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이슈&피플] 고 장자연의 ‘한’은 풀릴 것인가? 법무부는 검찰의 인권침해 및 검찰권 남용에 대한 진상 규명을 위해 지난 12일 과거사위원회를 발족했다. 대검찰청 역시 개혁위원회를 운영 중이다. 개혁위는 이미 재수사를 위해 검토 중인 25개의 사건 외에 ‘장자연 사건’ 등을 추가로 과거사위에 제안했다. 과거사위는 이를 검토 중이다.

▲ 사진=kbs 방송화면 캡처

‘장자연 사건’은 2009년 3월 7일 신인 배우이던 고인이 자살한 뒤 연예계에 소문으로 나돌던 유력인사에 대한 성상납의 진위 여부가 수면 위로 부상한 ‘대형사건’이다. 고인이 남긴 유서엔 소속사 대표로부터 성상납을 강요받았고, 폭행을 당했으며, ‘유력 인사’들의 술접대 자리에 억지로 동석했다는 내용과 함께 ‘유력 인사’의 리스트가 있었다.

경찰은 당시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 속 인물들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지만 ‘혐의 없음’으로 결론지었다. 결국 이 사건은 ‘연예계 성상납’이라는 본질에서 벗어난 채 소속사 대표 김모 씨와 매니저 유모 씨 간의 ‘협박’ ‘폭행’ ‘명예훼손’ 혐의 및 김 씨의 회사를 떠나 유 씨가 차린 회사로 이적한 두 여배우 등이 연루된 ‘돈 싸움’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졌다.

‘장자연 리스트’를 공개해야한다는 일각의 주장 역시 일축됐다. 하지만 이번 '제안'과 '검토'만 보더라도 당시 결론을 향한 적지 않은 사람들의 의혹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 고인이 남긴 수십 통의 유서엔 ‘유력 인사’ 31명에게 100여 번의 술접대를 했고, 그 자리에서 성상납을 강요받았다는 호소가 적혔는데 행간에서 성상납을 했을 가능성의 뉘앙스가 풍겼다. 또 “내가 죽어서라도 저승에서 꼭 복수하겠다”라는 분노와 원한이 담겼다.

물론 연예인이나 매니저가 소속사와의 계약 내용을 어겼다면, 이해를 다투는 양자 간에 상대방의 인권과 인격과 명예 등을 훼손하는 불법행위가 있었다면 당연히 법으로 시시비비를 가려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런 국지적이고 지엽적인 다툼이 한 젊은 여성을 자살로 몰아갔을 의심이 짙은 본질적 혐의를 누르는 건 본말이 전도된 결과다.

‘장자연 사건’의 본질과 그게 남긴 숙제는 연예계의 비리다. 이 사건이 있기 전부터 ‘찌라시’ 등을 통해 나돌던 성상납 문제다. 그녀의 유서대로라면 신인 여배우는 방송사 외주제작사 언론사 광고주 재벌 검찰 경찰 등의 ‘힘있는 자리’가 바뀔 때마다 해당 ‘인사’에게 술을 따라주고 잠자리를 같이해야 그들을 ‘스폰서’로 만들 수 있고, 그들로부터 직접적인 경제적 지원은 물론 인기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는 후원을 받을 수 있다.

▲ 사진=kbs 방송화면 캡처

물론 스타는 대중이 만든다.  만약 연예계에 성상납이 있다면 극히 일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장자연 사건'은 성상납에 대한 일말의 의구심을 남겼다. 사회 곳곳에 만연한 나약한 '을'에 대한 막강한 권력을 지닌 '갑'의 성범죄만 보더라도 '김영란법'만큼 '장자연법'이 절실한 때다.

법무부와 검찰이 지금이라도 정화의 매스를 잡고 제대로 한번 휘둘러보겠다며 소매를 걷어붙인 것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문제는 ‘증거’다. 가장 확실한 ‘증거’인 피해자가 세상을 떠났다. 사건이 발생한 지 8년이 지남에 따라 ‘용의자’들이 증거를 인멸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수사당국이 가장 먼저 수사해야할 대상은 바로 고인이 거론한 술자리에 있었던 고위 검찰과 경찰일 것이다. 

그들부터 풀어간다면 김 씨를 압박할 수 있을 것이고,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에 오른 ‘유력 인사’들을 ‘무장해제’시킬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만약 그들의 혐의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수사를 연예계 전반에 걸쳐 확대할 일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통해 지난 두 정권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일을 펼쳐놨는지 드러난 상황이라 검찰과 경찰이 할 일이 태산인 것은 맞다.

그럼에도 재벌의 비리를 들쑤시는 것만큼 연예계의 비리를 파헤치는 것도 중요한 이유는 경제가 국민의 주머니와 직결된다면 연예 콘텐츠는 서민의 정서를 아우른다는 데 있다.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바쁘게 살아가는 다수의 국민이 손쉽게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게 바로 TV고 대중가요다. 1년에 서너 번 극장에 가는 ‘호사’로 자신들이 문화적으로 호강한다고 자위할 수 있는 게 서민이다.

▲ 사진=mbc 방송화면 캡처

그런데 그런 정서적 위안거리 중에, 혹은 좋아하는 스타 중에 일부라도 추악한 스캔들과 불법과 탈법 등으로 구축된다는 게 사실이라면 국민들이 받을 정신적 충격은 엄청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라는 인상 깊은 정의사회 구현의 틀을 밝혔다. 바꿔 말하자면 지난 두 정권에서 불평등 불공정 부정부패가 판을 쳤다는 의미다.

뭐든지 하루아침에 고쳐지진 않는다. 문제는 첫 삽이고 첫 단추다. 배우로서의 꿈을 막 펼쳐가던 29살의 여자가 자살했다. 폭언 폭행 성상납 등 비인간적인 인격유린을 견디다 못해 그런 선택을 했다는 내용의, 그래서 죽음으로써 혹은 귀신이 돼 복수하겠다는 한을 품은 유서를 남긴 채. 부모의 제삿날이지만 제사상을 차릴 시간에 억지로 술자리에 나가 술을 따라야했다는 사실에 더 이상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던 듯하다.

이런 엄청난 사건이 ‘혐의 없음’으로 끝났다. 영화 드라마 소설 다큐멘터리 등에는 숱한 귀신이 등장한다. 고인 정도의 한이면 귀신으로 나타나 복수의 대상을 공격했을 텐데 그런 얘기는 들리지 않으니 귀신은 인간의 공포심이 낳은 상상에 불과한 모양이다. 아니면 누군가 귀신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경험을 밝힐 경우 가해혐의가 사실임이 드러날 테니 숨기는 것이든가. 과거사위의 정체성은 '검찰의 인권침해 및 검찰권 남용에 대한 진상 규명'에 있다. '장자연 사건'을 검토 중인 건 여기에 검찰권 남용이 개입됐다는 의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철저한 진상 규명만이 '정의로운 결과'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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