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병규 변호사의 법(法)이야기] 우리 법은 법률혼 주의를 택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법이 정한 요건과 절차를 갖춘 혼인관계만을 원칙적으로 보호한다는 취지입니다. 그러나 법이 정한 절차를 지키지 못했더라도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경우 이를 법률혼 관계에 준하여 보호할 필요도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군인연금의 지급입니다.

이런 경우에 대하여 우리 법은 아래와 같은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민법 제812조 (혼인의 성립)
① 혼인은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정한 바에 의하여 신고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
② 전항의 신고는 당사자쌍방과 성년자인 증인2인의 연서한 서면으로 하여야 한다.

군인연금법 제3조 (정의)
①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4. “유족”이란 군인 또는 군인이었던 사람의 사망 당시 그가 부양하고 있던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을 말한다. 다만, 제31조에 따른 사망보상금을 지급하는 경우에는 부양 여부를 가리지 아니하고 유족으로 본다.

가. 배우자(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던 사람을 포함하며, 퇴직 후 61세 이후에 혼인한 배우자는 제외한다. 다만, 군 복무 당시 혼인관계에 있던 사람은 그러하지 아니하다)

즉, 법률혼을 원칙으로 하되, 특히 참전, 파병 등의 이유로 법률상 요구하는 혼인신고를 하기 어려운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 군인의 경우, 그 연금지급과 관련하여 사실혼관계에 있는 배우자도 보호를 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부인 외에 사실혼 배우자를 둔 군인이 사망한 경우 유족연금은 원칙적으로 법률상 배우자인 부인에게만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2016구합7651)이 있어, 이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군인인 A는 1954년 부인 B와 결혼해 슬하에 3명의 자녀를 뒀습니다. 그러나 A는 1960년께 다른 여성인 C를 만나 새 살림을 차렸고 B와는 멀어졌습니다. 이후 B에게 여러차례 이혼해 달라고 했지만 B는 이혼만은 절대로 안 된다고 버텼습니다. 그러다 2014년 2월 A가 사망했습니다. A와 아이까지 낳고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C는 이듬해 4월 사실혼관계존부 확인소송을 냈습니다.

부산가정법원은 같은 해 11월 "A와 C가 중혼적 사실혼이지만, A와 B는 사실상 이혼상태에 있었다고 보인다"며 "A와 C의 사실혼관계에 대해 법률혼에 준하는 보호를 할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A와 C의 사실혼관계를 인정했습니다.

C는 이를 근거로 지난해 3월 국방부에 A 사망에 따른 유족연금을 지급해달라고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국방부는 "사실혼 배우자 외에 법률상 배우자인 B가 따로 있기 때문에 법률상 배우자가 유족으로서 연금수급권을 가진다"며 연금지급을 거부했습니다. 이에 C는 "A와 B는 사실상 이혼상태에 있었다"며 수급권자는 자신이라면서 소송을 냈습니다.

서울행정법원은 C가 국방부장관을 상대로 낸 유족연금 지급불가결정 취소소송(2016구합7651)에서 원고패소 판결했습니다.

법원은 "법률혼주의와 중혼금지 원칙을 대전제로 하고 있는 우리 가족법 체계를 고려할 때, 군인연금법상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던 자'를 유족연금을 받을 수 있는 배우자에 포함하고 있는 취지는 혼인 실체는 갖추고 있으면서도 단지 혼인신고가 없다는 이유로 법률상 혼인으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 그 사실혼 배우자를 보호하려는 것이지, 법률혼 관계와 경합하고 있는 사실상의 동거관계를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만약 사실혼 배우자 외에 법률상 배우자가 따로 있는 경우라면 이혼의사의 합치가 있었는데도 형식상 절차 미비 등으로 법률혼이 남아 있는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배우자와의 관계를 군인연금법상 사실혼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A가 C와 함께 생활하면서 B와 여러 차례 만나 이혼 문제를 논의했으나 B가 명시적으로 거절의사를 표시해 이혼이 이뤄지지 못했고, A와 C 사이의 자녀들이 A와 B 사이의 자녀로 호적에 등록된 점 등을 볼 때 이혼의사의 합치가 있는데도 형식상 절차미비 등으로 법률혼이 남아있는 등의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따라서 A와 C의 관계는 법률혼 관계와 경합해 보호받을 수 없는 중혼적 사실혼 관계에 해당하므로 박씨는 군인연금법에서 정한 유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습니다.

재판부는 "부산가정법원은 사실상 이혼상태를 인정해 사실혼관계가 존재한다고 봤지만, B가 소송과정에서 어떠한 고지를 받지 못해 소송에 참가하지 못했고, 그 1심 판결에 대해 B가 상소한 상태인 점 등을 고려해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군인연금법의 취지는 법률상 배우자가 없거나, 있더라도 사실상 이혼상태인 경우에만 사실혼 배우자에게 군인연금수급권을 인정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즉 사실혼 배우자를 보호할 뿐이지, 중혼적 사실혼 배우자에게까지 보호 범위를 넓히지 않겠다는 기존 판례의 태도를 확인한 점에, 이번 판결의 취지가 있습니다.

특히 부산가정법원에서는 A와 B가 사실상 이혼관계에 있다고 보았지만, 서울행정법원에서는 위 부산가정법원 소송과정에서 B가 소송고지를 받지 못한 점, 서울행정법원에 와서야 B의 절차적 권리가 보장된 점 등을 고려하여, A와 B가 사실상 이혼관계에 있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린 점도 주목할 점에 해당합니다.

즉, 예전에 법원을 통해 관련 소송에서 잘못된 판단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추후 소송에서 제대로 된 판단을 다시 받아볼 수 있다는 것도, 이번 판결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점입니다.

▲ 박병규 이로(박병규&Partners) 대표변호사

[박병규 변호사]
서울대학교 졸업
제47회 사법시험 합격, 제37기 사법연수원 수료
굿옥션 고문변호사
현대해상화재보험 고문변호사
대한자산관리실무학회 부회장
대한행정사협회 고문변호사
서울법률학원 대표
현) 법무법인 이로(박병규&Partners) 대표변호사, 변리사, 세무사

저서 : 채권실무총론(상,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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