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창희의 건강한 삶을 위해]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무병장수는 인간의 최대 욕망이 되었다. 젊을 적 우리는 몸이 불편하거나 특별히 아프지 않은 한 건강의 고마움을 망각한 채 살아간다. 돈을 벌기 위해 무리해서 건강을 해치고 잃은 건강을 되찾기 위해 다시 돈을 쓰는 허무한 구조다. 건강을 해치며 목표를 향해 나가는 것이 뭔 의미가 있겠나. 훌륭한 배우자를 만나고 멋진 집과 차를 소유한들 질병에 허덕인다면 오히려 가련한 사람이 된다. 배타적 이기주의가 난무하고 극도로 고단한 삶을 사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얼까. 단편적 예에 불과하겠지만 허무한 일화가 하나 있다.

명문대를 다니는 여대생들에게 물었다고 한다. 결혼 후 자신이 살게 될 신혼집, 즉 러브 하우스를 직접 설계해 보라고 말이다. 신이 난 여성들은 침실, 애들 방, 드레스 룸, 서재 등등을 모두 설계하고 심지어 애완견 방까지 그려 넣었다. 그러나 자신의 부모나 시부모의 방을 집안에 만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물론 보편적 사례는 아니지만, 자신의 건강을 자신이 챙겨야 할 이유는 분명해진다. 특히 노령 인구층 편입을 목전에 둔 베이비 붐 세대들은 더욱 그렇다. 자신들은 부모를 모시면서 정작 본인들은 자식들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첫 세대가 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어린이를 제외한 성인은 본인 스스로 건강을 챙겨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배우자가 챙겨 줄 것이란 믿음, 또는 챙겨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버리는 게 좋다. 내가 아닌 남에게 의존하면 그땐 이미 늦는다.

사람들은 대략 50살을 전, 후 하여 갱년기가 찾아오면 비로소 늙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이때부터 건강에 소홀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뉘우치고 건강을 염려하며 오래 살고 싶은 욕심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연령별로 볼 때 50대 사망률이 전체 연령대 중 가장 높다. 이 사실만 놓고 보더라도 중, 장년 시기를 잘 넘기느냐, 그렇지 못하냐에 따라 장수 여부가 판가름난다고 볼 수 있다. 몇 년 전 필자는 췌장암에 걸린 분을 몇 번 병원으로 찾아뵌 적이 있다. 예후가 좋지 않은 병임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의외로 담담하였다.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창 밖의 나비가 부럽다고 했다.

두 번째 병원을 방문했을 때는 공허한 눈빛으로 이제는 병실 천정에 붙어있는 파리조차 부럽다고 하였다. 아무리 미물이지만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생명에 대한 애착이 진하게 배어 나오는 어투로 말이다. 동시에 작은 병에서 무언가를 소중하게 꺼내어 조금씩 먹는다. 궁금히 여긴 필자가 물어본즉슨 복어의 독이었는데 지인을 통해 인터넷으로 구입했다 한다. 농담으로 내게도 주겠다고 하더니 이내 본인만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며 뚜껑을 닫는다. 병을 건네받아 유심히 살펴봤지만, 용법도 용량도 적혀있지 않았다.

물론 암세포를 파괴하는 약제라는 것이 결국은 독 성분이지만 청산가리보다 수백 배의 치사량을 가지고 있는 테트로도톡신이라는 복어의 독이 얼마나 효능을 발휘할지 필자는 의문이 들었다. 곧 돌아가실지도 모를 분에게 혼란을 부추겨 상업적 목적으로 맹독을 팔아먹은 자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환자 앞이라 내색조차 하지 못했다. 얼마 후 결국 그분은 세상을 떠났다. 유명 병원의 최신식 의료 서비스도, 살아 보고자 시도했던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도 그를 살리지 못했다.

그분을 죽음으로 이끌어간 상황을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리고 어떤 병이든 간에 병자에게 그 원인을 물어 따지거나 망자를 책망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할 일은 규칙적인 섭생과 합리적인 생활을 일관성 있게 유지함으로써 천수를 누릴 수 있도록 각자가 노력하는 것뿐이다. 그 외의 변수를 예측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로마의 웅변가 세네카는 일찍이 “인간은 자연사로 죽는 것이 아니라 자살하는 것”이라고 설파하지 않았던가. 올바른 섭생을 그르치면 무병장수를 장담할 수 없단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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