도 제가 관리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했더니 그러자고 말만 하고는 아직까지 반응이 없어요. 얼마 전에는 나와 상의도 없이 새 카메라를 샀더라고요. 제가 쓰던 게 있는데 왜 또 샀느냐고 했더니, 자기 돈으로 사는데 왜 그러냐는 식이예요. 그러니까 생활비는 제 월급으로 다 쓰고 있는데, 이 사람은 자기 월급은 자기 용돈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사실 아직은 제가 남편보다 더 많이 버니까, 자꾸 재촉하면 자존심 상해할까 봐 더 이상 말은 않고 있는데, 정말 속상해요.” 

돈은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것만큼이나 심리학적으로도 대단히 복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돈을 둘러싼 많은 문제들이 생기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점들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돈이 가지는 의미들 중 하나는 ‘권력’입니다.

권력을 ‘내가 원하는 대로 남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으로 정의한다면, 돈이야말로 대표적인 권력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남편이 자신이 벌어온 돈을 부인에게 맡기는 것은 단순히 금전의 관리만을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쉽게 말하면 가정에 대한 책임과 권력을 부부가 동등하게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또 돈은 단순한 물질 교환의 수단이 아니라, ‘자존심’과 ‘자기 정체성’의 상징이 될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상대의 자존심은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한 액수만으로 돈 문제를 풀려고 한다면, 의도치 않게 씻기 어려울 정도의 모욕을 줄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부부가 맞벌이든 아니든 각자의 수입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동 관리를 하는 것은 결혼생활에서 매우 기본적인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그것이 서로의 권리와 능력을 동등하게 인정하고 가정의 모든 문제를 함께 책임지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부부 중 한 사람이 자신의 수입을 숨기거나 돈 관리를 각자 하자고 한다면, 혹은 “내가 벌어온 돈은 모두 주었으니 나머지는 당신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나 몰라라 한다면, 상대방은 무시 받고 배반당하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내가 번 돈이니까 내 마음대로 쓸 거야”라고 말하는 수경씨의 남편은 결혼 생활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 남편은(수경씨가 짐작하는 대로) 자신의 보수가 너무 적어서 내놓기가 부끄러워 아예 모른 체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연애 기간에 ‘빌붙어’ 지내느라 상한 자존심이 채 회복되지 않은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더 심각한 문제가 되겠는데) 아직 결혼한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 충분히 발달되지 않았고, 나아가서 수경씨를 부인으로 완전히 받아들이기를 꺼리는 심리가 있기 때문일 가능성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유야 어느 쪽이든 수경씨는 남편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당신이 번 돈을 다 내놓고 용돈으로 받아쓰려면 불편할거야. 그래도 우리가 더 잘 살게 될 때를 위해서 같이 애쓰자”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즉 남편이 왜 돈을 내놓지 않는지 그 이유를 캐려고 하는 것이나, 남편으로서 무책임함을 질책하며 상대를 몰아세우는 것, 또는 상대의 나쁜 버릇과 자존심을 꺾어서라도 자신의 뜻대로 하려는 것은 모두 좋지 않은 방법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옳더라도 부부 불화를 피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속이 상하더라도, 일단은 상대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천천히 설득해가려는 태도가 돈으로 빚어질 수 있는 많은 함정들에 빠지는 것을 막아줍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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