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신과 함께’, 감동과 신파 사이 [유진모 칼럼]

유진모 칼럼니스트l승인2018.01.11l수정2018.01.2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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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1987>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1987’(장준환 감독)이 드디어 ‘신과 함께-죄와 벌’(김용화 감독)을 제치고 흥행 1위에 올랐다. ‘1987’이 1주 늦게 개봉됐으므로 자연스러운 바통터치 현상으로 볼 수 있지만 지난 주말 문재인 대통령이 관람한 뒤 “1000만 관객 이상 가능하다"라고 예상한 뒤의 역전이라 눈길이 가는 건 사실이다.

두 영화는 아주 다른 극점에 서있다. ‘신과 함께’는 판타지무협액션이고, ‘1987’은 진실을 좇는 드라마다. 그런데 두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관객들은 한결같이 ‘감동’이라고 입을 모은다. ‘신과 함께’는 어머니, ‘1987’은 행동이라는 키워드다.

갑오경장 이후의 연극을 가리키는 신극에서 파생해 관중의 취향에 영합한 흥행이 목적인 연극 드라마 영화 등을 신파극이라고 하고, 그런 저속한 흥미 위주의 작품을 신파조라고 부르게 됐다. 요즘은 그저 신파라는 말이 널리 통용되는데 뻔하거나 흔한 소재로 관객의 감동을 자아내려는 사조를 지칭한다.

▲ 영화 <신과함께-죄와 벌> 스틸 이미지

‘신과 함께’는 화재현장에서 한 소녀를 구하고 대신 희생당한 소방관 자홍이 지옥의 7개 관문을 통과하는 과정을 그린다. 여기에 그를 안내하고 변호하는 3명의 차사가 개입하고, 재판 과정에서 자홍의 안타까운 가족사가 드러남으로써 어머니에 대해 누구나 갖고 있을 법한 그리움과 자책감 등이 배경에 깔린다.

외양은 판타지액션이다. 한국적 신화를 현란한 CG 기술로 구현한 환상의 세계가 어떻게 펼쳐질지에 대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게 마케팅 포인트. 그런데 극장 문을 나서는 관객의 눈가가 촉촉하다. ‘반지의 제왕’을 보러 갔다 ‘집으로’를 보고 나온 느낌이다. 자홍과 군에서 사고사 한 동생, 그리고 그 둘을 끔찍이도 아끼는 어머니의 사연이 반전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모성애나 가족애는 드라마가 영원히 가져가야 할 클리셰고 끝내 벗어날 수 없는 족쇄다. 그래서 신파고 통속이다. 보기 전엔 ‘에이, 또야?’라고 빈정거리면서도 막상 보고 나면 눈가를 훔칠 수밖에 없는 게 가슴 아픈 가족사고, 그건 신파라는 멍에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다.

▲ 영화 <1987> 스틸 이미지

‘1987’이 뒷심을 발휘하는 이유는 그 최루의 탄착점이 신파나 통속과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요즘의 영악한 관객은 대통령이 몸소 극장을 찾았다는 이유로 부화뇌동하지 않는다. 가까운 사람의 말을 더 믿는다. 사상 첫 국정농단이란 사건을 통해 부패한 권력의 추악한 이면을 보고 깨달음을 얻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군사 쿠데타로 불법 집권한 박정희는 장기집권을 노리다가 측근인 김재규의 총에 세상을 떠났지만 전두환 정권이 또 쿠데타로 군사정권을 구축하고 간접선거제를 유지함으로써 장기집권을 꿈꿨다. 그러나 결국 1987년 6월 항쟁에 의해 호헌철폐라는 국민의 뜻에 굴복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얘기다.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사회에서 오래 살아온 우리 국민들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밥'이었기에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져온 군사정권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온 경제발전은 혹세무민하기에 더없이 좋은 프로파간다였고 북한정권은 최상의 스케이프 고트였다. 그래서 순수한 대학생이 민주화를 요구해도 ‘빨갱이’로 몰아가면 만사형통이었던 것.

▲ 영화 <1987> 스틸 이미지

그해엔 서울대학생 박종철이 ‘남영동’에서 경찰의 물고문 끝에 숨졌고, 연세대학생 이한열이 시위 도중 경찰이 직격으로 쏜 최루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그동안 물밑에서 전두환 정권의 독재를 끝내기 위해 암약하던 민주투사 및 대학생뿐만 아니라 수많은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침으로써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6·29선언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는 역사의 주인공인 박종철(여진구)도 이한열(강동원)도 최 검사(하정우)도 윤 기자(이희준)도 아닌, 전두환의 페르소나인 박 처장(김윤석)과 민주화투쟁엔 아무런 관심도 없던 연세대 87학번 연희(김태리)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만약 전술한 인물들로 시선처리를 했다면 신파나 통속에 가까웠을 것이고 더 나아가 프로파간다라는 폄훼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변호사’와 ‘택시운전사’의 송강호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웬 데모질이냐”라고 시위하는 대학생들을 보고 혀를 끌끌 찼던 것처럼 이 영화는 매우 영리한 눈높이를 지향한다. 연희가 세상물정을 몰라서 시위에 참여하지 않는 게 아니다. 이부영이 수감 중인 교도소의 교도관인 외삼촌 병용이 외모 탓에 검문검색에 걸릴 것을 우려해 이부영의 ‘밀서’를 김정남에게 대신 전달해달라고 하는 부탁을 매번 거절하지 못하고 응하는 게 대표적이다.

▲ 영화 <1987> 스틸 이미지

그녀의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져?”라는 대사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당시 국민 대다수가 품었던 안일한 생각이었고, 소극적인 다수가 민주투사들에게 입버릇처럼 '충고'했던 말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헤드폰으로 귀를 막고, 시선을 내리깔아 세상을 안 쳐다보는 건 그런 의미다. 자신도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는 게 옳다는 건 알지만 그런다고 변화하지 않으리라는 패배의식에 젖어 현실도피를 하는 것이다. 그녀의 빨간 더플코트는 복선이다.

이 영화에 감동하는 관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한 편은 그 시대를 산 기성세대다. 당시에 비겁했던 이는 미안하고, 몰랐다면 슬프며, 그래서 자책감에 괴롭다. 현장을 함께했던 사람들은 그 긴박했던 상황이 새삼 떠오르고, 그 결과에 환희했던 감정이 재차 솟구쳐 눈물이 흐른다.

다른 한 편은 그때 어렸거나 아예 그런 역사를 모르는 젊은이다. 그들은 격동의 2016~17년을 겪으며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고, 그보다 더한 일도 30년 전에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전율할 것이다. 왜 국정교과서에 그토록 많은 지식인들이 반대했는지 이유를 깨달았을 것이다. 여러모로 감동과 교육의 효과를 내는 영리한 영화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유진모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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