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mbc 방송화면 캡처

[미디어파인=유진모의 이슈&피플] 일요일 초저녁 시간대라면 온 가족이 모여 TV를 보며 저녁식사를 기다리거나 먹을 것이다. 토요일은 휴식 혹은 여가의 날이고, 일요일은 다음날부터 시작될 새로운 한 주를 계획하고 힘을 비축하는 준비의 날이다.

그런 날 세금 납부를 피하려다 9억 원을 추징당했고, 다시 한 번 그런 혐의로 조사를 받았지만 공소시효를 넘긴 이유로 무혐의 처리된 인순이(60)가 SBS ‘판타스틱 듀오 2’에서 사회자의 ‘섹시 디바’라는 소개를 받고 등장해 무대를 장식했다. 과연 시청자들은 어떻게 봤을까? 댓글은 적확했고, 적나라했다.

2011년 그녀는 3년 전 야간업소 행사 등의 활동으로 받은 현금을 신고하지 않아 국세청에 적발되자 “세무 관계에 대한 무지로 발생한 일이지 의도적인 누락은 아니었다. 이후부터 성실하게 신고하고 있다”고 해명하고 9억 원의 추징금을 납부했다.

당시 그녀는 MBC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열고 있었다. 방송에서 그녀는 억울한 듯 ‘어떤 일이 있더라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나인데’라는 코멘트를 내며 빗발치는 시청자의 출연중지 요구를 ‘당당히’ 이겨낸 바 있다.

지난해 12월 4일 분당세무서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인순이의 소득과 관련해 세무조사를 벌여 과소 신고로 결론짓고 세금 추징을 고지했다. 이에 인순이는 소득 일부는 과소 신고하지 않았다며 분당세무서에 이의를 제기했다.

분당세무서는 이를 받아들여 재조사에 들어갔는데 오히려 새로운 탈루 혐의를 찾았다. 2005년부터 수년간 소득을 현금 또는 차명계좌로 받아 66억 원이 넘는 돈을 탈루했다는 것. 이에 검찰에 고발했지만 결국 지난 3월 인순이는 ‘무죄’로 결론이 났다.

▲ 사진=sbs 방송화면 캡처

이에 대해 인순이 측은 ‘무혐의 처분으로 종결’이라는 표현을 썼다. 명명백백한 무죄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분당세무서는 ‘공소시효가 지나 검찰이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렸을 뿐’이라고 다른 입장을 내놨다. 조세법상 공소시효는 무신고의 경우 7년, 그 외의 경우 5년이다.

탈세는 내야하는 세금을 부정한 방법으로 안 내는 것이고, 탈루는 수입(이익)을 의도적으로 신고하지 않는 것을 지칭한다. 즉, 혐의가 사실이라면 그 행위가 2005년을 기준으로 공소시효인 7년을 훌쩍 넘겼다. 분당세무서가 고발한 2017년 초라면 2009년을 기준으로 해도 공소시효가 지났다.

1000번, 1만 번 인순이의 결백 주장이 옳다는 전제 하에서도 대중은 그녀의 말을 순순히 믿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그녀는 1978년 데뷔한 백전노장이다. 당시부터 1990년대까지 싱어송라이터가 아닌 가수들의 수익 중 밤무대 출연료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당시 그 돈은 무조건 현금거래였고 지금도 그런 관행이 남아있다.

따라서 웬만한 가수나 매니저로서 밤무대 및 행사 출연료를 곧이곧대로 신고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국세청이 주목할 대목이다. ‘아이돌’ 가수의 경우 밤무대 출연이 없고 공개 일정이 대부분이기에 소득신고 누락의 가능성은 매우 적다. 액수가 크고 주최 측이 거대 기업이기에 보는 눈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밤무대나 행사는 세무 관계자가 일일이 두 눈을 크게 뜨고 감시하지 않는 한 실질적인 수익의 산정이 불가능하다. 액수도 추정할 따름이긴 하지만 행사가 어디서 몇 번이나 있었는지는 일일이 확인이 힘들다.

오랜 밤무대 활동이 몸에 익은 인순이가 과연 ‘세금관계에 대해 무지’해서 신고 액수를 축소했을까? 지금까지 그녀는 자신이 당당한 한국인임을 강조해왔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4대의무가 무엇인지 매우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자체가 의무다. 9억 원의 추징금이라면 누락금액은 수십억 원일 것이다. 세무서가 그녀의 소득 금액을 정확하게 다 밝혀낼 만한 시스템과 인력과 연예계에 대한 상식을 갖추고 있을지도 의문이다.

인순이는 현재 2018평창동계올림픽 성화봉송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가운데 성화봉송 주제가인 ‘Let Everyone Shine’을 부르기도 했다. 조직위원회 측은 탈루 논란이 제기됐을 때 망설이는 듯하더니 ‘무죄’로 결론이 나자 인순이에 대해 더 이상 거론하지 않고 있다. 안도의 한숨인 듯하다.

▲ 사진=sbs 방송화면 캡처

SBS는 기간 KBS나 공영 MBC와 달리 민영방송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법에 어긋나지 않는 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지상파의 트로이카의 하나로서 상대적으로 연륜이 짧음에도 경쟁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위치라면 언론사로서의 최소한의 도덕과 양심을 지키고 최대한 수치는 피하는 게 ‘노블레스 오블리주’일 것이다.

인순이는 분명히 우리 가요사에서 돋보이는 존재다. 그러나 수십억 원의 수익을 고의로 누락해 9억 원이란 추징금을 낸 그녀를 굳이 써야 할 만큼 우리 가요계에 ‘디바’가 부족한지의 여부는 의문이다. 그녀가 벌어들인 돈은 차치하고라도 추징금으로 낸 9억 원은 서민이 평생 뼈가 부서져라 일해도 손에 쥐기 힘든 돈이다.

부자들이 빼돌린 그런 세금만 제대로 징수해도 정부가 서민복지에 나설 사업이 많을 건 자명하다. 인순이는 희자매 시절 방송에서 소울을 불렀던 적이 별로 없다. 희자매를 대표하는 곡은 가요 ‘실버들’이다. 그녀는 남성들의 이국적 판타지를 노린 영화 ‘흑녀’에 출연한 바 있다.

캐스팅은 제작진 혹은 방송사의 고유의 권한이다. 하지만 모든 일은 시청률과 직결된다. 시청자의 정서를 무시한 막무가내식 캐스팅이라면 과거에 언론을 장악해 꼭두각시로 만들었던 박정희와 전두환 시절의 일방통행식 독재에 대해 나름의 미덕을 운운하는 일부 ‘보수’들의 해괴망측한 주장에 일말의 논리적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

‘판타스틱 듀오 2’는 인기가수가 숨은 아마추어 실력자와 ‘환상적인 듀엣’의 무대를 펼치는 신선한 콘셉트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신개념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이날도 소찬휘와 짝을 이룬 고음대장은 김경호의 전성기를 능가할 듯한 초고음의 샤우트창법으로, 지누션과 함께한 핫치킨걸은 빅마마가 연상되는 훌륭한 소울로 대한민국의 무한한 잠재력을 보였다.

인구 대비 인재가 많은 우리나라다. 재야에 숨은 ‘고수’는 넘치지만 ‘가수’보다 ‘연예인’을 선호하는 산업구조가 외면한 탓에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못 잡을 뿐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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