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김주혁 소장의 성평등 보이스]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학교, 군대, 병원, 공공기관, 사기업 등의 사무실과 회식장소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 사진=kbs 뉴스화면 캡처

특히 최근 H가구 성폭력 사건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한꺼번에 노출시켰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여성 신입사원이 입사 3일 만에 불법촬영 피해를 당하고, 처리 과정에 도움을 준 교육 담당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인사팀장으로부터 허위진술 강요와 성희롱을 당하고, 피해자인데도 마치 꼬리친 것처럼 헛소문이 난무하는 2차 피해를 당했다는 피해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조직문화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재단 체육대회에서 간호사들에게 선정적인 복장과 춤을 강요한 S병원 사례도 여직원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조직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직장 내 성범죄는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조직문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 및 예방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상급자가 권력을 남용해 부하직원을 함부로 대하는 권위주의적인 조직이거나, 남성이 여성을 부수적 존재로 여기는 성차별적인 조직에서는 성희롱 성폭력이 발생하기 쉽다. 즉 예방장치 미흡, 권력관계, 남녀관계가 발생 원인이다. 사람은 누구나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 자신이 성희롱에 해당하는 언행을 할 때 피해자가 불이익이나 나쁜 소문 걱정 없이 당당하게 문제 제기를 할 수 있고, 행위(가해)자가 엄하게 처벌받는 조직문화라면 언행을 함부로 하지 못한다. 하지만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우려해 참고 넘어가고, 설령 문제 제기를 하더라도 처벌이 미약한 조직문화라면 성희롱이 일상화하고 악순환하기 마련이다.

김수한 고려대 사회학과 부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직 내 여성 관리자의 성희롱 경험률은 집단적 문화(0.569)와 여성 차별(0.336)이 심할수록 유의미하게 높은 반면 최고경영자(CEO)의 성평등 인식(-0.209)과 여성 관리자 비율(-0.678)이 높을수록 낮다.

▲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성희롱 실태보고 2017

권력을 남용하지 않고 양성평등하며 예방장치를 잘 갖춰 성희롱을 용납하지 않는 조직문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조직, 특히 최고경영자의 인식과 역할이 중요하다. D그룹과 H치킨 회장이 비서를 성추행하고 H 공기업 기관장이 성희롱 발언을 하는 등 최고경영자부터가 오시범을 보이는 조직은 성범죄의 온상이 될 수밖에 없다. 모 세무서처럼 기관장이 가해자를 두둔하고 가해자를 피해자와 분리하지 않는 가운데 2차 피해를 방치하는 조직에서는 피해자가 설 자리가 없다. 서울여성노동자회의 2016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문제 제기로 인해 피해자의 57%가 회사로부터 불이익 조치를 받았고, 72%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H공기업에서는 피해자가 가해자와 동료들의 따돌림 등 2차 피해를 견디다 못해 자살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은 “공공기관부터 직장 내 성희롱 문제에 대한 인식 전환과 보다 엄정한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기관장이나 부서장에게도 책임을 묻겠다고 최근 밝혔다. 남녀고용평등법도 직장 내 성희롱 방지를 위한 사업주의 조치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으로 최근 개정됐다.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는 모든 근로감독 시 직장 내 성희롱 필수 포함, 사내 사이버 신고센터 설치, 성희롱 권리구제 절차 상시 게시 등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책을 마련했다. 직장 내 성희롱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은 사업주를 최대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직장 내 성범죄는 최고경영자와 조직이 책임지고 근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여성단체들의 H가구 성폭력 규탄 기자회견

미국에서는 성희롱 행위(가해)자 뿐 아니라 해당 조직에게도 거액의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경우가 많다. 미쓰비시 미국 공장은 성희롱을 방치했다는 이유로 제기된 여직원들의 집단 소송에서 3400만달러(약 370억원)의 배상금을 물었다. 유럽 최대 투자은행인 UBS는 뉴욕에서 근무했던 전직 여사원이 제기한 성희롱 방치 혐의로 2930만달러(300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미국연방법원으로부터 받았다.

중국계 월스트리트 CEO는 20대 여직원을 성희롱한 혐의로 1800만달러(200억원)를 배상해야 했다. 폭스 뉴스의 로저 에일스 전 회장은 전 여성 앵커 그레천 칼슨에게 상습 성희롱을 한 혐의로 소송 당해 2000만달러(221억원) 지급에 합의했다. 폭스뉴스의 간판 앵커인 오라일리는 15년 간 5회의 성희롱 합의금으로 1300만달러(145억원)를 지불했다. 폭스뉴스는 성희롱 파문에 따라 승용차 등 광고주들이 대량 이탈하자 오라일리를 퇴출시킬 수밖에 없었다. H가구에 대한 불매운동처럼 소비자나 광고주들도 성희롱 기업을 용납하지 않기 위해 나서는 것이다.

직장에서 폭력예방교육이 기관장부터 참석한 가운데 제대로 이뤄지고, 성희롱 성폭력이 발생하면 피해자가 아무 걱정 없이 문제 제기를 하고, 가해자가 확실히 처벌받는, 성범죄가 발붙이지 못하는 조직문화가 이 땅의 모든 일터에 뿌리내려야겠다. 직장 밖에서도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나도 당했다’고 고발하는 ‘Me Too’ 캠페인을 통해 성폭력과 관련한 사회문화에 변화의 물결이 밀려오는 것처럼, 국내에서도 각계의 성폭력 고발 해시태그 운동이 다시 활발해져서 직장 밖의 성폭력도 사라지면 좋겠다. 그러려면 나부터 지위 고하와 남녀에 관계없이, 말하고 행동하기 전에 상대방 입장에서 성적 불쾌감을 느끼지 않을지 생각하고, 동의를 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겠다. 물론 기관이나 기업은 그런 조직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성적 굴욕감을 느끼게 하는 언행은 성희롱이고, 상대방의 동의를 받지 않은 성적 행위는 성폭력이다. 11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1주일은 ‘성폭력·가정폭력 추방주간’이다. 여성가족부는 ‘성폭력․가정폭력 안전지킴이, 바로 당신입니다’라는 주제 아래 여성폭력 예방을 위한 다양한 기념행사와 국민실천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때뿐 아니라 항상 젠더폭력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야겠다.

▲ 김주혁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김주혁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양성평등․폭력예방교육 전문강사
전 서울신문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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