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원영빈의 리딩이야기] 지난해 수능 바로 다음날이었다. 다음날에 있을 강연 준비로 한창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즈음 한 앳된 아가씨 한 명이 두 손엔 스벅 커피를 들고 문을 열고 들어서며 "선생님~" 하며 와락 안기는데 보니 6년 전 졸업한 제자 채진이었다.

“샘, 저 이번 영어 수능 하나만 틀렸어요. 시험 시간만 잘 체크했어도 다 맞는 건데...”

아쉬운 듯 말하는 그녀의 미소엔 원하는 점수를 얻은 만족감이 그득했다. 수능 영어 일 등급이라는 선물을 가지고 수능이 끝나자마자 옛 선생님을 찾아온 그녀가 정말 고마워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도대체 비결이 뭐였니? 어떻게 한 개 밖에 안 틀릴 수가 있냐고?"

“샘,,, 저 초등 때 키리에서 영어 책 읽은 게 정말 행운인 거 같아요.

책을 많이 읽은 덕분에 문맥을 보고 바로 파악하는 능력이 생겨서 빈칸 추론 같은 어려운 문제도 저는 별로 어렵지 않았어요.”

그녀가 또 한번 책 읽기의 힘을 증명해 주었다. 사실 수능 영어는 한글로 해석해 놓아도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 영어 선생님들도 배경지식이나 문맥을 자연스럽게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없이는 풀기가 쉽지 않은데 책 읽기는 그런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녀는 초등학생 때 이미 5,000여권의 영어책을 읽었다. 요즘에는 영어책 읽기를 더 일찍 시작해서 초등 졸업 전에 8~9,000권의 영어 책을 읽는 아이들도 있다. 물론 아이들이 어떤 레벨의 책을 읽느냐에 따라서 혹은 한 권의 책을 몇 번씩 반복해서 읽느냐에 따라 측정할 수 있는 권 수는 크게 달라지고, 읽은 권 수가 아이의 영어실력과 비례한다고도 말할 수 없으나 의미상의 숫자 5,000권은 아이들에게 실력, 그 이상의 무엇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영어책 읽기 5,000권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먼저 칭찬과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짧은 책이건 긴 책이건 초등시절 이렇게 많은 권 수의 책을 읽었다는 것은 매일 평균 적어도 30분, 40분 이상의 영어책을 읽고 들었다는 것인데 이쯤 되면 책 읽기 습관이 잡혀 지구력과 집중력이 향상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많은 시간 영어에 노출이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외국어 학습 영역에서 보자면 문맥 속에서 단어의 뜻을 유추할 수 있는 능력과 추론 그리고 문장을 읽고 스토리를 이해하는 능력 등이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책을 읽는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학습하고 탐구할 수 있는 능력이 동반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학업역량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신체의 근육이 생기면 기초대사량이 늘어나는 것처럼,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을 스스로 찾아 끈기 있게 해결하는 자세는 모든 학습자의 기본 태도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외국어 습득 그 이상의 의미인 5,000권 읽기, 어떻게 해야 할까?  한글 책도 5,000권, 아니 500권 읽기도 힘든데 과연 영어책 읽기가 가능할까? 무조건 많이만 읽으면 좋을까? 주의해야 할 점은 없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효과적인 다독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꼭 필요한 사항들을 모아 보았다.

1. 자신의 리딩 레벨보다 한두 단계 아래의 책 읽기

“선생님 저희 아이는 더 높은 단계의 책을 읽게 도와주세요.
외국에서 그 정도 책은 무난하게 읽었거든요.”

책 읽기를 처음 시작하는 아이들 중에는 영어유치원을 나왔다거나 외국에서 4~5년 있다가 한국에 온 아이들, 또는 외국인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의 부모님들 중 대부분은 단계가 조금 높은 책부터 읽기를 희망한다. 듣기며 말하기며 영어를 쓰는데 아무 문제가 없는 아이들이라 나도 처음에는 제일 높은 단계의 책을 주었다. 이해가 되냐고 물으면 당연하다는 듯 모두 이해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영어를 잘 한다 하더라도 책 읽기 실력과는 별개라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다.

아이의 단계보다 수준이 높은 책은 읽기는 하나 책이 재미가 없거나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가 한없이 더디다. 왜 그럴까?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초등 아이에게 인문 소설이나 신문 사설을 읽으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런 아이들에게는 -엄마의 눈에는 너무 쉬워 보일 수 있으나 - 한두 단계 아래의 책을 권해주니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지고 책에 몰입도가 훨씬 높아지며 책이 재미있다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는다.

한국말을 잘 한다고 한글 책을 무조건 잘 이해하며 읽는 것은 아닌 것처럼, 영어책도 자신이 재미있는 분야부터 혹은 만만한 단계부터 읽는 습관을 들여 책과 친해지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무 높은 단계의 책을 읽으며 책 읽기가 또 다른 학습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또한 자신의 실력보다 한두 단계 아래의 책을 읽는 것부터 시작하여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서 그것이 충분히 쌓이고 쌓여 흘러 넘치게 하여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2. 한 번에 많이 가 아니라 매일 꾸준히 읽기의 힘

영어책 읽기를 흔히 매일 비타민,먹기와 이닦기에 비유하기도 한다. 비타민이 몸에 좋기는 하지만 매일 필요량만을 먹어야 효과적이고, 이빨도 귀찮지만 매일 꾸준히 닦아야 하는 것처럼 책 읽기도 마찬가지이다.

한 번에 많이 읽는 것과 매일 꾸준히 반복해서 읽는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A 그룹의 아이들은 한 번에 한 시간씩 며칠 간격으로 1년을 읽었고 B 그룹의 아이들은 매일 20분씩 꾸준히 1년 동안 읽었다. 어떤 아이들의 읽기 실력이 향상되었을까? 당연히 B 그룹 아이들의 실력이 향상되는 비율이 훨씬 높았다. 영어 실력을 쌓기 위한 도구로서의 영어책 읽기는 한 번에 몰아서 많이 읽기보다는 조금씩 꾸준히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을 때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매일 꾸준히 읽기의 힘을 믿어야 한다.

3. 책을 읽고 확인 대신 칭찬으로 마무리하기 

영어책을 6개월 정도 읽은 아이가 뾰로통해서 나를 찾아왔다. 엄마가 해석을 시켰는데 하나도 못해서 엄마에게 혼이 나고 왔다며 영어책 많이 읽어도 소용이 없다며 우울해했다.

아직도 영어책 읽기를 학습으로 오해하는 부모들이 많다. 예전에는 영어학습을 하면서 단어 외우고 한 줄씩 해석하고 그것에 대해 확인하고 테스트하던 방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영어책 읽기는 장기전이다. 우리가 한글 책을 읽고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썼던가를 생각하자. 태어나서부터 모국어에 충분히 노출시키고 한글 떼고, 그리고 밤마다 수많은 책을 읽어주면서 보냈던 시간들을 말이다. 아이가 책을 읽고 엄마에게 스토리를 이야기해주거나 그것을 글로 표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가를 말이다. 아이들이 어떻게 한글 책 읽기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책 읽기가 한글을 익히는 방법이나 도구로 매번 테스트가 들어갔다면 아이들이 한글 책 읽기를 지속할 수 있었을까? 책 읽기는 사랑을 전하고 내용을 공유하며 함께 행복한 상상을 하는 그런 시간이었기에 아이들은 책 읽기가 좋았고 재미있었으며 더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영어책 읽기도 다르지 않다. 영어 문장 노출이 충분히 채워져 자연스럽게 유추 능력이 생기고 문장을 보는 힘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지치지 않고 오래 읽을 수 있고 스스로 영어책 읽기를 즐기는 날도 빨리 온다. 오늘부터 당장! 적어도 책 읽은 후에는 확인을 멈추고 칭찬만 한마디 하자!

"와우! 스스로 읽다니 대단한데!"

4. 끊임없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아이들마다 차이는 있지만 아이들도 어른처럼 책 읽기가 힘들어지는 시기가 찾아온다. 다행히도 느끼지 못할 만큼의 진통을 겪으며 무사히?! 다음 단계의 책으로 옮겨가는 친구들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6개월에서 1년, 아니면 사춘기라는 시기를 겪으며 그 동안 안정되게 읽기를 진행했던 아이들이 책 읽기가 '재미없다. 바쁘다. 잠깐 쉰다'라는 등의 이유로 책 읽기를 중단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엄마들이 지쳐가는 시기도 함께 온다는 것이다.

책 읽기가 필요한 것이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도 알고 시작했지만 분기별로 점수화돼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어떻게 얼마큼 좋아질지도 측정도 어렵기 때문에 고민하고 걱정하는 시기가 온다. 게다가 빡세게 시키는 옆집 엄마의 충고가 더 솔깃해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아이가 '영어책 읽기가 힘들다'라고 하니 그 말이 더 반갑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쯤 되면 엄마부터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엄마에게 동기부여란 책 읽기로 성공한 친구들의 사례가 '두통엔 게보린'처럼 잘 듣는다.  하지만 오랜 기간 책 읽기를 진행해 온 아이들에게는 특별한 동기부여를 한다고 해서 책 읽기가 다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처음 책 읽기를 시작하면서부터 작은 동기부여와 칭찬을 받으면서 엄마, 혹은 선생님과의 유대관계가 좋은 친구들은 때때로 찾아오는 슬럼프를 거뜬히 넘기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예를 들면 초등 저학년 때는 100권 혹은 500권 읽기를 달성했을 때마다 인증하는 북뱃지를 준다거나 읽은 페이지, 혹은 읽은 시간만큼 포인트로 환산하여 후에 무언가를 살 수 있게 한다거나, 2,000권 북클럽 등에 가입하여 스스로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은 이벤트들이 한 번씩 힘을 잃을 때마다 다시금 책 읽기의 끊을 놓지 않게 해주는 동기부여 들이다. 하지만 제일 효과적인 것은 엄마나 선생님의 따뜻한 공감 섞인 말 한마디이다. 

“많이 힘들지... 1년이나 꾸준히 읽었으니 지루하기도 하고 끝도 없는 거 같지? 그래도 매일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읽는 네가 난 너무 자랑스럽고 멋져 보인다. 누구나 이런 시기가 있단다. 계단도 10계단 올라가면 평평한 부분이 있어서 쉬어가는 것처럼 너도 이 시기를 잘 넘기면 또 다른 단계의 책이 재미있게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힘내. 내가 너와 함께 할게”

5.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하면 멀리 갈 수 있다.

집에서 혼자 읽기를 진행하는 아이들 중에는 리딩 레벨이 꽤 높은 아이들이 기관을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리딩 레벨뿐만 아니라 집중력이나 지구력이 꽤 높음에도 불구하고 기관을 찾는 이유 중의 하나는 같이 책 읽기를 하는 그룹 안에서의 상호 교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른 친구들의 책 읽는 모습을 본다거나, 책에 대한 생각, 책을 소리 내어 읽는 태도나 발음, 억양 등 또래의 친구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나만 이렇게 책을 읽는 것은 아니었구나. 집에서 하는 활동이 특별한 그 무엇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누구나 하는 것이며 즐거움도 있는 반면 어려운 부분에서는 저렇게 극복하는구나...라는 것을 서로를 통해 배우고 때로는 위안을 삼기도 하며 그러면서 또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를 만든다.

5,000권 이상의 영어책을 읽었다고 하면 누구나 부러움과 존경의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영어 동화책 5,000권의 시간이 영어 노출 총량의 법칙을 충분히 채웠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실제로 많은 끈기와 성실성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또한 다독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바로 꼼꼼히 한 줄 한 줄 읽으며 숨겨진 의미까지 파악하는 정독 과정이다. 다음 편에는 영어책 다독과 정독의 균형 잡힌 독서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겠다.

▲ 원영빈 키즈엔리딩 대표 - (저서) '공부방의 여왕'

[원영빈 키즈엔리딩 대표] 
숙대학원졸 해외스쿨캠프 제작&기획 
영어리딩 전문가 활동
영어 리딩 전문가 양성 프로젝트
현) 키즈엔리딩 대표

저서 : '공부방의 여왕'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