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가정이 부유하든 가난하든 돈에 관련된 싸움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데, 부부 간에 지출의 우선 순위에 대한 의견이 다르면 특히 만성적인 불화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돈과 관련된 결정은 그 액수가 많든 적든 부부가 상의하여 결정해야 합니다. 사실 돈의 지출에 대해서 부부가 완전히 동의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로 ‘이 정도는 내가 알아서 해도 되겠지’ 라거나 ‘이렇게 해도 모르겠지’라고 생각하여 독단적으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부부가 돈 문제로 흔히 싸우게 되는 이유들 중 빠지지 않는 것이 부모님에게 보내는 돈 때문입니다.

“영진씨, 왜 자꾸 나에게 말도 않고 어머니에게 돈을 보내는 거야? 내가 알면 못하게 할까 봐 그러나 본데, 그건 영진씨가 늘 우리 형편보다 과하게 하니까 그런 거잖아. 나는 뭐 우리 부모님에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없겠어? 왜 내 입장은 생각 안 해 주는 거야?” “지금 우리 부모님한테 그깟 돈 얼마 보내는 게 아까워서 이러는 거야? 내가 내 돈 벌어서 우리 부모님 드리는데 왜 그래?”

남편이 부모님을 위해 보내드린 돈이 이런 식의 말다툼으로 이어진다면, 그 돈은 결국 불화를 만드는 몹쓸 돈이 되고 맙니다. 또 이런 사실을 부모님이 알게 된다면, 과연 즐거운 마음으로 그 돈을 쓸 수 있을까요? 결혼을 하고 직장도 가진 자녀가 부모님에 대한 봉양으로 (용돈이든 생활비든) 돈을 보내드리는 것을 잘못이라고 탓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부부 간에 충분한 합의가 없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실행되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의외로 많은 분들이 자주 잊어버리는데, 상대 배우자는 그 액수의 크고 작음 때문이 아니라 그 결정 과정에서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입니다.

그 돈이 아쉬운 것을 넘어서,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말입니다.그리고 이렇게 신뢰가 무너지고 나면 상대 배우자 역시 가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게 되거나, ‘당신이 그렇게 나온다면 나는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어’와 같은 반발을 하기 쉽습니다. 물론 배우자를 설득하기 너무 어렵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했겠지만, 그 후유증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편 이런 경우의 부인에게 조언을 하자면, 설령 남편이 이런 잘못을 했더라도 “나는 돈 한 푼 아끼려고 화장품도 얻어 쓰고 반찬 값도 줄이는데, 당신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처럼 서로를 대립되게 말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부모님께 보내드린 그 돈이 아까워서 반대하는 것이라는 인상만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나는 당신이 얼마나 힘들게 벌어온 돈인 줄 잘 아는데, 당신이 그렇게 곧바로 돈을 보내드리면 혹시라도 어머니가 너무 쉽게 생각하실 것 같아서 속상하더라”처럼 완곡하게 말하는 것이 낫습니다. 또는 “”그랬어? 어머니께서 어떻게든 잘 쓰시겠지만, 그 대신 당신 새 양복 사려던 건 못하게 됐고, 우리 아들에게도 당분간 피자나 치킨 사주기 어렵게 되었네. 잘 됐지, 뭐. 건강에 좋지도 않다는데.”와 같이 돌려서 말하는 기술도 한가지 방법입니다.

남편이나 부모님을 비난하지 말고, 그 돈으로 어떻게 쓸 수 있었는지를 알려주어 남편으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기도 하고, 어차피 부모님께 보내서 없어진 돈 때문에 남편의 마음까지 잃지는 말라는 말입니다.

덧붙여 제안하자면, (양쪽 부모님에 대한 지출은 부부가 상의하여 결정하되) 시집에 대한 지출은 부인에게, 반대로 처가에 대한 지출은 남편에게 더 큰 결정권을 인정하여 주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방법은 (부인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시부모에게 잘 하게 하려면 당신도 내 부모에게 잘 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효과는 자신의 부모를 잘 모시려고 하는 남편을 보면서 감사와 함께 자신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혹시 형편이 닿지 않아서 넉넉하게 해드리지 못하더라도, 그런 남편의 마음을 확인한 부인이라면 남편을 위해서라도 시부모에게 더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하는 말이지만, 부부 사이에서도 돈은 대단히 복합적인 심리적 의미를 갖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가진 돈이 많든 적든 돈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돈보다도 더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에 기반을 둔 ‘감동’입니다.

이런 점에 대한 이해, 즉 사랑과 감동이 없는 상태에서 지나치게 직선적으로 돈 문제를 처리하려고 했다가는 오히려 서로의 자존심을 짓밟고 가정을 파괴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부 사이에 돈 문제로 인한 갈등은 대부분 결혼 초기부터 시작됩니다.

당신 두 사람 사이에서 돈이 어떤 역할을 하게 만들 것인지는 (소득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당신에게 달려있는 것입니다. 다른 부부 갈등들과 마찬가지로 돈 문제에 있어서도 사랑에 기반을 둔 충분한 대화와 협조가 행복한 결혼 생활의 열쇠임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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