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싸우기 전에 준비를 하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감정에 휩쓸린 채로 싸우지 말라는 말입니다. 많은 분들이 싸움 전에 이걸 터뜨릴까 말까 끓는 속을 참으며 상당히 오랜 시간을 보냈을 겁니다. ‘좋은 싸움’을 하기 위해서는, 그처럼 참기만 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싸움을 계획하고 준비하면서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좋습니다. 혹시 ‘감정을 다스리라’는 말을 오해할까 봐 덧붙여 말하자면, 이 말은 그저 화를 내지 말라는 말과는 다릅니다. 감정에 휩싸여 자칫 후회할 수도 있는 실수를 하지 말고, 자신의 감정을 싸움에 어떻게 적절하게 표현할 지를 연구하라는 의미입니다.

이제 ‘좋은 싸움’을 위해서 ‘어떻게 계획하고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으로 설명하겠습니다. ​즉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왜, 어떻게 싸울 것인지에 대해서 준비하면 됩니다. 사실 이런 내용은 우리가 초등학교에서 배운 것들입니다. 그것을 활용하면 됩니다. 하나씩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언제 싸우는 것이 좋을지 잘 선택하십시오. 우선 출근 준비에 바쁜 아침이나 식사 시간은 싸우기 좋은 시간이 아닙니다. 물론 싸우려고 작정하고 말을 건넬 사람은 없겠지만, 상대가 불쾌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는 말은 피하라는 말입니다. 행여 상대가 ‘아침부터 재수 없게’ 또는 ‘밥 먹는데 꼭 그런 소리를 해야 하느냐’ 처럼 대꾸를 하면, 서로 기분이 상하여 ‘나쁜 싸움’이 되기 십상입니다. 어느 한편이 술에 취한 경우도 아무리 싸워봐야 좋은 결론이 날 리 만무합니다. 그러니 술에 취해온 상대가 못마땅해도 그 당시는 그냥 넘어가는 것이 현명합니다. 만약 술 취한 상대가 싸움을 걸어오는 경우에도 어떻게든 피하도록 하십시오. 마찬가지로 상대 또는 자신이 병으로 허약한 때는 물론이고, 감정 상태가 극도로 흥분되거나 자극을 심하게 받은 상태에서는 우선 감정부터 가라앉히는 게 낫습니다. 싸움은 어디까지나 문제를 풀기 위한 것이지 감정을 풀기 위한 것이 아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어디서 싸우는 지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싸우더라도 서로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잘 알고 계시다시피 자녀들이 있는 자리나 식당 같은 공공장소는 당연히 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싸우게 된 주제나 잘잘못에 상관없이 “꼭 여기서 이래야 하겠나?“ 라는 반격을 당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어정쩡하게 끝나버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을 재우고 근처의 운동장이나 공원에서 말하자”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에도 서로의 안전에 위협이 될 수도 있는 만일의 경우까지 대비하시기를 권합니다. 어떤 이들은 친정이나 본가처럼 자기편을 들어줄 사람이 있는 곳에서 쌓인 속내를 털어내려고 하는데, 이런 곳도 싸우기에 좋은 장소가 아닙니다. 물론 혼자서는 상대를 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러는 것이겠지만, 숫자적으로 궁지에 몰려있는 상대는 필요 이상으로 감정이 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과연 누구를 상대로 하는 싸움인지를 분명히 판단하고 시작하십시오. 쉬운 예로, 시부모의 잘못에 대해서는 시부모와 싸워야지 남편과 싸울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말에 대해서는 대부분 “어떻게 시부모와 싸울 수 있느냐?”고 하실 것입니다. 물론 그렇지요. 그런데, 시부모에 대한 불만을 왜 남편과의 싸움으로 풀려고 하나요? 남편과 싸우면 그 남편이 자기 부모와 싸워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또 시부모와 싸워서 이기려면 우선 남편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남편과 싸움을 벌이면 남편이 부인 자신을 대신하여 싸워줄까요? 그럴 리는 없잖아요? 또 그럴 만한 남편이라면 애초에 싸울 일도 없었을 것 입니다. 마찬가지로 돈이나 자녀가 문제라면 그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를 남편과 함께 연구해야지, 싸워서 남편이 문제를 해결하게 만들 생각이라면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이런 점들만 잘 판단해도 불필요한 ‘나쁜 싸움’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넷째,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를 명확히 하십시오. 부인들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불만 중의 하나는 남편이 대화 자체를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남편들에게 이유를 들어 보면 “한 번 싸움이 벌어지면, 옛날 케케묵은 일까지 죄다 끄집어내서 쏘아대는데, 그것이 언제 일인지 또 사실인지 아닌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부인들로서는 자신의 말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것에 덧붙여 그 동안 쌓여온 감정까지 해소하려는 것인데, 불행하게도 그렇게 해서는 남자들과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저의 예전 글 ‘남자와 여자의 차이’에서 설명 드렸듯이, 대부분의 남성들은 감정적인 자극을 받으면 한참 동안 대화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여성들의 경우에는 감정을 떼놓고 사실만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뿐더러 시원하게 해소한 느낌도 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싸움’을 위해서는, 감정의 해소 또는 공유는 남편이 편안한 감정 상태에 있을 때로 미루어두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다섯째, 무엇을 위해서 싸울 것인지를 확실히 정해놓고 시작해야 합니다. 상담실에 오신 부부들에게 왜 싸우게 되는지를 물으면, 대부분 ‘너무 늦게 들어오니까, 나쁜 버릇을 고쳐주려고, 돈을 아껴 쓸 줄 몰라서’ 등과 같은 ‘싸움의 원인’을 댑니다. 그러나 제가 여기서 말하는 ‘왜’는 싸우게 되는 원인이 아니라 싸워야 하는 이유를 말합니다. 즉 싸움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설정하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 또는 노후에 편하게 살 수 있도록’과 같이 공동의 목표가 될 수 있는 것이 좋습니다. ​노파심에서 덧붙이자면, ‘화가 나니까, 외로우니까, 걱정되니까’ 라거나 ‘쌓인 화를 풀기 위해서, 마음이 편해지려고’ 등은 개인적인 바램이지 공동의 목표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점에서 ‘좋은 싸움’의 목표는 상대방도 충분히 동의할 만한 것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공동의 목표가 분명하면 그다지 치열하게 싸울 이유가 없어집니다. 다만 그 목표를 추구하는 서로의 방법이 다를 뿐이기 때문에, 이제 남아있는 싸울 거리는 ‘누구의 방법이 보다 실현 가능성이 높은가’정도일 것입니다. 따라서 두 사람은 비록 싸우더라도 타협할 수 있는 여지가 훨씬 많아집니다.

끝으로,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보십시오. 위에서 말한 그 공동의 목표를 확정하고 또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지를 검토해보십시오. ​다시 말해, 위험성이 따르더라도 싸움을 거쳐야만 하겠는지, 조금이나마 더 안전하고 효과적일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겠는지 곰곰이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앞에서 말한 대로) 남성들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는 직접 대면하여 말하는 것보다 편지나 문자 메시지 같은 방법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글은 그 글은 쓰는 본인은 물론 그 상대 또한 읽으면서 생각을 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격한 감정에 빠질 위험이 적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서는 말에 비해서 덜 자연스럽고 일종의 ‘최후 통첩’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다는 것과 혹시 다음에 번복하기가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소 예외적인 상황일 수도 있지만, 자신이 직접 나서는 것보다, 그 사람에게 더 큰 영향력을 가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또 직접 대면하여 말하기로 정했다면 자신의 말투와 표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 까지도 결정해야 합니다. 즉, 단호하게 잘라서 말할 지 아니면 상대에게 부탁하는 식으로 부드럽게 할지도 미리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위와 같은 사전 점검을 마쳤더라도 잘 싸우기 위해서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싸움은 혼자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만큼, 상대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 반응을 예상해야 합니다. 상대가 내 말을 순순히 들어줄 것인지, 거짓된 말과 행동으로 일단 모면하려고 할 것인지, 아니면 강하게 반발하여 큰 싸움이 될 수도 있겠는지 등에 대해서는 당신이 이 세상에서 제일 잘 알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자신은 어떻게 할지도 미리 생각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즉 상대가 어느 정도의 반응을 보이면 싸움을 멈출지, 그리고 만약 내 말을 전혀 안 들어주면 어떻게 할 것인지도 미리 예상해두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끝으로 첨가할 것은, 상대와 대면하여 말하기로 했다면, 거울 앞에서 미리 연습을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빈 의자에 상대가 앉아있다고 가정하고 준비한 말을 해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대단히 어색하고 쑥스러울 수도 있지만, ‘좋은 싸움’이 숙달될 때까지는 이런 방법을 연습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치 운동 선수나 군인들이 가상의 상대를 설정하여 많은 훈련을 하고 또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연기 연습을 하듯, 부부 싸움도 연습을 하면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이제 당신은 ‘좋은 싸움’을 위한 기술들을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적잖은 이들이 “아니 이렇게까지 애쓰느니 그냥 참고 사는 게 낫겠다!”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잘 싸우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사는 부부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는 이런 노력을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저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면, 한 마디만 덧붙이겠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싸움 계획 세우는 데 며칠도 넘게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채 10분도 안 걸릴 정도로 점점 익숙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싸울 거리는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고, 따라서 이런 연습을 할 기회는 아주 아주 많으니까요! 이제 잘 싸우고 잘 살 자신이 생기셨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동화의 주인공이 될 자격이 충분히 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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