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대결 없는 영악한 ‘1987’ [유진모 칼럼]

유진모 칼럼니스트l승인2017.12.31l수정2018.01.08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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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1987>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1987’의 장준환 감독은 ‘못됐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에도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는 관람 후기를 줄지어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장 감독은 왜 그들의 발목을 붙잡는가? 왜 그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고,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가?

사실 장 감독은 참으로 영악하다. ‘지구를 지켜라’에서 관객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못된 짓’을 하더니 이번엔 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아주 정교한 구성을 통해 ‘편향된 이데올로기의 찬양’이라고 또 다른 편향된 성향 측으로부터 일 수 있는 비판의 소지를 원천봉쇄하는 완벽함을 보였다.

그 첨병은 박 대공수사처장(김윤석)과 연희(김태리)다. 전두환의 장기집권 음모에 저항해 시위를 하던 22살의 연세대학교 학생 박종철을 부하들이 고문으로 죽이자 박 처장은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라고 기자들에게 발표한다. 그는 세상 사람들을 ‘빨갱이’와 애국자로 양분한다. 자신의 뜻에 맞으면 애국자고, 아니면 ‘빨갱이’다.

그래서 김대중 김영삼 이부영 김정남 등 민주인사들을 ‘빨갱이’로 몰아가는 음모를 꾸미는 등 전두환 군부독재정권에 대한 충성을 위해서라면 불법이건 인권유린이건 여론조작이건 개의치 않는다. 얼핏 보면 그는 뼛속까지 편견과 출세욕과 불의로 똘똘 뭉친 철저한 악인이다. 과연 그럴까?

▲ 영화 <1987> 스틸 이미지

평안도의 지주였던 그의 아버지는 마음이 따뜻해 한 고아를 양자로 입적해 키웠다. 그런데 자라 김일성 휘하의 군인이 된 의붓형이 집으로 쳐들어와 어린 동생 박 처장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를 죽이고 재산을 몰수했다. 한때 마르크스를 따랐던 사르트르가 전향한 이유는 1956년 소련이 부당하게 체코를 침략한 게 결정적이다. 공산주의자는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를 폭력으로 쫓아내고 그들만의 정권을 세울 때 비로소 완전한 해방이 이뤄진다고 본다.

그러나 가진 자라고 다 나쁜 사람은 아니다. 게다가 폭력을 통한 정권 수립이나 노략질 침략 등은 근대 이후 범죄다. 박 처장의 아버지는 아무런 죄가 없었다. 그럼에도 단지 못 가진 자보다 많이 가졌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박 처장이 ‘빨갱이’에게 이를 갈 이유는 충분하고도 넘친다. 북측의 독재정권은 주적일지 몰라도 무고한 국민들은 우리 동포이므로 반드시 ‘평화적’으로 통일돼야만 하는 타당성이다.

연희도 연세대 학생이지만 “그런다고(민주화 운동을 한다고) 세상이 바뀌어?”라고 선배 이한열(강동원) 및 재야인사를 몰래 돕는 삼촌 병용(유해진)에게 불평을 늘어놓는 아주 흔해‘빠진’ 국민의 하나다. 민주투사들이 민중가요 ‘그날이 오면’(이 영화의 영어 제목)을 부를 때 그녀는 사랑타령 ‘지난날’을 즐겨듣는다.

그런데 그녀가 입은 더플코트는 새빨간 색이다. 박 처장의 제복은 어두운 파란색(군청색)이다. 감독의 재치가 드러난다. 두 노래는 제목만 놓고 보면 미래지향형과 과거회귀형으로 대비되는 듯하지만 내용은 일맥상통한다. ‘드넓은 평화의 바다에 정의의 물결 넘치는 꿈’(‘그날이 오면’) ‘잊지 못할 그 추억 속에 난 우리들의 미래를 비춰보리’(‘지난날’).

▲ 영화 <1987> 스틸 이미지

대학생 티를 내려 가방은 외면한 채 원서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고, 잘생긴 한열에게 접근하려 그의 동아리에 들어가는 등 그녀는 당시의 전형적인 개인주의에 철저하고 정의 구현에 무기력한 국민이었다. 마치 감독은 “자, 봐라. 박종철 이한열 같은 자기희생형 민주투사가 이런 수수방관형 국민에게 자유와 정의를 안겨주기 위해 목숨을 희생했다. 당신도 연희 같은 국민 중 하나가 아니었나?”라고 무안을 주는 듯, 혹은 그런 마음의 짐에 위안을 주는 듯하다.

감독은 병용에게도 이중장치를 한다. 그는 교도관이다. 당시 하늘을 찌를 듯했던 군인 혹은 군 출신 전두환의 측근만큼은 아니더라도 공무원의 위세가 국민 위에 군림한 건 사실이다. 위에서 시키는 매뉴얼만 잘 지키면서 수감자들의 편의를 살짝살짝 봐줘가며 뒷돈을 챙기면 등 따뜻하고 배부를 텐데 굳이 수감된 이부영의 편지 심부름을 한다.

게다가 그 편지가 기발하다. 실제로는 휴지였지만 영화에선 TV가이드와 선데이서울에 썼다. 두 주간지는 당시 정부가 사실상의 대주주였던 서울신문사의 수익창출에 크게 기여한 효자상품이었다.

이 영화의 뛰어난 점은 이루 열거할 수 없지만 누구도 주연이 아니지만 누구나 주연이라는 점이 돋보인다. 사실 주인공은 1987년 그 해 자체이자 그 해를 함께한 모든 국민이다. 박 처장은 푸코, 연희는 사르트르, 최 검사(하정우)는 하이데거, 윤 기자(이희준)는 칸트로 각각 볼 수도 있다.

▲ 영화 <1987> 스틸 이미지

북측은 김일성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미명 하에 자신의 세습독재정권을 창립함으로써 인권을 유린했다. 부르주아를 폭력으로 몰아내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이루겠다더니 결국 ‘소수의 가진 자와 다수의 못 가진 자’의 반상 구조를 재탄생시켰다. 자신이 당했다고 똑같이 극단의 방법을 애국으로 정당화하는 박 처장은 정상과 비정상의 이분법적 구조를 낳았다며 근대화를 비판한 푸코의 메타포다.

소극적이다 못해 아예 아웃사이더를 자처했던 연희는 무차별 폭력에 본의 아니게 희생됨으로써 사르트르의 앙가주망(참여의 중요성)을 깨우치고 거리로 나서게 된다. 최 검사는 원래 민주화 운동에 별 관심이 없던 인물이다. 다만 검사로서의 자존심 하나 때문에 경찰에 지는 게 싫어서 반발한다. 하이데거는 각 시대마다 존재자의 존재방식이 달랐음을 웅변한다.

윤 기자는 “우리도 먹고살아야지”라는 대다수 기자들의 얄팍한 생존의 논리에 강하게 반발하고 언론 본연의 사명에 따라 진실규명에 앞장선다. 정부의 보도지침을 무시하고 그를 밀어주는 사회부장도 그와 동격이다. 경험론의 대상적 관찰과 합리론의 도그마를 비판한 칸트다. 얄팍한 이념의 프로파간다가 아닌, 자유의 담론과 정의의 철학을 담은 영화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유진모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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