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신과함께-죄와 벌>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주호민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김용화 감독)은 일단 한국형 판타지 무협 블록버스터의 새 장을 열었다는 점에선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아 마땅하다. 허구가 가득한 무협 장르에 판타지를 더한 ‘촉산’ 등으로 일찍이 판타지 무협 블록버스터를 개척한, 과장을 좋아하는 중국이 부러웠던 관객이라면 한국적 스타일에 어느 정도 만족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등의 거대한 세계관과 촘촘한 내러티브를 꼼꼼히 따지는 관객이라면 고개가 갸우뚱해질 수 있다.

저승법에 의하면 모든 망자는 49일 동안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 등을 심판하는 지옥에서 7번의 재판을 받고 모두 무사히 통과할 경우 환생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 1000년 전 망자가 된 강림(하정우) 해원맥(주지훈) 덕춘(김향기)은 한 팀이 돼 망자들을 저승으로 끌고 와 이 재판을 진행하는 동안 보호하고 변론까지 맡는 차사로 일하고 있다.

저승의 지배자 염라대왕은 이들이 1000년 동안 49명의 망자를 환생케 할 경우 환생시켜주기로 약속했다. 지금까지 47명을 환생시킨 세 차사는 드디어 48번째 유력한 후보자를 만나게 된다. 바로 김자홍(차태현). 소방대원인 자홍은 농아인 홀어머니와 제대를 코앞에 둔 동생 수홍(김동욱)을 위해 지금까지 뼈 빠지도록 일해 왔다. 근무 시간 외에는 물론 휴일에도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어 어머니와 대법관을 꿈꾸는 동생의 뒷바라지를 한 것.

▲ 영화 <신과함께-죄와 벌> 스틸 이미지

그는 화재현장에서도 남다른 대원이었다. 인명구조를 위해 자신의 안위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희생정신을 발휘했으며 사람 외의 다른 생물 하나까지 구조하려 애써온 것. 여전히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하던 자홍은 소녀를 구한 뒤 장렬하게 희생됐다. 그 앞에 나타난 해원맥과 덕춘은 그가 환생이 유력한 ‘귀인’이라며 무척 반긴다. 둘의 인도에 따라 저승에 온 그는 7개의 관문을 통과하는 동안 처음엔 ‘합격’이 유력시됐으나 재판을 거듭할수록 마냥 착하고 성실한 줄로만 알았던 그의 비밀이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한편 관문을 따라 이동하는 그들의 앞에 지옥귀가 나타난다. 그건 이승에 원귀가 생겼기 때문이고 그 원귀는 바로 망자의 가족이다. 과연 자홍의 엄마와 동생 중에 누가 죽은 것이고, 죽었다면 그 원인은? 그리고 자홍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

일단 눈이 즐거운 오락물로선 어느 정도 합격이다. 49재 등의 우리네 민속 신앙과 신화 등을 스크린에 풀어낸 솜씨는 높이 살 만하다. 7개의 지옥과 그곳을 각각 관장하는 대왕들에 대한 설정은 무협지에서 많이 본 듯하지만 상상력과 창의력이 뛰어나고, 비주얼과 유머감각이 돋보여 관객들에게 쏠쏠한 재미를 안기기에 충분하다. 특히 검사의 기능을 하는 판관 역을 맡은 오달수와 임원희는 재미의 중심이고, 김해숙 김하늘 등 수많은 카메오들의 향연을 즐기는 호사도 있는데 아역배우 김수안의 캐릭터가 백미다.

▲ 영화 <신과함께-죄와 벌> 스틸 이미지

세 차사와 자홍이 7개의 지옥을 통과하는 점층적 구조는 ‘반지의 제왕’을 연상케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한국적 정서와 더불어 롤러코스터와 스키장 리프트 같은 놀이공원의 유흥 요소를 가미해 차별화를 꾀했고, 액션 역시 손에 땀을 쥘 정도로 박진감이 넘친다. 강림과 원귀의 매우 스피디한 추적 시퀀스 역시 롤러코스터 효과를 극대화해 속도감의 오르가슴을 느끼게 만든다.

문제는 자홍 가족의 플롯.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 세 식구의 얘기는 신파와 사회적 메시지의 양면성을 지닌다. 만약 독립영화의 규모 아래 다큐멘터리적인 서사로 풀었다면 철학이 됐겠지만 200억 원짜리 블록버스터로 부풀리기엔 갓 쓰고 웨스턴 부츠 신은 격. 각 캐릭터의 재기 발랄함과 판타지의 신기함을 즐기려 할 즈음 플롯은 매우 진지하고 심각하며 뭔가 반전이 있는 듯한 쪽으로 흐르지만 결국 결론은 신파.

▲ 영화 <신과함께-죄와 벌> 스틸 이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홍의 ‘비밀’은 사회에 울리는 경종이 매우 묵직하다. 세계적인 경제대국을 자랑하고 다른 나라의 빈민과 난민에 대한 자원봉사가 활발한 우리나라지만 정작 내부적인 가난과 소외에 대해 소홀한 건 아닌지 숙고를 일깨운다. 더불어 이젠 지겨울 법한 재판 드라마의 틀을 깬 새로운 재밋거리도 갖췄다. 뭣보다 ‘진실’과 ‘거짓’에 대한 참다운 가치 평가의 기준을 제시하는 메시지는 알차다. 그리고 사회적 이슈 중의 하나인 소방관이란 히어로에 대한 사회적인 가치의 재평가에 대한 호소는 원작과 다른 묵직한 울림이다.

김향기의 성장이 눈부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잘못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라는 뜨거운 세 마디의 말이 뭐 그렇게 하기 어렵냐는 메시지로 매조진다. 139분. 12살 이상. 12월 20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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