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창희의 건강한 삶을 위해] 이번 호를 끝으로 스마트 폰에 빠진 아들 녀석을 위해 강아지를 집에 들인 얘기를 마치려한다. 나이 오십이 넘어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진 필자는 휴대 전화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사소한 업무처리부터 모르는 영어 단어 확인, 자료 검색, 음악 듣기 등 긍정적인 측면이 크다. 게다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일과 항상 닿아 있다는 느낌도 그리 나쁘지 않다.

인터넷과 연결된 스마트폰은 개인과 세상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하나의 집약체라 할 수 있는데 필자가 전철에서 젊은 학생의 편을 들어, 어떤 노인과 다툰 이유도 거기에 있다. 노인은 앞의 학생들을 심하게 나무라는 중인데 불만을 들어보니 젊은 놈들이 하릴없이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는 게 눈에 거슬렸음이다. 학생들은 왜 자신들이 대중 앞에서 망신을 당해야 하는지 억울한 표정이다. 욕설에 가까운 비난이 노인의 입에서 이어지자 당하는 자들 역시 욕의 진원지를 노려보기 시작했는데 이때 필자가 개입했다. 학생들의 편임을 직감한 노인은 이내 내게도 반말을 지껄이기 시작한다.

필자는 다음과 같이 학생들을 옹호한 이유를 설명했다. 당신도 집에 가면 신문과 T.V를 보고, 영화나 독서를 즐기며 지인들과 연락을 할것 아니냐? 전화에는 그 모든 것이 담겨있고, 젊은 친구들은 단지 전철에 앉아 그것을 할 뿐인데 그것이 대중 앞에서 비난 받을 이유가 되냐는거다. 나름 논리를 갖춘 구원군의 등장에 학생들은 얼굴이 펴지고 노인의 성난 얼굴은 더욱 굳어진다. 그러나 명쾌하게 결론을 내리고 격론의 상대와 포옹하는 논쟁은 드문 법이다. 노인의 반격을 예상한 필자는 전철 문이 열리자 도망치듯 내렸고 예기치 못한 적군의 등, 퇴장에 할아버지 역시 저 놈은 뭐여 하는 표정이다.

한심한 것은 한때 남의 아들들 편 든 자가 지금은 아들의 휴대폰을 맹비난하는 처지가 되었다는거다. 잘못된 용도를 탓하는 것인데 노동자 반달치 월급에 육박하는 기기로 게임이나 SNS에 몰두하며 인생을 낭비하는 것은 정말 딱한 일이다. 책을 통해 바른 지식과 교양,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스폰지처럼 빨아들일 시기가 휴대폰에 함몰되어 바람같이 지나갈 뿐이다. 집에 틀어박혀 게임에 몰두하니 신발 밑창조차 닳을 일이 없어 리복 등 운동화 업체의 경쟁상대가 소니라는 우스개도 있다.

아들 녀석 폰 중독을 어찌해보고자 고육지책으로 들인 강아지는 동물병원에서 귓털을 강제로 뽑힌 후, 사료를 거부하며 시름시름 앓아 누웠다. 2개월에 불과한 작은 몰티즈는 설탕물로 혈당을 유지하며 실낱 같은 생명을 이어간다. 점점 위중해져 누운 채 대, 소변을 지리니 아내는 강아지를 씻기고 품에 안아 울고 다니며 보살핀다. 운동생리학 전공의 필자는 예감이 좋질 않았다. 꿀벌도 아닌 늑대의 후손에게 설탕물을 주라는 애견 센터의 지시 역시 미봉책으로 보였다. 경험도 일천한 놈이 욕심으로 인해 작은 생명을 괴롭히나 하는 자책도 들었다. 야윈 채로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를 보며 우리 네 가족은 수시로 운다. 주야로 병원을 데려가고, 애견 전문가가 방문을 해도 작은 생명은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살려 보려는 마음에 강아지를 애견 센터로 돌려 보내고, 텅 빈 우리를 보며 우리 네 식구는 소리죽여 운다.

그로부터 며칠 후 필자는 휴대폰을 보며 찻 길을 건너는 아들을 목격하게 되는데, 최근의 사태로 약이 바짝 오른 필자의 눈에서 걷잡을 수 없이 불이 튄다. 마침 옆에 있던 벽돌로 사정없이 휴대폰을 내리쳤고 아들과 아내는 묵묵히 이 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필자의 손바닥에서 흐르는 피가 박살난 휴대폰 위로 떨어진다. 그 다음 날 필자는 강아지가 죽었다는 한 통의 문자를 받는다. 작고 예쁜 강아지 깡지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우리 네 식구의 가슴, 그리고 나와 아내의 휴대폰에 몇 장의 사진을 남긴 채, (어쨌거나)아들의 휴대폰을 해결한 채, 그렇게 짧은 생을 마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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