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이 여자는 싸우기만 하면 무슨 옛날 얘기부터 죄다 늘어놓으니까, 아주 기가 질려버려요.” “이 사람은 제 입에서 잘못했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잠을 못 자게 해요. 고문이 따로 없는 거죠” “이 남자는 저랑 싸우다가도 자기 부모에게 전화해서 누가 맞는지를 꼭 물어봐요. 그러니 제가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어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부부로 살면서 의견이 맞지 않아 싸우게 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려고 말을 꺼냈을 때마다 번번이 격한 감정 싸움으로 끝이 난다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뿐더러 부부 관계 자체에 심각한 위기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렇다고 속으로는 부글부글 화가 쌓여 있지만, 싸움을 피하려고 아예 말문을 닫고 사는 것은, 언제 터질 줄 모르는 시한 폭탄을 안고 있는 것처럼, 더 심각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라고 다 아름답고 권장할 만한 것이 아니듯, 거꾸로 싸움도 다 해롭고 어떻게든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부부 싸움은 격렬한 형태의 의사소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싸움의 모습이 아니라면 더 좋겠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고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면 아주 해로운 것만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잘 싸워야 하는데, 싸우는 방법이 잘못되어 부부 관계가 악화되는 경우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혹시 “아니 싸우는 데 무슨 잘 싸우고 말고 방법이 있단 말인가?” 생각되시나요? 그렇습니다. 싸움에는 ‘좋은 싸움’과 ‘나쁜 싸움’이 있습니다. 싸우고 나서 감정이 풀려 서로 더 가까워질 수 있다면 좋은 싸움이고, 싸우기 전보다 화가 더 나고 분이 쌓인다면 나쁜 싸움입니다.

조금 더 설명을 하겠습니다. ‘좋은 싸움’이란 이런 것입니다. 당신의 친한 친구를 한 명 떠올려보십시오. 오해 때문이든 의견 차이 때문이든 그 친구와도 적어도 한 번쯤은 심하게 다툰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싸우고 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른 친구들은 싸운 후 또는 싸우지 않고도 사이가 멀어졌지만, 그 친구는 ‘싸움’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싸움이란 과정을 거쳐서) 더 가까워진 경우일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싸우고도 가까워질 수 있었나요? 싸움을 통해서 서로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었거나, 서로 잘못한 것에 대해 솔직하게 사과를 해서 그 동안 섭섭했던 마음이 해소된 덕분일 것입니다.

부부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싸우고 난 뒤 후련한 마음과 서로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면 그건 좋은 싸움을 치렀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이제 ‘나쁜 싸움’이 어떤 것일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로의 의견이 전달되기 보다는 무시되고, 묵은 감정이 해소되기 보다는 혐오감과 절망감까지 더해지는 경우들입니다. 부부 싸움도 서로 잘 살아보려고 하다 보니까 생기는 일인데, 싸우고 나서 상황이 더 악화되고 후회와 미움만 남게 되는 경우들 말입니다.

상담실을 찾는 부부들 중에는 (돌이켜보면 전혀 싸울 만한 일이 아니었는데) 사소한 꼬투리가 곧바로 걷잡을 수 없는 충돌로 치닫게 되는 경우가 너무 많아져서, 결국 부부 관계 자체에 회의를 가지게 되었다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 분들이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이유들 중의 하나는 상대에 대한 불쾌한 기억과 체념이 두텁게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즉 싸움 거리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기분이나 상대의 표정 또는 말투 같은 (어느 한 가지가 아니라) 그 상황에 포함되는 모든 것들이 ‘나쁜 싸움’을 만들어 냅니다. 따라서 나쁜 싸움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애를 쓰지 않으면, 마치 귀신이 장난을 치거나 덫에라도 빠진 듯이, 번번이 나쁜 싸움이 반복되고 부부 관계는 악화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쯤 되면 “아니, ‘나쁜 싸움’을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나도 ‘좋은 싸움’을 하고 싶은데, 상대가 호응을 해주지 않는 걸, 어떡하라고?” 라고 따지고 싶어질 것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혼자서 부부 관계를 좋게 이끌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당신도 모르는 새에 ‘나쁜 싸움’의 불씨를 지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싸움이 되기 전에, 즉 말문을 열기 전에 (싸움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당신은 또 다시 “도대체 부부 싸움이란 걸 계획하고 준비한다는 게 말이 되나? 그렇게 작정하고 싸우는 게 어디 있어? 어쩌다 보니 싸움이 되는 거라니까.”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맞습니다. 사실 그렇게 싸우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흔한 싸움의 형식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싸우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번번이 불쾌한 감정으로 끝나고 맙니다. 이런 나쁜 싸움을 충분히 경험했다면 그래서 극단적인 생각까지 한 적이 있다면, 이제는 제 제안을 따르실 것을 권합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당신은 가전 제품의 구입과 한 끼 외식을 위해서 인터넷을 뒤져가며 애쓰시지 않는가요? 또 여행을 떠나기 전에 어디가 좋은지, 교통편은 어떤지, 숙박은 어디서 할지 꼼꼼하게 조사하고 계획을 세우지 않는가요? 그런데 부부 싸움이야말로 제품 구입이나 외식 또는 여행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사안이 아닌가요?

싸우고 난 뒤 ‘더 이상 같이 사네 못 사네’ 할 수도 있는 것인데, 그런데도 부부싸움을 계획하고 준비하라는 것이 이상한가요?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말입니다. 또 당신은 “당장 싸우게 되었는데, 언제 준비를 하느냐고?”라고 되물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전혀 뜻밖에 감정적인 자극을 받아서 싸움에 빠져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야 할 수 없습니다. 그저 별 탈 없이 잘 끝나기를 빌어야겠지요. 하지만 특히 격렬하고 그 후유증도 오래가는 부부 싸움은 대부분 참을 수 있는 만큼 참다가 무심코 꺼낸 말이 불씨가 되어 큰 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즉 참고 있었다는 것은 그 동안 싸움을 준비할 수도 있었다는 말이고, 무심코 꺼낸 말이 싸움이 되었다는 것은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큰 싸움이 되는 것을 피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꿔서 말하면, 우리는 부부 싸움에 대해서 (우리가 평소 생각하던 것보다) 상당히 큰 재량권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점을 깨닫는 것이 ‘좋은 싸움’을 할 수 있는 첫걸음입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