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아티스트컴퍼니 제공.

[미디어파인=유진모의 이슈&피플] 2009년 포미닛의 멤버로 데뷔해 지난해 팀 해체 후 정우성 이정재의 아티스트컴퍼니와 전속계약을 맺고 배우로서의 새 출발을 알린 남지현이 손지현으로 개명했다. 지아와 민이 전속계약 만료로 JYP엔터테인먼트를 떠남에 따라 미쓰에이는 자연스러운 해체를 맞았다.

수지는 CF 모델과 배우로서 정상을 내달린 지 꽤 됐다. 영화 ‘건축학개론’ 출연을 계기로 미쓰에이와는 별도로 배우로서의 값어치가 급상승한 것. 원더걸스 해체 때 소희는 “앞으로 배우로 활동하겠다”며 JYP를 떠나 배용준의 키이스트로 이적한 뒤 안소희라는 본명을 찾았다.

SM엔터테인먼트의 아이돌그룹 멤버 중 현재 배우로서 가장 뜨거운 인물은 도경수다. 엑소로 활동할 때 이름은 디오(DO)였지만 배우로서는 본명을 쓴다. YG엔터테인먼트의 가수 중 배우로서 가장 활발한 인물은 최승현인데 빅뱅 멤버로서는 T.O.P란 예명을 쓴다.

왜 아이돌그룹 멤버의 종착역은 배우일까? 왜 가수일 땐 멋을 부려 가명을 쓰다가 배우가 되면 본명을 되찾을까? 왜 굳이 가명이란 단어 대신 ‘연예인의 가명’이란 뜻의 예명이란 단어를 만들어냈을까?

1980년대엔 조용필 이은하 김범룡 이상은처럼 새로운 스타가 영화에 깜짝 출연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스타의 티켓파워를 노린 영화사의 철저한 상업적 목적이 우선했기 때문에 음악적 소신을 지닌 가수들의 예술성과 거리가 멀어 단발에 그치곤 했다. 단 전영록과 김수철은 예외였다.

전영록은 남진처럼 가수와 영화배우 활동을 동시에 펼쳐 성공한 당시로선 드문 케이스. 김수철은 ‘고래사냥’에 출연한 걸 계기로 영화음악에 푹 빠졌다. 유달리 국악과 영화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영화 ‘중광의 허튼소리’의 음악에 개런티보다 훨씬 많은 자비를 쏟아부어 화제가 된 바 있는데 지금도 영화음악인으로서 영화음악과 국악에 모든 정열을 바치고 있다.

1990년대엔 가수가 노래하는 무대 외에 서는 건 금기에 가까웠다. 음반 판매에 부정적이란 이유가 컸고, 조용필이 남긴 TV에 대한 저항정신을 이승환 신승훈 등이 이어간 영향도 적지 않았다. 신비주의는 서태지 이전에 이미 존재했다. 하지만 1998년 젝스키스가 영화 ‘세븐틴’에 출연한 걸 계기로 인식이 달라졌다. 21세기 들어 아이돌그룹의 전성시대가 되면서 연예 기획사들이 아이돌그룹의 유통기한이 그리 길지 못한 데 대한 고민을 ‘원 소스-멀티 유즈’ 개념으로 해결한 것이다.

아이돌그룹의 발단은 ‘원가절감’과 ‘가성비’에 근거한다. 1990년대 초반 댄스그룹의 유행이 시작되자 기획사들은 백댄서의 인해전술로 라이벌 팀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워낙 무대가 잦다 보니 수많은 백댄서들의 일당은 물론 식비 의상비 등의 운용비가 만만치 않아 고민을 안게 됐다. 그 해답이 아이돌그룹이다.

▲ 손지현 SNS.

처음부터 아예 다수의 인원을 정규 멤버로 뽑아놓으면 백댄서를 따로 고용할 필요가 없고, 멤버들에게 일일이 일당을 주는 지출도 없을뿐더러, 멤버 숫자에 비례해 팬도 늚으로써 가성비가 상승한 것. 여기에 각 멤버들을 따로따로 활용하면 부가수익이 창출되는데 배우 및 예능인은 더할 나위 없는 확대재생산의 ‘투 잡’ ‘쓰리 잡’이었던 것이다.

패러다임의 변화도 한몫했다. 아이돌그룹의 유행 전에는 싱어송라이터가 많았다. 조용필과 전영록이 대표적이다. 그래서인지 가수는 다른 연예인이 우러러보는 ‘연예인 중의 연예인’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면서 대기업들이 영화계에 대거 뛰어듦에 따라 영화계의 파이가 커지고 한류열풍까지 불면서 배우의 위상이 급상승했다. 예능 프로그램이 유행하면서 가수들이 대거 그곳으로 진출함에 따라 가수라는 직업의 신비감도 많이 사라졌다.

결정적인 원인은 아이돌 가수도 나이를 먹는다는 것. ‘삼촌팬’ ‘이모팬’이란 신조어가 알리듯 아이돌그룹은 풋풋하고 신선한 매력이 우선 조건이다. 오죽하면 가요계에 ‘걸그룹의 유통기한은 7년’이란 인식까지 생겼을까? 미쓰에이 씨스타 2NE1 레인보우 등이 증명한다. 신화만 ‘최장수 아이돌그룹’이란 마치 ‘명예의 전당 헌액’ 같은 감투를 쓰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아이돌그룹은 ‘아이들 그룹’에 다름없다는 증거다.

아이돌그룹 멤버 중 엄청난 슈퍼스타이거나 자신의 음악을 스스로 만들 줄 아는 싱어송라이터가 아니면 팀 해체 후 솔로 가수로서 살아남기 힘들다. 이에 비해 배우는 반영구적이다. 고 김영애는 오랜 암 투병에도 불구하고 눈을 감기 2달 전까지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 출연하며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자신의 체력과 열정만 유지한다면 배우는 늙어서도 현역에서 활동할 수 있지만 젊은 세대가 트렌드를 이끄는 대중가요의 메인 스트림에서 늙은 가수가 설 자리는 그리 많지 않다.

예명에서 본명으로의 회귀는 자아 찾기다. 연습생으로서 트레이닝을 할 때 오로지 목표는 데뷔다. 그러니 데뷔할 때는 소속사가 하라는 대로 거의 꼭두각시에 가깝기 마련이다. 예명은 개별적 아이디어가 반영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 해당 멤버의 의지와 관계없이 소속사가 지어준다.

물론 배우가 됐을 때 그 예명이 마음에 안 들어 본명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수의 본질적인 심리는 자신의 취향과 적성이 가수보다는 배우에 가깝다는 걸 깨닫거나 혹은 영화나 드라마라는 장르의 예술성이나 완성도 혹은 만듦새 등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의 예술성을 떠나 아이돌 가수 때완 달리 여러 배우 및 스태프, 그리고 감독 등 제작진과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와 의사를 교환하며 함께 완성도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느끼는 성취감의 강도가 다른 것이다.

그런 이유로 부모가 지어준 본명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자아정립의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아이돌그룹 땐 자기 한 명에게는 아니지만 최소한 자신의 팀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다. 하지만 배우로 나섰을 땐 주인공이 되기도 어렵지만 주인공일지라도 조명은 골고루 퍼진다. 박수갈채 역시 다각도로 분산된다.

그럼에도 아이돌이란 틀을 깨고 배우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유는 실존주의자 사르트르의 앙가주망(시선을 달리하는 주관으로서의 나의 구체적인 자아실현) 정신에 가깝다. 남지현이 어머니의 성으로 바꾼 이유는 부성주의에 대한 반발일 수도, ‘겐나오 아노덴’(Born again)을 믿고 예수를 섬긴 니고데모에 대한 오마주일 수도, ‘자기-개념’과 ‘자기-구조’ 찾기의 아이덴티티일 수도 있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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