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강철비>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지난 14일 개봉된 영화 ‘강철비’(양우석 감독)의 흥행이 심상치 않다. 1137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한 양 감독의 데뷔작 ‘변호인’보다 월등한 첫 주 흥행 기록이 근거다. 그러나 양지와 음지처럼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특히 ‘김정은 일병 구하기’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지만 전체적으로 북한정권을 옹호하거나 그들의 이데올로기에 발맞출 생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영화다’란 제목의 함축적 의미처럼 영화는 영화 그 자체로 즐기면 그뿐이고, 각자의 시선대로 해석하면서 마무리하면 될 뿐이다.

북측에서 ‘권력 1호’를 암살하려는 쿠데타가 일어나고 때마침 현장에 있던 최정예 요원 엄철우(정우성)가 중상을 입은 ‘1호’를 데리고 남측으로 피신한다. 청와대 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가 엄과 만나 돕겠다고 나선다. 이에 북측의 군부는 한국과 미국에 선전포고를 선언하고, 한국의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한다. 한반도에는 당장이라도 핵전쟁이 발발할 전운이 감돈다.

‘1호’는 얼굴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름도 없다. 얼떨결에 엄을 도와 ‘1호’를 모시는 두 여성 노동자들은 그를 ‘장군님’으로 호칭할 따름이다. ‘장군’은 북측의 초대 권력자 김일성에 대한 호칭이었다. 하지만 병상에 누워 얼굴이 제대로 안 보이는 ‘1호’가 김정은이라는 주장은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췄다.

▲ 영화 <강철비> 스틸 이미지

영화의 내용상 시점이 올해 말~내년 초가 유력하다. 대통령선거가 막 끝나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된 김경영이 인수위와 함께 청와대를 출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1호’를 급하게 치료하는 산부인과의 숙정이 불룩 튀어나온 ‘1호’의 배를 쿡 찌르는 장면을 보면 ‘1호’가 상당한 비만인 것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3대 권력자들이 모두 비대했지만 김정은은 유독 살이 쪘다.

감독이 대놓고 ‘1호’를 김정은이라고 적용하진 않았지만 이것 역시 관객들에게 각자의 추측과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재미를 주기 위한 장치임은 짐작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과연 이 영화가 김정은 혹은 그 추종세력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주장이 맞기는 한 걸까?

두 명의 철우는 대화 내내 “쿠데타는 군대가 일으킨다”라는 말을 한다. 첫째 북측에서 기존 권력자를 죽이고 새로 정권을 잡고자 하는 세력은 바로 군대라는 정확한 주체를 확인시켜주는 말이고, 둘째 남측 역시 그런 과거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승만은 군인은 아니었지만 미군의 도움으로 정권을 잡았고, 군인이었던 박정희와 전두환은 군대를 이끌고 정권을 무너뜨려 집권한 뒤 군대 혹은 군인출신 하수인을 이용해 장기집권하려 했다.

▲ 영화 <강철비> 스틸 이미지

남측이 목숨이 경각에 달한 ‘1호’를 어떻게든 살려내려는 의도는 무슨 이유에서든 군대의 쿠데타는 용납돼선 안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실천하기 위함이자 그 어떤 국가와 국민이든 정의와 안위를 지켜줘야 한다는 인도주의에 근거한다. 영화의 결론을 보면 확실히 그 의도를 알 수 있다. 군대는 권력자가 아닌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안보를 위해 존재한다는 매우 지당한 민주주의의 논리를 펼친다.

조금이라도 공산주의를 찬양하거나 북측의 군대나 정권에 우호적인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잘생긴 정우성을 북측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은 주목할 만하다. 겉으론 멀쩡해 보이는 엄은 마약중독자다. 췌장암 말기의 고통을 참아내기 위해서다. 한때 그는 특수부대의 최정예 요원으로서 정권을 위해 눈부신 활약을 했다. 결혼해 어여쁜 딸도 있다. 그런데 북측은 그의 병을 치료해줄 줄 모른다.

북측 정권이 국민의 안위 따윈 상관없이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호의호식한다는 은유다. 더 나아가 엄을 북측의 상징으로 본다면 겉은 독재체제로 잘 굴러가는 듯하지만 사실 속은 곪을 대로 곪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곽은 남측이다. 잘나가는 성형외과의 아내와 이혼했고, 딸과 아들은 엄마와 산다. 오랜만에 만난 남매에게 그가 먹이는 식사는 햄버거. 아들은 조심스레 “엄마랑 합치면 안 돼?”라고 묻고 곽은 모른 체한다. 절묘하지 않은가? 미국과 공모해 나라를 두 동강낸 이승만과 남측이란 비유. 앞에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가르치면서도 국민에게 미국 구호물자나 내던져주면서 제 실익만 챙긴 박정희. ‘통일은 대박’이라더니 국정농단으로 혹세무민한 박근혜. 그리고 그 프로파간다와 스케이프 고트에 속아 아직도 최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태극기+성조기 부대’.

▲ 영화 <강철비> 스틸 이미지

저의가 어쨌거나 ‘우리의 소원이 통일’인 건 맞고, 그래서 ‘통일은 우리 역사 최고의 대박’임이 분명하다. 이 영화는 그걸 분명히 하고 있다. 왜? 김 씨 일가 3명에게 충성을 외쳐온 북측 주민들 역시 우리 ‘어르신’들과 별로 다를 바 없이 프로파간다와 스케이프 고트에 속았기 때문이다. 박근혜도 김정은도 ‘대통령님’이나 ‘위대한 령도자’가 아니라 동등한 인권의 한 국민일 따름이다. 단지 국민의 심부름꾼 중 최고 책임자 자리에 앉은 것뿐이다.

북측에 대한 옹호나 호감은커녕 오히려 북측이 보면 기분 나쁠 대사와 상황이 군데군데 드러난다. 산부인과에서 ‘1호’를 치료해 달라 생떼를 쓰는 엄에게 숙정은 ‘1호’의 배를 쿡쿡 찌르며 “여긴 산부인과다. 이 뱃속에 든 게 아이라면 치료가 가능하지만”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남측에게 유머라면 북측에겐 도발이다.

사실 서울 근교까지 땅굴을 팠다고 엄이 고백하자 깜짝 놀란 곽은 “너네 두더지 잡아먹고 살지? 통일되면 지하철 공사는 아예 너네가 도맡아 해야겠다”라고 비아냥거린다. 강철비는 ‘스틸 레인’, 즉 鐵雨다. 엄은 ‘鐵友’(쇠처럼 단단한 친구), 곽은 ‘哲宇’(밝은 집-부잣집)이다. 각각 ‘인간관계’와 ‘자본의 행복’을 추구하는 남북 국민의 이데올로기를 암시하는 절묘한 작명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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